국내편 2 : 잠 못 이루는 밤들

작은 전쟁

by CㅇSMㅇS

아빠, 또 다시

딸이 태어나고 며칠 뒤, 나는 행정복지센터로 출생신고를 하러 갔다. 공무원이면서도 내 자식 출생신고는 처음이라 괜히 긴장됐다. 서류를 몇 장 챙기고, 아내가 건네준 출생증명서를 손에 꼭 쥔 채로, 사무실 문을 열었다.

서류에 이름을 또박또박 적을 때, 내 딸의 이름이 이제 대한민국 공식 기록에 남는다는 사실이 묘하게 뭉클했다.

마침내 딸의 주민등록번호가 발급되었다. 뒷자리가 4로 시작하는 것도 신기했다. 나머지는 아내의 주민등록번호 뒷자리와 거의 비슷해서 금방 외웠다.

출생신고를 마치고 나오는데,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내 아이가 이제 세상에 '공식적으로' 존재한다는 것, 그게 이렇게 벅찬 일일 줄은 몰랐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우리 딸, 이제 주민등록번호 생겼다"고 자랑했더니, 둘이 한참을 웃었다.
그날, 나는 또 한 번 아빠가 되었다.


밤낮 없는 딸

출생신고를 하고 진짜 아빠가 되었다는 벅찬 감정에 취해있던 것도 잠시, 나는 며칠 만에 수면 부족으로 죽어가는 좀비가 되었다.

"신생아는 하루에 16~20시간을 잔다."

육아서에 나온 이 문장을 나는 출산 전까지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러니까 딸이 태어나면 대부분 시간을 자면서 보낼 거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순진하고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딸은 예측불허였다. 젖을 먹고, 기저귀를 갈고, 트림을 시키고, 다시 재우고. 그러면 언제 깨어날지 모르게 예측 없이 깨서 울었다.

"16시간을 잔다는 게 연속으로 자는 게 아니구나."

신생아가 하루 16시간을 잔다는 건, 한두 시간씩 토막잠을 자는 시간을 모두 합친 것이었다. 우리 부부에게는 연속으로 잘 수 있는 시간이 최대 한두 시간뿐이라는 뜻이었다. 살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새벽 2시, 딸은 깨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배고픈 것도 아니고, 기저귀가 젖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깨어있고 싶어 했다.

"아가야, 지금은 잘 시간이야."

아무리 말해도 딸은 알아듣지 못했다. 당연했다. 아직 생후 몇 주밖에 안 된 아기에게 밤낮의 개념이 있을 리 없었다.

육아 커뮤니티에는 초보 부모들이 만들어낸 수면 관련 용어들이 즐비했다. '통잠'은 밤새 깨지 않고 자는 것, '백일의 기적'은 백일 즈음 되면 잠을 좀 더 길게 잔다는 희망 섞인 표현, '등 센서'는 아기를 침대에 눕히는 순간 깨어나는 신비로운 현상을 뜻했다. 그만큼 많은 초보 부모에게 육아 초기의 수면은 큰 화두였다.


잠 못 이루는 아빠

나는 잠에 예민한 편이라 편안한 환경이 아니면 잠을 잘 못 잔다. 딸은 어쩔 때는 3시간, 어쩔 때는 30분 만에 일어나곤 했는데 그런 불규칙적인 패턴이 '언제 깰지 모른다'는 긴장을 유발해 잠을 못 이뤘다.

수면 부족의 여파는 상상 이상이었다. 낮에도 멍한 상태가 계속됐고, 운전할 때도 졸음운전의 유혹에 시달려 위험할 정도였다. 수면 부족은 나를 예민하게 만들었다. 분노, 무기력, 때론 갓난아기에게 짜증이 올라오는 순간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이렇게 약한 사람이었나' 자책하며 괴로웠다.

"이게 진짜 육아인가?"

내가 꿈꿨던 따뜻하고 행복한 육아와는 거리가 멀었다. 매일이 전쟁 같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출근 날이 다가왔다. 수면 부족인 상태로 업무 병행은 정말 쉽지 않았다. 점심은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책상에 엎드려서 잤다. 선배 부모들은 이런 나를 이해해주며 힘내라고 응원해주고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곤 했다.

'아, 이분들도 모두 이 시간을 겪으셨구나.'

비로소 그들이 겪은 고생이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아 사람들이 새삼 위대하게 느껴졌다. 또한, 나를 키워주신 부모님, 특히 잠 못 자며 밤낮으로 나를 돌보셨을 어머니께 한없는 감사와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결국 수면 부족으로 업무에 영향이 갈 정도가 되자, 나는 아내에게 양해를 구했다. 혼자서 다른 방에서 자다가 아내가 부르면 달려가 도와주는 것으로 역할을 나눴다.


홀로 버티는 엄마

아내는 그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대부분의 일기가 새벽에 기록되었다. 거의 매일 밤을 설쳤다고 한다. 그때 아내가 겪은 고생을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한 마음뿐이다.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는 내게 아내는 퀭한 얼굴로 "가지 마"라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어쩔 수 없이 출근해야 하는 현실에, 마음이 무거웠다.

아내의 하루는 예측 불가능한 딸의 패턴에 완전히 종속되었다. 딸이 잠들면 겨우 한숨 돌리나 싶었지만, 잠시 후 터져 나오는 울음소리에 아내는 다시 몸을 일으켜야 했다. 젖을 물리고, 기저귀를 갈고, 다시 재우는 무한 반복. 새벽 내내 아기는 울고, 아내는 달랬다.

"온몸이 납덩이처럼 무거워서 일어나기도 힘들었어."

아내의 말이다. 낮에는 갓난아기와 단둘이 집에서 씨름하며 밥 한 끼 제대로 먹을 시간도 없었다고 한다. 거울을 보면 초췌한 자신의 모습에 한숨만 나왔다고. 종종 장모님이 오셨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둘이서 견디며 내 퇴근시간만 기다렸다고 한다.


우리만의 해법

시간은 달팽이처럼 더디게 흘러갔다. 밤 수유를 줄여보려 노력하기도 하고, 속싸개를 더 단단하게 해보기도 하고, 백색소음을 틀어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브람스의 자장가가 가장 효과적이었다. 딸이 칭얼거리다가도 브람스의 선율이 흘러나오면 신기하게 잠잠해졌다. 그래서 아내와 나는 독일이 있는 서쪽 하늘을 향해 큰절을 올리며, 언젠가 브람스의 생가를 꼭 방문해서 감사 인사를 드리기로 약속했다.

그러다가 진짜 획기적인 방법을 찾았다. 바로 다리 마사지였다. 딸은 잠에 빠졌을 때 바닥에 눕히면 바로 깨버렸다. 그때, 울기 직전에 다리를 살살 마사지해주면 기분이 좋은지 금방 잠이 들었다. 이렇게 자꾸 바닥에 자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재미있게도 아내의 마사지보다 내 마사지가 더 효과적이었다. 아내의 마사지는 성공 확률이 50% 정도였지만, 아빠의 큰 손과 악력이 편안한 기분이 드는지 내 마사지는 수면 성공 확률이 90% 이상이었다. 드디어 아빠만의 필살기를 찾은 것이다.

밤에 딸 옆에서 자다가 딸이 배고파 깨서 울면 옆으로 누운 상태로 젖을 먹이면서 본인도 잤다. 모유 아내도 자신만의 해법을 찾았다. 누워서 수유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 초보 엄마들 사이에서는 이를 '눕수'라고 부른다고 했다. 수유는 정말 편했다. 분유를 타기 위해 일어날 필요도, 준비 과정도 없었다.

이런 우리만의 해법들이 하나씩 생기기 시작하니 조금씩 여유가 생겼다. 전쟁 같던 밤들이 서서히 평화로워지기 시작했다.


작은 전쟁

수면 전쟁을 치르면서 우리는 더 끈질긴 부모가 되었다. 그리고 딸은 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웠다.

이제 이 평화로운 밤이 얼마나 소중한지 안다. 그 치열했던 수면 전쟁을 이겨내며 우리 가족은 더 돈독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의 모든 부모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지 깨달았다. 매일 밤 이 작은 전쟁을 치르며 아이를 키워내고 있으니 말이다.


일본어판 : 国内編2:眠れない夜々|COSMOS

중국어판 : 国内篇1:什么都不懂的孩子 - 这里有一个休了3年育儿假的爸爸 - 这里有一个休了3年育儿假的爸爸 | 豆瓣阅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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