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편 1 :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

착각

by CㅇSMㅇS

출산 후 일주일

제왕절개 수술 후 일주일 동안 아내는 서서히 회복해갔다. 링거로 진통제를 계속 맞으면서도 조금씩 움직일 수 있게 되었고, 식사도 시작했다. 미역국이 정말 지겹도록 나왔다. 양이 꽤 많아서 우리 둘이서 나눠 먹어도 충분할 정도였다.

이튿날, 아내를 부축하여 신생아실로 향했다. 걸어서 3분도 안 걸리는 거리였지만, 천천히 이동하느라 10분이 넘게 걸렸다. 그리고 맨정신으로 딸과 처음 만났다. 마침 딸도 눈을 뜨고 있었고, 아내와 눈이 마주치자 아내는 잔뜩 흥분해서 우리 딸이 제일 예쁘다고 난리가 났다.

그리고 모유 수유 시간이 되었다. 출산하면 모유가 나온다는 걸 책으로는 공부해서 알고 있었지만, 정말로 나오니 신기했다. 아내도 본인 신체의 변화에 놀라워했다. 수유 시간이 되면 병실 전화기가 울렸고, 아내를 부축해 하루에 몇 번씩 수유실로 이동했다. 나는 그 앞 복도 벤치에 앉아서 기다렸다. 사흘쯤 지났을까, 밖에서 기다리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간호사가 아내와 함께 딸을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 안아보라고 했다. 출산 당일에 경황없이 안았던 것과는 달랐다. 우리 딸은 깨끗하게 씻겨 엄마 젖을 먹고 곤히 잠들어 있었다. 조심스럽게 팔로 목을 받치고 품에 안았다. 너무 귀엽고 감동적이었다. 살짝 눈물이 나서 간호사랑 아내가 놀린 건 비밀이다.

그렇게 순조로운 일주일이 지나갔다.


아내의 선택

딸이 태어나기 전 아내는 선언하듯 말했다. "나는 조리원 안 갈래. 남에게 우리 딸을 맡기고 싶지 않아."

주변에서는 모두 조리원을 권했다. "쉴 때 쉬어야 해", "아기 돌보는 법도 배우고"

하지만 아내의 마음은 확고했다. 사실 육아 관련 책들에서도 조리원에 대한 부정적인 글들이 많았다. 특히 모유 수유 실패에 관한 내용이 많았다. 아기가 엄마 젖보다 젖병에 익숙해져 혼란스러워하는 경우였다. 그리고 혹은 획일적인 조리원 방식에 아이가 적응하지 못해 퇴소 후에도 힘들어하는 사례들이 적혀 있었다. 아내는 처음부터 누군가에게 딸을 맡기기보다 직접 부딪히며 배우고 싶어 했고, 모유 수유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

그렇게 제왕절개 수술 후 일주일 만에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아내는 아직 걷기도 불편한 상태였지만, 딸을 품에 안고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에서 나는 다시 한번 확신했다. 우리 아내는 진짜 강한 사람이었다.


우리 집에 온 것을 환영해

집에 도착한 날, 현실 육아가 시작됐다. 천사인 줄만 알았던 딸은 집에 와서 바닥에 눕히자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울어댔다. 어디가 불편할 걸까. 배가 고픈 건가. 아내는 곧바로 모유 수유를 시작했고, 젖을 먹다 보니 딸은 잠들었다. 그런데 다시 눕히자마자 깨어나 팔다리를 휘저으며 울어대는 게 아닌가.

"혹시 경련인가? 병원에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아내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며 화를 냈다. 나중에 찾아보니 모로 반사였다. 모로 반사는 신생아에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반사 행동으로, 아기가 혹시라도 떨어질까 봐 스스로 몸을 보호하려는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아기가 갑자기 팔다리를 확 벌리며 놀라는 게 마치 떨어지는 줄 알고 몸부림치는 것 같았다. 출산 전에 육아 서적을 몇 번씩이나 읽고 공부했지만, 막상 실제로 보니 당황해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멀쩡한 딸을 데리고 병원에 가보자고 했던 나는 그때 정말 바보 아빠였다.

밤이 되어도 아이는 밤낮의 개념이 없었다. 우리 부부는 녹초가 되어 쓰러져 잠들었고, 그렇게 첫날이 지나갔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

새벽 3시, 딸이 또 울기 시작했다. 기저귀도 갈았고, 모유 수유도 했는데 왜 우는지 알 수 없었다. 모로 반사인지, 다른 이유인지 구분할 수도 없었다. "혹시 아픈 건 아닐까? 내가 뭔가 잘못한 건 아닐까?" 이 작은 생명체는 정말 여렸다. 할 수 있는 건 누워서 우는 것, 젖 먹는 것밖에 없었다. 이 작은 존재가 오직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놀라우면서도 동시에 무한한 책임감으로 다가왔다.

문든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인간은 이렇게 연약하게 태어나, 이렇게 도움을 받아 성장해가는구나. 인류가 수만 년 동안 이어져 온 이유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되는 것이로구나. 나 역시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그 모든 조상들이 이토록 나약한 존재로 태어나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으며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다는 깨달음에 깊은 숙연함과 동시에 막대한 사명감이 느껴졌다.


아내의 선택이 옳았다

며칠이 지나면서 우리만의 육아 리듬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내는 모유 수유를 하며 딸과 교감했고, 나는 기저귀 갈기와 트림시키기, 씻기를 담당했다. 서툴렀지만 우리만의 방식이었다.

조리원에 갔다면 간호사가 이런 것들을 다 설명해줬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직접 경험하며 배워야 했다. 그 과정에서 딸의 모든 반응을 더 세심하게 관찰하게 됐다.

"우리 딸이 언제 배고픈지, 언제 졸린지, 언제 놀라는지 알 수 있어서 좋아."

아내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남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돌보니 딸의 신호를 더 빨리 읽을 수 있었다. 조리원을 가지 않은 선택. 처음에는 두렵고 막막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가장 맞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

직장에서 육아휴직을 들어가거나 아이 때문에 휴가를 내는 사람들을 보면서 한때는 공감하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그저 개인적인 문제라고 치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육아를 직접 경험하면서, 사람들을, 아니 인류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인간은 원래 이렇게 나약하고 서로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아는 것이 많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를 집에서 키우면서 깨달았다. 나는 몸만 커버린,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였던 것이다.

모로 반사 하나도 몰라서 응급실에 가자던 그 초보 아빠.

매일 새로운 것을 배웠다. 우리 딸을 키우면서.

그 과정에서 깨달았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아이만 성장시키는 게 아니라는 것을. 부모 역시 아이와 함께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결국 육아는 아이를 기르는 동시에 나 자신을 다시 기르는 일이었다. 세상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우리 딸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은, 나 역시 여전히 배워가는 중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인간다운 삶의 본질이 아닐까 싶다.


일본어판 : 国内編1:何も知らない子ども|COSMOS

중국어판 : 国内篇1:什么都不懂的孩子 - 这里有一个休了3年育儿假的爸爸 - 这里有一个休了3年育儿假的爸爸 | 豆瓣阅读

keyword
이전 10화혼세편 피날레 : 1%에서 100%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