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하요!
서막 : 대만 친구 집에서의 현타
나의 이중언어에 대한 집착은, 사실 부러움과 약간의 질투에서 시작되었다. 대학 시절, 나는 대만에서 온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가벼운 문화충격을 받았다. 친구는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부모님과 아주 자연스럽게 중국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다 나를 보고는 스위치를 켜듯 유창한 한국어로 말을 걸었다. 그들에게 그것은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한 일상이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나는 '현타'를 맞았다. 영어 단어 하나 외우려고 깜지를 쓰고, 일본어 한자 하나 익히려고 밤을 새웠던 나의 지난 노력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외국어 공부가 얼마나 지독하고 고된 일인데, 저 녀석은 저걸 그냥 거저먹고 있구나. 그 부러움은 곧 '나도 언젠가 내 자식에게는 저 거저먹는 것 같은 환경을 만들어주리라'는 기나긴 목표 의식의 씨앗이 되었다.
도서관에서 길을 찾다
그리고 십여 년이 흘러 아빠가 된 나는, 그 씨앗을 틔우기 위해 도서관의 언어학 코너에 살다시피 했다. 나의 가장 큰 프로젝트는 '이중언어 육아'였고, 나는 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책을 빌려 읽었다.
바바라 A. 바우어의 《이중언어 아이들의 도전》부터 알베르트 코스타의 《언어의 뇌과학》, 켄들 킹의 《2가지 언어에 능통한 아이로 키우기》까지. 수많은 책을 독파하며 나는 놀라운 사실들을 깨달았다. 지구상에는 한 가지 언어만 쓰는 단일언어 구사자(모노링구얼)보다, 두 가지 이상의 언어를 쓰는 이중언어 구사자(바이링구얼)가 훨씬 더 많다는 것. 이중언어는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환경만 주어진다면 매우 자연스러운 인간의 능력이라는 것이었다.
수많은 학자의 두꺼운 책들을 관통하는, 마치 무협지의 비급처럼 단 한 줄의 깨달음이 있었다. 바로 OPOL(One Parent, One Language) 전략.
이름부터가 직관적이지 않은가. '부모 한 명당, 언어 하나'. 규칙은 단순했다. 아빠는 오직 A언어로만, 엄마는 오직 B언어로만 말을 거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의 머릿"속에 두 개의 '언어 폴더'가 자연스럽게 생성된다는, 무식할 정도로 단순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나의 야심 찬 계획, 그리고 어색한 현실
계획은 세워졌다. 나는 일본어를, 아내는 한국어를 맡기로 했다. 내가 일본어를 택한 이유는 내 회화 실력이 가장 좋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언젠가 딸과 함께 일본 애니메이션을 자막 없이 즐기고 싶다는 '덕후'로서의 사심도 분명히 있었다. 아내의 역할은 당연히 한국어였다. 다행히 내 아내는 대한민국 토박이답게, '네이티브 스피커' 만렙 스펙을 자랑했다.
물론 처음에는 몹시 어색했다.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나 '엄마', '아빠'라는 단어조차 모르는 딸에게 "お父さんだよ(오토상다요 / 아빠란다)" 하고 말을 건다는 것. 솔직히 한국어로 말을 거는 것조차 아직은 낯선 초보 아빠에게, 외국어를 '모국어처럼' 계속 사용해야 한다는 미션은 생각보다 훨씬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했다.
그래도 나는 일본어로 계속 말을 걸고, 딸은 "아바바바" 옹알이로 대답했다. 우리의 대화는 완벽한 평행선이었다. 마치 '응답 없는 번호'에 계속해서 문자를 보내는 스토커가 된 기분이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내 일본어가 부자연스러우면 어떡하지?" 하는 근본적인 공포였다. 내가 쓰는 이 표현이 원어민에게는 어색하게 들리지는 않을까? 내 엉터리 일본어가 딸의 언어 습관을 망쳐버리는 건 아닐까?
요즘이야 나 같은 AI 비서에게 "이 표현 자연스러움?" 하고 물어보면 1초 만에 완벽한 피드백을 해주지만, 그때는 'AI 없는 암흑기'였다. 나는 절박한 심정으로 HiNative라는 언어 교환 사이트의 문을 두드렸다. "원어민 선생님들, 제발 도와주세요. 이 문장, 자연스럽나?" 하고 매일같이 질문을 올렸다. 지금 생각하면 눈물겨운 아날로그 방식의 노력이었다.
기적은, 99%의 우연 속에서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생후 11개월 무렵, 여느 때처럼 딸을 안고 거의 반쯤 포기한 심정으로 말을 걸고 있었다. "お父さんだよ(오토상다요), お父さん(오토상)." 그때였다. 딸이 나를 빤히 쳐다보며, 그 작은 입을 오물거리더니, 옹알이가 묘하게 '오' 소리에 가깝게 들렸다.
"오... 토...?"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물론 그냥 옹알이가 우연히 '오토상'의 앞부분처럼 들렸을 확률이 99%였을 거다. 하지만 '아빠'라는 종족은, 그 1%의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거는 존재다. 내게 그 소리는 "아빠, 그동안 벽에다 대고 말하느라 고생 많았어요"라는, 딸이 보낸 첫 번째 응답이자 위로였다.
수다쟁이 아빠의 탄생
돌이 지나고 언어가 발달함에 따라 점점 딸의 일본어는 늘어갔다. 동물 이름을 말하면 동물의 소리를 흉내 내고 점차 발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나는 OPOL의 예상치 못한 장점을 발견했다. 아이의 언어 발달은 결국 '인풋'의 양에 달려있다. 그런데 '아빠는 무조건 일본어'라는 규칙을 스스로에게 부여하자, 나는 침묵할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이든 해야 했다. "저기 강아지네, ワンワン(왕왕)だね", "사과 먹을까? りんご(링고)だよ" 하면서. 그 결과 나는 누구보다 수다스러운 아빠가 되었고, 나의 이 강제된 수다스러움은 딸의 언어 발달에 최고의 자양분이 되어주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애니메이션이라는 비장의 무기
아이가 두 돌이 되자 나의 프로젝트는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바로 '애니메이션'이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 명작들로 시작해, 《겨울왕국》, 《라푼젤》, 《라이온킹》 같은 디즈니 애니메이션도 전부 일본어 더빙판으로 보여줬다. 딸의 최애인 《캐치! 티니핑》까지 일본어 버전을 구해서 보여주는 열정까지 불태웠다. 아이는 스토리에 빠져드니, 언어의 장벽 따위는 느끼지 못했다. 일본어는 더 이상 '아빠만 쓰는 이상한 말'이 아니라, '재밌는 만화에 나오는 말'이 된 것이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내가 37개월간의 육아휴직을 마칠 무렵, 딸의 일본어 실력은 한국어 실력을 앞지르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유치원 입학 전까지, 딸에게 세상은 일본어로 먼저 입력되고 있었다.
가장 이기적인 투자, 그리고 최고의 선물
현재, 다섯 살 딸은 나에게 일본어로 농담을 던진다. 그리고 자막 없이 《카드캡터 사쿠라》를 본다.
나의 목표는 딸을 언어 천재로 키우는 것이 아니다. 그저 딸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다. 한국어라는 창과 더불어, 일본어라는 또 다른 창을. 두 개의 창으로 세상을 보는 아이는, 하나의 창으로만 세상을 보는 아이보다 분명 더 다채로운 풍경을 보게 될 것이라 믿었다.
딸이 던지는 일본어 농담에 웃어주며, 나는 확신한다. 훗날 딸과 함께 '덕질'할 미래의 나를 위한 나의 이 길고 긴 투자가, 내 딸의 인생에 최고의 선물이 되었음을.
일본어판 : 国内編8 : 日本語を話すパパと、喃語の娘|COSMOS
중국어판 : 国内篇5:说日语的爸爸和咿呀学语的女儿 - 这里有一个休了3年育儿假的爸爸 - 这里有一个休了3年育儿假的爸爸 | 豆瓣阅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