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 속에 담긴 약속, 여아홍(女兒紅)
이야기는 딸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갓난아기인 딸과 산후조리 중인 아내를 두고, 나는 5일간의 중국 출장길에 올랐다. 일이 끝나고 면세점을 어슬렁거리다,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한 술 한 병을 발견했다. 붉은 라벨에 쓰인 세 글자. 여아홍(女兒紅).
무협지를 좀 읽어본 아재라면, 이 술이 가진 낭만을 모를 수가 없다. 딸이 태어나면 빚어서 땅에 묻었다가, 훗날 그 딸이 시집갈 때 꺼내 하객들과 함께 마신다는 전설의 술. 무협지 덕후 출신인 나는, 마치 홀린 듯 그 술을 집어 들었다. '언젠가 내 딸의 결혼식에서 이 술을...' 하는, 수십년 뒤를 향한 아득한 상상을 하며. 그렇게 붉은 술병은, 갓 태어난 딸의 미래를 향한 나의 첫 번째 약속이 되었다.
우리 손으로 차린, 사랑의 돌상
시간은 흘러, 딸의 첫 번째 생일이 다가왔다. 나는 한국의 희한한 관행 하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돌 사진은 생후 10~11개월에 미리 찍는단 말인가? 정작 주인공의 '진짜 돌'은 그날이 아닌데. 나는 고집을 부려, 딸이 태어난 지 정확히 365일이 되는 날 스튜디오 예약을 잡았다.
돌잔치 역시 그날 하고 싶었지만, 가족들의 일정을 맞추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이틀 후 주말에 열게 되었다. 당시는 코로나19로 시끄러웠던 시절이라, 우리는 집에서 소박하지만 정성껏 돌잔치를 준비하기로 했다.
어머니는 POP 강사급의 실력을 뽐내 딸의 이름이 담긴 화려한 장식을 만들어주셨고, 아내와 나는 이틀 밤낮으로 음식을 준비했다. 돌잔치 전날, 딸을 간신히 재우고 새벽 1시까지 갈비를 재우고 잡채를 볶았다. 그리고 당일 새벽 6시에 일어나 미역국을 끓였다. 몸은 지치고 힘들었지만, '우리 딸의 첫 생일은 우리 손으로 차려주자'는 마음 하나로 버텼다.
돌잔치, 그리고 돌잡이
마침내 양가 가족들이 모두 모였다. 어른들과 동생과 처제, 처남까지 북적이는 거실에서, 작고 소박하지만 세상 가장 따뜻한 돌잔치가 시작되었다.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내가 직접 '돌잔치 퀴즈쇼'를 진행했다. "서은이가 태어난 시간은?", "서은이는 무슨 띠일까요?", "서은이가 처음으로 혼자 걸은 건 생후 며칠째일까요?" 내가 썼던 육아일기를 기반으로 낸 문제들은, 생각보다 높은 난이도에 모두가 쩔쩔맸다.
그리고 대망의 돌잡이. 나는 아내와 함께, 우리의 욕망을 가득 담은 물건들을 준비했다. 장난감 청진기(의사), 장난감 집(부동산 재벌), 장난감 악기(음악가), 그리고 책(베스트셀러 작가). 딸은 망설임 없이, 아빠의 바람대로(?) 장난감 청진기를 덥석 집어 들었다.
18년 앞당겨 개봉한 미래
모든 행사가 끝나고, 나는 비장하게 여아홍을 꺼내 들었다. "이 술은 원래 서은이가 시집갈 때 마시려고 했던 술입니다." 술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자, 가족들은 모두 감탄했다. "하지만 수십년 뒤의 아득한 미래를 축복하는 대신, 우리가 함께 기적처럼 걸어온 지난 1년을 기념하는 게 더 의미 있을 것 같아 오늘 개봉하기로 했습니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코르크 마개가 열리고, 향긋한 향이 퍼져나갔다. 우리는 모두의 잔에 여아홍을 따르고, 함께 잔을 부딪쳤다. 달콤하고도 쌉쌀한 술맛은, 지난 1년간의 육아가 고스란히 담긴 맛 같았다.
아무도 모르는 주인공에게
그렇게 서은이의 첫 번째 생일은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모두가 돌아가고, 잠든 딸의 옆에 지쳐 쓰러진 아내를 보았다. 문득 깨달았다. 이 돌잔치의 진짜 주인공은, 사실 아내였다는 것을. 1년 전 오늘, 목숨을 걸고 아이를 낳았던 것도 아내였고, 밤을 새워 음식을 준비한 것도 아내였다. 하지만 모두의 관심은 오직 아이에게만 쏠려있었다. 아무도 그 공을 알아주는 것 같지 않아, 나 혼자 괜히 아쉬웠다.
하지만 나는 안다. 당신이 얼마나 위대한지. "고마워, 자기야. 고마워, 서은아. 모두 사랑해. 내년 서은이 생일에는, 우리 밖에 나가서 맛있는 거 사 먹자." 나는 잠든 아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속삭였다.
일본어판 : 国内編9 : 父の初めてのトルチャンチと女兒紅|COSMOS
중국어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