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병원 창문을 통해 밖을 보니 굵은 소나기가 정신없이 창문을 때린다.
갑자기 영화의 파노라마 장면처럼 지난 한 달간의 생활이 겹쳐진다.
큰 아이가 생리통이 심해 밤중에 진통제를 먹였다. 자다가 기침이 나며 거의 먹은 것도 없지만 토했다. 아침에 00 내과에 가서 진찰을 하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복부초음파를 해 보자고 하신다. 우리 집 주치의나 다름없는 의사 선생님은 검사를 마치고 조심스러운 얼굴로 종합병원에 가서 CT를 찍어보는 게 어떠냐고 하신다. 갑자기 가슴이 덜컹거리며 아이를 데리고 00 종합병원에 가서 CT를 찍었다.
CT판독 지를 들고서 의사 선생님은
“정확히 위치가 어디인지 모르지만 18cm 정도의 큰 혹이다.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
라고 말씀하셨다.
큰 아이는 어릴 때 잔병치레를 많이 해서 유난히 손이 많이 가는 아이라 마음이 애잔하였다. 가족들과 상의를 하고 서울 00 병원으로 검사 자료를 들고 큰 아이와 새벽차를 타고 갔다.
아이는 엄마랑 여행 가는 것처럼 마냥 즐겁게 지하철을 타며
“엄마, 저쪽 방향이야. 이리로 가야 해.”
하며 방향 감각에 둔한 엄마를 이끌어준다.
산부인과 여의사 선생님은 이틀에 걸쳐 계속 여러 가지 검사를 지시하셨다. 각종 장기의 초음파 검사, CT, MRI, 여러 번의 피검사. 아이는 MRI 검사를 위해 큰 통을 통과할 때, 소음을 두려워하여 내가 손을 잡아주어서 겨우 검사를 마쳤다.
세 번째 진료 후 검사를 마치고
“종양이 여러 장기에 걸쳐 있는데 아마 난소 쪽인 것 같아요. 피검사 결과도 안 좋게 나오네요.”
이 말을 들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지며, 귀가 순간적으로 멍해지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아이랑 내려오는 길은 천근만근 무거웠고 수술 날짜를 기다리는 마음은 초조했다. 날짜가 정해지고 담당이 암병원 산부인과 교수님으로 바뀌어졌다. 간단한 준비를 하고 입원하니 계속되는 검사와 금식으로 아이 얼굴은 반쪽이 되었다.
수술 날 아침 회진 때
“최첨단 기계로 검사해도 처음 시작 위치를 못 찾으니 개복 수술을 하고, 자궁과 한쪽 난소를 절제하고, 다른 장기 손상이 우려되어 여러 과가 협진할 것이고 수술은 두 시간 정도 걸릴 것이다.”
라고 담당 교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월요일 첫 번째 순서로 수술하게 되어서 아이는 8시 반에 수술실로 내려갔고 마취 전까지 가느다란 손목을 만져주었다. 수술이 시작되자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렸다.
“우리 00가 방금 수술실에 들어갔습니다. 수술이 원만히 잘 되고 좋은 결과가 나오길 간절히 함께 기도 부탁드립니다.”라고 친지, 지인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시간이 흘러 약속한 10시 반이 지나고 12시, 다시 1시, 2시가 되어도 회복실로 갔다는 문자는 오지 않았다. 기도하다가 마음이 초조해서 불안한데
“00 부모님, 지금 수술실로 오세요.” 문자가 왔다.
남편과 나는 거의 사색이 되어 수술실 옆 상담실로 가는데 오만가지 생각이 다 교차하였다. 심장은 뛰고 혹시 수술 중 무슨 일이 생겼나 불길한 마음도 생겼다. 상담실에서 교수님은 침착하신 얼굴로
“막상 개복을 해 보니 종양이 장기 안에 있지 않고, 여러 장기의 뒷부분에 걸쳐 있어서, 장기를 하나도 상하지 않게 조심스럽게 떼어내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종양도 간이 검사를 해보니 좋은 놈인 것 같아요.”
라고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지옥과 천국이 한순간이라더니….
난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교수님! 고맙습니다. 정말로 고맙습니다.” 이 말만 수도 없이 되풀이하며 절을 했다.
시간이 흘러 네시 반이 되어 입원실로 돌아온 큰 아이. 이미 수혈을 여러 병 했고, 여기저기 주머니에 수많은 줄들, 8시간의 대수술이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환자복으로 갈아입히며 또 한 번 눈물이 앞을 가렸다.
솔로몬이 한 말 ‘이 또한 지나가리라.’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상처가 아물고 아이는 퇴원하게 되었다. 입원 생활 동안 암병동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 그들의 친절과 무언의 행동에서 많이 배우고 느꼈다. 내일모레 다시 최종 조직 검사 결과를 보러 병원에 간다.
퇴원하던 날 굵은 소나기 후 잠깐 만난 무지개. 길조를 나타낸다고 굳게 믿는다.
인생을 기쁨과 슬픔으로 무지개처럼 색칠을 하며 삶을 그려갈 때, 아이가 커가며 부모도 커 간다. 이번에 큰일을 겪으며 우리도 조금 더 성숙해졌다고 느껴진다.
다시 한번 그날 우리 아이를 위해 기도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깊은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