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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필 May 17. 2024

먹기만 하는 것도

    그는 밤 11시부터 행복하다.


   오후에 시작해 밤에 마치는 일을 하는 그는 하루 두 끼를 먹는다. 한 끼는 오후 3시경 직장 근처 식당에서 먹는데 어느 식당이든 마뜩잖은 편이다. 살림꾼인 그의 눈에는 식당들이 너무 불결하다. 방금 닦았다는 테이블은 끈적끈적하기 일쑤다. 다시 닦아 줘 봤자 국물이 튄 옷을 문질렀다가 더 번지는 것처럼 오히려 더 더러워진다. 종이로 포장돼 있지 않은 수저는 믿음이 가지 않고 급식실에서 주로 쓰는 스테인리스 은색 물컵 역시 세정 상태가 의심스러운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 그리고 한창 나이인 그에게 식당밥 1인분은 턱없이 모자란다. 공깃밥 하나를 늘 추가해서 먹는데 요즘은 공깃밥 양도 퍽 줄어서 두 공기를 먹어 봤자 포만감은 어림도 없다. 양치질하다 급한 호출을 받고 대충 입안을 헹궜을 때처럼 찜찜하고 미진하지만 공깃밥 세 공기를 매일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그녀가 늘 반 공기를 덜어 줘 두 공기 반은 먹을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저녁식사에 진심이다. 퇴근하면서 그날그날 필요한 장을 보고 집에 와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요리를 마치면 밤 11시, 만찬 시간이다. 모든 요리에 버섯, 두부, 감자, 양파가 얼마나 푸짐하게 들어가는지 찌개를 끓여도 볶음처럼 완성된다. 가끔은 프랭크 소시지나 참치, 어묵이 추가된다. 기대한 맛이 나지 않을 때는 마법의 라면 수프를 조금 넣기 때문에 봉지가 뜯긴 라면들이 언제든 사리용으로 쓰일 수 있도록 인덕션 옆에 줄을 서 있다. 그리고 김을 굽거나 알배추를 씻고 간장이나 된장을 뜬다. 고봉밥을 양껏 푼다. 그러면 식사 준비는 끝이다.


   이제부터 새벽 세 시에 잠들기 전까지가 그의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행복하게 먹는 일이 이어진다. 고봉밥을 먹고 나면 후식으로 과일을 먹거나 삶은 달걀이나 고구마를 먹는다. 그러고 나면 축구나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과자를 먹는다. 거실 소파에는 대부분의 가정에서 김치통으로 쓰는 커다란 플라스틱 통이 있고 그 안에는 서너 종류의 과자가 부어져 있다. 과자를 먹고 나서도 항상 아쉬움이 남아 냉장고 문을 열어 본다. 가끔은 그릭요거트나, 샐러드, 샌드위치로 가득한 칸에서 그릭요거트만 집어서 꿀을 듬뿍 뿌린다. 대부분은 그 아래 칸에서 핫바나 핫도그를 꺼내 레인지에 돌리고 케첩을 듬뿍 뿌린다.


   이렇게 그의 밤은 행복하고 아름다운데 딱 한 명, 방해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그녀, 그의 아내이다.    


   그녀와 그는 같이 일한다. 그는 카운터 담당이지만 그녀는 매장 관리를 전담하고 있어 그녀의 업무 강도가 훨씬 세다. 오후 세 시에 점심을 같이 먹는데 그녀는 항상 그에게 공깃밥 반 공기를 덜어 준다. 그러고 나면 그녀는 밤 12시가 좀 넘어 잠들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는 새벽 여섯 시가 되기도 전에 일어난다. 늦은 시간에 아구아구 먹는 그의 맞은 편에 앉은 그녀는 애써 참고 있지만 지루한 표정이 역력하다. 가끔 물만 마시고 매일 그가 권해도 음식에는 일절 손을 대지 않는다. 그녀도 분명 배가 고플 텐데, 행복한 저녁식사 시간에 그녀도 맛있게 음식을 같이 먹어 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매일 생각한다.


   그녀는 밤 11시부터 지루하다.


   그녀는 오늘 밤에도 고된 시간을 버티고 있다. 점심을 먹은 지 8시간이나 지났으니 몹시 배가 고프다. 바닥에서 등을 뗀 지 17시간이 지났으니 몹시 피곤하고 졸리다. 그러나 그가 저녁식사를 마칠 때까지 그를 쳐다보고 있어 줘야 한다. 그녀는 참 이해하기 힘들다. 그는 왜 혼자 밥을 먹지 못하는가. 그가 밥을 먹는 동안 그녀는 샤워를 하면 안 되는 걸까? 그러고 나서 그녀 담당인 설거지를 하고 곧장 잠들면 얼마나 좋을까.


   그녀도 이십 대까지는 아무리 늦은 시간에 술을 마시고 밥을 먹어도 아침이면 거뜬했다. 밤새 내린 눈이 제설차에 치워져 있듯 그녀의 위장도 그녀가 자는 동안 제 할 일을 깔끔하게 처리해 주었다. 야행성 인간으로 살기에 좋은 능력이었다. 그런데 서른이 넘으면서 야식을 먹은 날이면 새벽부터 두통에 시달리며 잠에서 깨는 일이 슬그머니 생기더니 이제는 밤에 조금만 음식을 먹어도 무조건 두통약을 먹어야 한다. 자연스럽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아침밥을 먹는 아침형 인간이 되었다. 여덟 시쯤 아침을 먹고 오후 세 시쯤 점심을 먹고 밤에는 그냥 잠드는 습관에 정착하면서 그녀는 몸이 가뿐해짐을 느꼈다.


   또 그가 걱정돼서 수도 없이 말했지만 그는 음식을 지나치게 짜게 먹는다. 식당에서도 국에 김치 국물을 붓거나 김치를 넣어 벌겋게 만들어 먹는 것을 좋아한다. 라면을 끓여도 고추장을 더 풀고 고기쌈을 먹을 때는 몇 번이고 리필할 정도로 쌈장을 듬뿍듬뿍 얹는다. 반면 그녀는 몹시 싱거운 음식을 좋아한다. 거의 간이 되어 있지 않은 음식이면 더 좋다. 샐러드나 샌드위치조차도 소스 맛이 강하면 짜다고 느끼고 비빔밥을 먹을 때면 고추장을 콩알만큼만 넣어 흰밥에 나물을 치댄 것과 마찬가지인 채로 먹으며 라면을 끓일 때는 면 반 개에 수프는 사분의 일만 넣는다. 그런 그녀에게 그가 한 음식은 짜도 짜도 너무 짜다. 조금만 먹으면 소금기를 희석시키기 위해 몇 시간 동안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야 한다. 밤에 먹는다면 화장실에 들락거리느라 잠은 다 잤다.

  

   배고픔을 잊기 위해서라도 얼른 자고 얼른 아침을 맞이하고 싶다. 그러나 그가 고봉밥을 얼큰한 찌개와 함께 퍼먹고 후식으로 과일을 먹는 단계까지는 맞은편에 앉아 있어 주어야 한다. 그는 매일 거절당하면서도 신기할 정도로 매일 그녀에게 음식을 권한다. 여러 번 권한다. 이것 좀 먹어 봐라, 저것 좀 먹어 봐라..... 조금만 먹어 봐라, 한 숟가락만 먹어 봐라.... 그녀는 묻고 싶다. 그는 아침 여덟 시에 매일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며 아침식사를 할 수 있는지. 그녀가 좋아하는 샐러드나 샌드위치를 매일 조금만, 한 입만 먹고 싶은지. 너무 치사한 질문이라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지만 밤마다 같은 질문을 마음속으로 던져 본다. 이심전심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지만. 그가 텔레비전 앞으로 옮겨 가 과자통을 집어 들면 밥 먹는 것을 관람하는 그녀의 임무는 종료된다. 설거지를 하고 샤워를 하고 드디어 잔다.


   그는 궁금하다. 그녀가 같이 먹기만 하는 것도 힘든가?

   그녀는 궁금하다. 그가 혼자 먹기만 하는 것도 힘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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