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된다는 것
햄버거가 그리운 날이다.
회사에서 진행한 일들이 처음부터 다시 하게 되었고
이에 대한 큰 질책을 받게 되었다.
직장인 N년차가 되었어도 적응이 안 되는 건 여전히 많다.
아침 출근길, 야근, 상사의 질책
가끔은 나도 퇴사를 꿈꾸고 있다.
모든 직장인들이 사표를 가슴에 품는다고 하는데
나 역시도 결혼 전에는 자존심 상하면, 그만둬야지 라는 생각을 가졌다.
"왜 참아? "
"상사면 다야?"
"치사하고 더러워서 그만해야지"라는
마인드로 어느덧 중간관리자가 되었다.
그리고 현실은
오히려 더 치사하고
더 더러운 상황에서도
그럼 그렇지 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게 되었다.
직장인 스킬이 +1 된 걸까.
내 자존심 -1이 된 걸까.
확실한 것은,
자존심이 밥 먹여 주지 않는다 것이다.
내 얄팍한 자존심을 지키다가는
우리 세 식구를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결혼 전, 모은 돈이 많지 않기에 열심히 돈을 벌어야 했다.
그리고 곧 태어날 아가에게
좀 더 좋은 음식, 옷, 장난감을 사주려면
매일 같이 마시는 커피 한잔 값도 아껴야 했다.
가끔 퇴근길
붉어진 얼굴이 진정이 안되면,
집 근처 공원으로 발길을 돌린다.
공원 벤치에 앉아 생각한다.
요즘 들어 종종 아버지가 생각이 난다.
결혼 이후부터인 것 같다.
어릴 적 아버지는
동네 중, 고등학교에 햄버거를 만들어 납품하셨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아버지는 항상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새벽에 만든 햄버거를 잔뜩 실은 채
쌀집 자전거를 타고 배달 가셨다.
그런 아버지는 늘 말했다.
"공부 열심히 해라, 나처럼 고생하지
않으려면"
하지만 사춘기 중학생이었던
내게는 그저 듣기 싫은 부모님의 잔소리였다.
고등학생이 되었고
아버지는 내가 다니는 고등학교 매점에 햄버거를 납품하셨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부끄러워
아침 등굣길을 아버지와
따로 다녔다.
배달 오신 아버지를
만나도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 역시 사춘기 아들을 배려하시 듯
별말씀 없이 나를 모르는 척해주셨다.
우연히, 체육수업 중 몰래
음료수를 사 먹으러 가는 길,
매점 입구에서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운 매점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납품하지 말랬는데, 왜 가져왔어요?
정말 웃긴 아저씨네, 나 못 팔아주니깐 다시 가져가요."
순간적으로 숨이 턱 하니 막히며,
몸이 움츠려 들었다.
그리고 조용히 매점 밖
작은 창문을 들여다봤다.
아버지가 서계셨다.
아버지의 어깨는 잔뜩 움츠려 들었다.
아버지는 매점 아주머니의 목소리보다
훨씬 작은 목소리로 망설이듯
이번만 팔아달라고 부탁을 하셨다.
그렇지만 매점 아주머니는
더 이상 안된다고 하며
햄버거를 매대 옆으로 치웠다.
밀려나간 햄버거가
.
툭
바닥에 떨어졌다.
아버지의 자존심이
바닥에 떨어졌다.
하지만 아버지는 햄버거를 주으며
사람 좋게 웃으셨다.
"허허.. 사장님 이번만 봐주세요.
이렇게 만든 거 다 어떡해요.."
연극을 보는 것 같았다.
아버지의 모습이 낯설었다.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황급히, 아버지에게 내 모습이 들킬까
교실로 뛰어갔다.
숨이 턱밑까지 찼다.
그리고 그날 밤
"다녀왔습니다..."
나를 먼저 반겨준 건 진한 정적이었다.
아무 일 없듯 방에 들어와 잠에 들었다.
그날만큼은
아버지의 붉어진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다음 주부터
아버지의 햄버거는 친구들 사이에서
패티를 닭대가리로 만들어서
잘렸다는 소문과 함께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나의 아버지는 최선을 다하셨다.
본인의 자존심을 햄버거와 바꾸셨다.
햄버거는 우리 가족에게
집안의 온기였고,
따뜻한 밥 한 끼였다.
그리고, 철없는 사춘기 아들의 용돈이었다.
그렇기에
나도 내 가족을 위해 힘든 일 있어도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그날의 아버지처럼 어깨를 움츠렸다.
그리고 내 자존심도
.
툭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버지가 그러하듯
나 또한, 아버지가 되어가고 있다.
햄버거가 그리운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