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읽는 이는 기가 막히겠지만 아직도 남녀가 반을 갈라 따로 앉는 교회를 태어나서 20년 넘게 다녔다. 술과 유흥을 멀리하였고 이성을 사귄다는 것은 매우 은밀한 첩보작전이었으며 하필이면 정치적 지역 배경도 보수의 골수를 잇는 아래 지방에서 세뇌되어 자랐다.
이제는 몸이 사는 곳도 마음이 사는 곳도 고향을 떠나 새 자리를 틀었다.
여전히 음주는 하지 않지만 가무는 즐겁고, 지인들과의 오락을 즐기는 흥 좀 나부끼는 유흥 40대 여인으로 사는데.
하 그거 참, 아무래도 소싯적 누비던 그 달동네 기운이 아직 몸에 남아 있단 말이지? 골목 지나가며 훈수 두던 할매들 마냥, 지나가는 여러 '꼬라지'들에게 참견을 멈출 수가 없다. 유모차를 밀고 마트의 냉동 코너를 지날 때, 내 새끼 양말 안 신은 발을 보며 혀를 끌끌 차던 할머니가 적잖이 귀찮았었는데.
오늘, 꼴랑 40 조금 넘은 아지매가 그날의 할머니가 되기로 자처한다.
살아보니 그려, 잔소리도 적당히 들으면 피가 되고 살은 안 돼야.
젊은이들, 그리고 마음만은 젊은이들.
혹시 좀 따분하면 여기 와서 잔소리 한 사발 잡숫고 가셔.
내가 마침 하려던 말이 이 말이네 싶으면 그렇지 그렇지, 맞장구 쳐줘도 좋으네.
고리타분하다 못해 골이 따분하다 싶으면 惡플 달아도 괜찮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