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의 허구적 자궁에 착상한 허구적 수정란은 순조롭게 성장해 나갔다. 정말로 임신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수염은 히스테리를 부리기도 하였으나 입덧도 없이 착실히 배를 불렸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덧 산달이 다가왔다.
울리희는 수염의 볼록한 배에 귀를 가져다 댔다.
벌써 옹알이를 시작한 것 같은데?
울리희가 속삭이듯이 말했다.
그럴 리가.
수염이 퉁퉁거렸다.
아니야. 정말이라고. 가만히 있어봐.
울리희가 수염의 배를 쓰다듬었다.
수염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뱃속 깊은 곳에서 찌릿한 통증이 일었다. 수염은 다시금 울리희에게 있지도 않은 난자를 기증받은 것을 후회했다. 어쩌자고 대책 없이 그런 짓을 저질렀을까. 이중 부정의 마법이 가져다주는 황홀경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수염은 매일 밤 거대한 인큐베이터가 되는 꿈을 꾸었다. 자신이 정말로 울리희의 아이를 품고 있는 그릇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울리희는 수염이 느끼는 우울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야단법석을 떨면서 태교를 하겠다고 수염을 성가시게 할 뿐이었다. 한번은 수염의 서재에 들이닥쳐 울리희의 입맛에 맞지 않는 책들을 모두 폐기하려고 한 적도 있었다. 이에 수염은 폐기 대상인 책들을 한 장씩 찢어서 먹어버리는 것으로 맞섰다. 울리희는 두 손을 들고 항복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그 불온한 문자들이 뱃속에 든 아이를 더럽히기라도 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그렇게 분서갱유는 실패로 돌아가고 울리희는 다른 꿍꿍이를 실천했다. 뱃속에 든 아이가 더욱더 진정한 울리희가 되기를 바라면서 정성스레 자신이 쓴 일기를 낭독하고는 소감이라도 들으려는 듯이 수염의 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수염은 매일 밤 이런 의식을 치르는 것이 짜증스러웠다.
저리 좀 가.
수염이 신경질을 내면서 울리희를 밀쳤다.
왜 그래? 애가 다 듣겠어.
울리희가 수염을 타일렀다.
내가 지금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인데?
수염은 쇳소리를 질렀고 별안간 울음을 터뜨렸다. 산달이 다가올수록 수염이 눈물을 흘리고 신경질을 부리는 날이 많아졌다. 그럴 때마다 울리희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수염이 진정할 때까지 등을 토닥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무리 등을 토닥여도 수염은 울음을 멈추지 않았고 급기야는 질긴 비명을 내질렀다.
맙소사. 양수가 터졌어.
울리희는 수염의 아랫도리가 젖어있는 것을 보고 벌어진 입을 틀어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