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87'
1987년, 모두가 아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다룬다. 영화 '1987'은 그 사건으로 인해 뜨거웠던 대한민국을 집중 조명한다. 사건에 집중한다기보다는 영향을 받은 인물들을 비추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1987년 1월, 그 사건으로 시작하여 1987년 6월, 항쟁에 이르는 과정을 인물에 중점을 두며 그려나가고 있다. 여러 인물이 등장하지만 그 비중은 균형 있게 나뉘어 있고, 그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왜 엇갈려야만 했는지를 특별한 감정의 동요 없이 담은 작품이다. 그러나, 영화가 전체적으로 담백한 듯하면서도 뜨겁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픈 역사적 과거를 다룬 결과일 것이다. 여러 배우들의 연기가 탁월하고 그 균형이 적절하며, 영화의 서사 또한 매끄럽게 전개된다.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뉜듯한 서사의 구분도 자연스럽게 이어져서 영화는 지루함이 없다. '그들의 선택이 세상을 바꾼다'라는 포스터의 문구처럼 영화 '1987'은 인물들의 내면과 선택에 집중하고 있다. 영화를 보면 그들과 함께 마음이 뜨거워지는 한국적 감정의 요동을 피할 수 없는 영화 '1987'이다.
모두가 아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시작으로 '6월 민주 항쟁'까지 대한민국의 아픔이 스며든 1987년을 감정적인 시선으로 담백하고 뜨겁게 다룬다. 감정적인 시선으로 담백하게 표현한다는 것은 흥미롭다. 시선의 이유는 국가적이고, 역사적인 아픔을 공유하는 부분일 것이고, 담백한 표현은 '장준환' 감독의 영화적인 접근의 이유일 터다. 하지만. 영화 '1987'은 특정 사건들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으로 인해 영향을 주고받은 주변 인물에게 집중한다. 그들은 왜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고, 왜 엇갈려야 했는지, 그리고 그들이 걸어가는 길은 왜 다른지를 각 캐릭터 내면에 집중하여 그리고 있다. 인물들의 내면에 집중하고 담백한 표현과 연출로 인해 관객들은 마음이 뜨거워진다. 역사적인 아픔을 공유함과 동시에 각 인물들에게 몰입할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된다. 여러 인물이 등장하지만 각 인물의 서사가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해진다. 그리고 각 서사들이 연계되면서 영화 '1987'을 완성한다. 세밀하고 촘촘하게 인물들이 연결되어 있어서 이야기의 재미 또한 더해진다. 이에 더해 실화를 바탕으로 깊은 서사가 모여 한줄기의 굵고 힘 있는 이야기로 영화 '1987'은 비로소 완성된다. 그 결과로 대한민국 국민이 가질 수 있는 감정적인 만족과 위로를 함께 경험한다.
'박처장' 역을 맡아 놀라운 열연을 펼친다. 배우 '김윤석'이 가진 힘과 깊이를 알 수 있는 배역으로 느껴졌다. 호흡, 눈빛, 표정, 어휘와 어투까지 그는 '박처장' 그 자체였다. 또한 그가 배우로써 가진 내공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김윤석' 배우가 맡았던 대표적인 악역, '타짜'의 '아귀'와 다른 분위기를 뿜어낸다. '타짜'의 '아귀'가 가벼운 듯하면서도 날것의 카리스마가 있다면, '1987'의 '박처장'은 진중한 분위기로 영화의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놀라운 카리스마를 선보인다. 어쩌면 그 시대의 잘못된 신념을 지닌 인물상으로 대표될만한 캐릭터다. 그는 1987년, 그 시대의 모습을 대변할 수 있는 인물로 영화 '1987' 서사의 중심이며 근간이다. 자신의 신념을 무너뜨리지 않는 대담하고 꼿꼿한 인물로써 '박처장'의 위압감은 스크린 밖까지 그대로 전해진다. 필자는 영화 '1987'의 '박처장' 역을 보면서 '어벤저스'의 '타노스' 캐릭터가 떠올랐다. 얼핏 비슷한 분위기로도 보이는 두 인물은 자신의 확고한 신념에 따라 움직이는 캐릭터다. 악의 축으로써 강력하고 압도적인 느낌의 인물을 세움으로써 영화 '1987'은 긴장감과 영화적인 재미를 동시에 갖게 되고, 그것은 관객들에게 영화의 매력으로 다가오게 된다.
모든 배우가 자신의 몫을 정확히 가져간다. 돋보임 없이 균형 있게 잡힌 배역의 비중이 영화 '1987'을 더욱 빛나게 한다. 한 인터뷰에서 전해진 것처럼 영화에 임하는 배우들의 자세가 조금 특별했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아픈 과거를 다룬 영화인만큼 배우들의 진심이 관객들에게 전해진다. 주, 조연의 역할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모든 배우가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감당하고, 배역들의 합이 적절하다. 그 안에는 각 캐릭터만의 유머로써 무거운 분위기를 쇄신시켜주는 유쾌한 부분도 있다. 그 균형이 최적의 수준으로 잡혀있으며, 배우들의 열연이 있었기에 가능한 부분이다. 특히, 각 인물 간의 연계가 흥미롭다. 세밀하고 촘촘하게 연결된 서사의 끈이 이야기의 깊이를 더해주고, 전개에도 영향을 미쳐 영화적인 매력을 배가시킨다. 역사와 아픈 과거를 다룸으로써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부분을 '장준환' 감독 역시 간파한 걸까? 그는 감정적인 시선으로 이야기를 담백하게 담았고, 그를 뜨겁게 표현했으며, 여러 인물들의 적절한 균형으로 서사의 지루함을 덜고 재미를 더한 섬세한 연출로 관객들의 마음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