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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현 Oct 08. 2022

질문, 세상을 바꾸는 힘

파리 메트로 4호선 Odéon역에서 5~6분 정도 걸어가면 앙시엔 코미디 가(rue l’Ancienne-Comédie)에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 ‘르 프로포크(Le Procope)’가 있다. 나폴레옹이 커피값 대신 모자를 맡긴 일화가 있는 유서 깊은 곳이야. (나중에 엄마랑 꼭 가보자) 파스칼에게 커피를 배운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 프란체스코 프로코피오 데이 콜텔리(Francesco Procopio dei Coltelli)가 1689년에 파리 최초로 커피하우스를 개점하였어. 카페 르 프로코프가 개점한 후 정확히 백 년 후에 프랑스 대혁명이 발생한다. 카페와 대혁명이 무슨 상관이 있냐고 반문하겠지만 18세기 카페의 역사는 곧 계몽주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야.


르 프로포크는 개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유명 배우, 작가, 음악가, 철학가들이 애용하면서 ‘문학 살롱’, ‘철학 살롱’으로 자리를 잡았어. 그중에서도 볼테르와 루소가 단골손님이었지. 프랑스혁명으로 바스티유 감옥에 갇힌 루이 16세는 이렇게 외쳤다고 해. “나의 왕국을 무너뜨린 놈은 볼테르와 루소 두 놈이다!” 도대체 볼테르와 루소는 무슨 짓(?)을 했던 걸까?


프랑스의 카페는 영국과 달리 남녀의 출입이 자유로웠다고 해. 평민들은 카페에서 볼테르와 루소 같은 지식인들의 대화와 연설을 들으면서 세상의 눈을 떠가기 시작했지. 카페에서 이루어진 계몽사상가들과 시민들의 교류와 공감대가 앙시앵레짐 ancien régime(혁명 전 구체제)를 무너뜨리는 원동력이 된 것이야. 그들은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열띤 토론을 벌였어. “권위를 믿지 말라.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은 것은 무엇이든 믿지 말라. 네 스스로 생각해 보고 직접 시험해 보라.” “왜 세상은 불평등한가?” “국가는 어디에서 왔는가?” “왜 왕과 귀족만이 특권을 가지는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꿀 수는 없는가?” 커피 잔에는 커피뿐만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회외와 질문들로 넘쳐흘렀어.


1789년 7월 12일 일요일 오후 29살 젊은 언론인 카미유 데물랭 Camille Desmoulins이 카페 드 프와(café de Foy)에서 비장한 표정으로 걸어 나와 팔레 루아얄 광장에 있는 군중 속으로 들어간다. 이어 단상에 오른 그는 “시민 여러분, 우리에게는 한 가지 선택만 남았을 뿐입니다. 모두 무기를 드십시오!”라고 외쳤고 연대와 식별의 표식으로 보리수 나뭇잎을 모자에 붙였어. 그의 연설에 고무된 시민들은 상이군인회관으로 몰려가 무기를 탈취하고 이틀 뒤에 바스티유를 점령하게 되지. 이렇게 프랑스 대혁명의 방아쇠는 당겨졌어. 그 후 카페 드 프와(café de Foy)는 프랑스혁명 정신의 발화점이라는 명성을 갖게 되었다.

 

사상 없는 혁명은 없다. 대혁명의 사상의 싹이 튼 곳은 바로 카페였어. 권리 없이 의무만을 주어진 평민들에게 카페에서 왜라는 질문을 배우기 시작하였고 1789년 8월 26일 그 결과물로 프랑스 인권 선언이 채택되었다.

제1조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평등할 권리를 갖는다. 

제2조 모든 정치 조직은 인간의 천부적이고 소멸될 수 없는 권리를 지키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그 권리란 자유, 재산, 안전 그리고 독재에의 저항 등이다.

제3조 주권은 본질적으로 국민에게 있다.

우리가 학창 시절에 암기했던 자연권은 이렇게 카페에서 질문으로 시작되어 프랑스 대혁명으로 공식화되며 완성되었다. 


1961년 이스라엘 예루살렘 법정에서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이 열렸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독일 친위대 장교였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중 유럽 각지의 있는 유태인을 체포하고 강제 이주시키는 홀로코스트의 실무 책임자였어. 전쟁이 끝난 후 아르헨티나에 숨어 살던 그를 모사드가 납치하여 이스라엘 법정에 세웠다. 악의 화신으로 알려진 실제의 그의 모습은 사람들의 상상과는 달리 중간 정도 체격에 호리호리한 중년으로 평범한 50대 옆집 아저씨의 모습이었어. 


아이히만은 줄곧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였어. “신 앞에서는 유죄 일지 모르나 법 앞에서는 아닙니다.” “나는 독일의 군인 공무원이었습니다. 행정직을 맡았고 유대인을 수송하는 역할을 수행했을 뿐입니다. 상부에서 시킨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건 그 당시 독일에서는 합법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주장에 경악을 금치 못했으며 정신과 의사 여섯 명이 아이히만의 정신감정을 진행했어. 그 결과도 예상 밖으로 충격적이었지. 아이히만을 감정했던 한 명의 정신 전문가는 “아이히만의 정신은 내 정신보다 훨씬 더 정상이다.” “이런 사람은 좋은 이웃, 좋은 아버지, 좋은 남편일 수 있는 사람이다.”라고 말했어. 또 그와 면담한 성직자는 그를 매우 긍정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했을 정도였지. 아이히만은 원래 평범한 노동자였으며 나치당에 가입한 이유도 생계 때문이었다고 해. 평생 살면서 유대인을 미워한 적도 원한을 품은 적도 직접 죽인 적도 없었다. 그는 유대인 지도자와 말다툼을 하다가 따귀를 때린 적이 있었는데 그걸 두고두고 후회했던 마음 약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독일 출신의 유대인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본 후 이렇게 말했어. “아이히만이 가진 근면성 자체는 죄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그가 유죄인 명백한 이유는 ‘무사유’ 때문이다.”


논어에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仁)’란 말이 있어. 공자의 제자 자공이 스승 공자에게 평생 따라야 할 가르침을 달라고 하자 공자가 제자에게 내린 가르침이야.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는 뜻이지. 아이히만이 이런 사유를 했더라면 그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텐데. 아이히만뿐만 아니라 히틀러도 이런 가르침을 알았다면 2차 대전의 비극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히틀러와 아이히만이 서양 사람이라 공자의 가르침을 몰랐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서양 철학자도 그런 이야기를 한 사람이 있었어. 아이히만과 히틀러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독일의 철학자 칸트도 비슷한 가르침을 말했지. 그것이 그 유명한 ‘정언 명령’이야. “네 의지의 준칙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로 타당할 수 있도록 행위하라.” 이 뜻은 “네가 개인적으로 하려는 일이 동시에 모든 사람이 해도 괜찮은 일인지 생각하고 행동하라”이다. 게다가 칸트보다 훨씬 이전에 위대한 예수는 이렇게 말했었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히틀러는 굉장한 독서광이었다고 해. 56세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을 때 남긴 책이 1만 6천 권에 달했다고 하는데 그중에 성경과 칸트의 책은 없었나 보다.


무사유는 평범한 사람도 쉽게 악인이 될 수 있는 ‘악의 평범성’에 빠질 수 있게 만든다. 아렌트에 의하면 "악이란 비판적 사유의 부재"이다. 질문과 성찰이 부재한 사회에서는 소위 선량한 시민도 왜곡된 이데올로기에 선동됨으로써 자신도 모르게 '인류에 대한 범죄'의 공범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질문의 확대 없이는 다양한 인간의 권리가 확대되는 것은 어려워. 난민 혐오, 성소수자 혐오, 여성 혐오, 가난한 사람 혐오뿐만이 아니라 저학력자, 비정규직, 장애인 등 사람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한국 문화는 결국 비판적 사유의 부재, 질문의 부재가 가져온 ‘한국판 악의 평범성’이라 할 수 있어. 


주체적으로 사유하고 사회에 대한 회의와 질문하기를 회피한다면 나의 정체성을 타인에게 외주를 주는 셈이야. 대중으로부터 사유를 외주 받은 세력은 나를 대신해 내 삶의 방향을 제시하게 된다. “사유 없이 그저 소비하는 노동자가 되어라.” 그리고 내 행복의 기준을 사회가 만들어 준 규격에 맞추게 되지. 그리고 그 규격화된 기준에 자신이 들어맞지 않을 때 사람들은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주체성을 상실한 행복은 없는 법이니까.

 

세계사 시간에 배웠듯이 신에 대한 질문을 금기시했던 중세 시대를 암흑기라 불린다. 질문이 부재한 중세에서는 귀족, 성직자들에 의하여 대중들은 선동되고 착취당할 뿐이었어. 신앙을 통한 내세의 구원만이 절대적인 믿음이었던 중세 시대에 신앙에 대한 의구심이 들게 한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흑사병의 등장이었어.

 

14세기 중반 알 수 없는 전염병이 퍼지면서 사람들이 마구 죽어갔다. 인구의 1/3에 이르는 사람들이 사망했고 아침에 눈을 뜨면 가족과 친구가 하나씩 사라지는 공포스러운 시대였어. 중세에는 의학과 과학 지식이 부족했어. 교황의 자문 요청을 받은 천문학자들은 1341년 토성과 화성, 목성이 물병자리에 일직선으로 겹친 천체 이변이 흑사병의 원인이라고 판단했어. 그때에는 그저 신앙의 힘으로 치료하려는 시도만 되풀이되었지. 교회는 처음 보는 전염병을 타락한 인간을 향한 신의 회초리라고 여겼어. 신의 분노를 풀기 위해 대규모 참회 집회와 고해성사 같은 각종 종교 행사를 늘렸지만 흑사병은 오히려 빨리 퍼지게 되었지.


신분과 학식의 높고 낮음을 떠나 원인도, 해법도 알 수 없는 떼죽음에 대한 불안감은 머지않아 증오로 바뀌었어. 그 대상은 유대인이었다. 사회적 약자이면서 경제적으로는 시기의 대상이었던 유대인들은 알 수 없는 공포의 희생양이 되었어. 유대인이 악마의 사주를 받아 남몰래 우물에 독을 탔다는 소문이 유럽 각지에서 퍼지면서 수많은 유대인들이 학살을 당하였어. 게다가 고양이가 흑사병의 숙주라는 소문도 돌면서 사람들이 고양이를 무차별적으로 죽이기 시작했어. 포식자가 사라진 쥐들의 개체수는 불어갔고 흑사병도 들불처럼 더욱더 퍼져나가게 되었다.  


성직자들도 흑사병을 피해 갈 수는 없었어. 신의 대리인이라는 사제들도 흑사병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신의 말씀이 통하지 않게 되자 종교의 권위가 무너지기 시작했고 민중들도 회의하기 시작했다. “신은 인간을 사랑한다면서 왜 인간에게 이런 끔찍한 형벌을 내리는가” “신앙이란 무엇인가” “신이 버린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이런 의심에 찬 질문들이 이성주의의 발달을 촉진시켰으며 신에게 향했던 눈을 인간에게로 돌리기 시작했지.

 

이탈리아 작가 지오반니 보카치오 Giovanni Boccaccio가 1353년 서양판 천일야화로 불리는 ‘데카메론’이라는 소설을 세상에 내놓았다. 단테의 ‘신곡’이 신의 노래라면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은 ‘인곡’, 즉 사람의 노래였어. 데카메론은 흑사병이 이탈리아를 휩쓸던 1348년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에 귀부인 7명과 청년 3명이 열흘 동안 100개의 이야기를 나눈다는 내용이야. 데카는 그리스어로 10을 뜻해. 팬데믹을 피해 셀프 격리를 선택했던 10명의 남녀들이 소일거리로 서로의 이야기를 풀어낸 것들이야. 이 이야기 속에서 인간의 자유로운 욕망들을 거침없이 표현했으며 이로 인해 데카메론은 오랜 기간 동안 금서로 지정되었어. 데카메론은 그동안 신에게만 향했던 관점을 인간에게 돌린 최초의 소설로 평가받는다.


죽음이 일상화된 시대에서 죽음의 공포로 인해 점차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된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어. 내일 아침 내가 눈을 뜰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현재를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어. 중세판 ‘카르페 디엠’이라 할 수 있지. 데카메론은 가치가 무너진 시대, 선악이 뒤얽혀 있는 사회의 모습과 그동안 억눌려 왔던 인간의 욕망을 가감 없이 묘사했다. 어쩌면 팬데믹을 이겨내려는 중세 사람들만의 예술적 치유 방식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이렇게 신에게만 향했던 시선을 인간에게 돌리고 신에 대한 회의와 새로운 질문들이 누적되면서 르네상스의 문을 열게 되었다.


현실의 변화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에 의해서 시작되었어. 인류의 역사는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은 모든 노력들의 결과이지. 앞서 말한 르네상스, 대혁명 등의 새로운 변화는 새롭고 인간을 향한 질문들이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었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다. 질문에 대한 답은 ‘성찰’을 통하여 얻을 수 있다. 소크라테스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나는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열정적으로 궁금해할 뿐이다.”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말이다. 아인슈타인의 놀라운 창의성은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바로 열정적으로 궁금해하는 것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재 불평등과 주체성이 상실되고 자본의 포로가 된 인류는 행복하지 않으며(소수만 행복하다) 우리에겐 또다시 새로운 질문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랑하는 나의 딸, 치열하게 사유하고 질문하거라, 너의 질문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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