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청지기 May 08. 2023

처음으로 카네이션을 드린 날

초등학교 6학년 일기장

1977년 5월 8일 (주일) 맑음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어버이에 대한 사랑을 다시금 느끼게 하는 뜻깊은 날.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머니 아버지에게 카네이션과 편지를 드렸다. 어머니께서는 내 편지를 읽고 눈물을 흘리셨다고 한다. 


정말 어버이 은혜는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넓고 강보다 깊다고 한다. 나 역시 부모님에게서 분에 넘치는 사랑만 받아왔다. 


걱정을 안 끼친 날이 없었고 불순종했던 적도 무척 많았다. 그러나, 오늘부터는 부모님의 만 분의 1이나마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공부하고 건강한 몸을 길러서 걱정 근심 시키는 일이 없도록 나 자신이 힘껏 노력해야겠다.


"어머니, 아버지 오래오래 사세요"




어버이날을 맞아 나의 초등학교 6학년 때 쓴 어버이날 일기를 공개한다. 


나는 3살 때부터 결핵을 앓게 되었다. 그리고 장애를 갖게 된다. 병약한 나를 업고 어머니는 동분서주하셨다. 생일이 빨라 초등학교를 7살에 입학했다. 1년 내내 병치레를 하며 출석과 결석을 반복하다가 2학년 때 하루 등교를 하고 더 이상 학교를 다닐 수 없었다. 


그리고 3년, 나는 집에서 혼자 지냈다. 당시에는 걷지도 못했기 때문에 방에만 있었다. 유일한 낙은 책이었다. 글을 깨우친 덕분에 나는 단절된 나만의 공간에서 책을 읽는 것 외에는 다른 놀이가 없었다.  계몽사에서 출판된 소년소녀문학전집과 위인전집을 몇 번씩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매월 말을 손꼽아 기다렸다. 아버지가 소년중앙이 나오면 사 오셨기 때문이다. TV가 없던 시절 라디오의 어린이 방송은 세상과 소통하는 하나뿐인 통로였다. 즐겨 듣던 라디오 어린이 드라마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에서 나오던 파란 해골 13호의 음흉한 웃음소리는 5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친구들이 보고 싶다며 부모님을 졸랐다. 그리고 3학년으로 복학했다. 2학년 하루 출석한 것이 전부인데 어떻게 3학년에 복학할 수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어쨌든 2학년 과정은 생략됐다. 그 후 2년 동안은 업혀서 학교를 다녔다. 부모님의 마음고생이 어떠했을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먹먹해진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드려도 부모님이 나에게 쏟은 정성과 사랑은 다 갚을 수 없다.  감사하게도 90을 훌쩍 넘기신 부모님께서 지금도 매일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신다. 멀리 지방에 계셔서 자주 뵙지는 못하지만 주말이면 메신저 화상 전화로 얼굴을 보고 싶어 하신다. 기력이 쇠하셔서 자신들의 몸도 제대로 가누기 힘드신데도 그분들은 아픈 손가락인 나를 아직도 걱정하시고 안부를 물으신다. 


"내가 부모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최고의 효도는 아프지 않는 것이다. "

작가의 이전글 어린이날 선물 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