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에 내가 없었다
사랑을 할 때, 우리는 조금씩 ‘나’를 내려놓는다.
그 사람의 말투를 따라하고,
그 사람의 눈빛에 의미를 부여하며,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덩달아 좋아하게 된다.
처음엔 그것이 애틋함이고, 헌신인 줄 알았다.
서로를 닮아간다는 건 낭만적인 일이라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어느 순간 문득,
거울 앞에 선 내가
더 이상 낯설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의 얼굴처럼 느껴졌을 때
나는 알게 되었다.
무언가 잃어버렸다는 걸.
그리고 그것이 ‘나’였다는 걸.
그 사람을 사랑하면서
나는 점점 조용해졌고,
내가 좋아했던 것들을 ‘의미 없는 것’이라며 접었다.
내 감정을 얘기하면 “그건 예민한 거야”라는 말이 돌아올까 봐,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내 마음의 소리를 닫고
사랑의 기준을 그에게만 내어주었다.
이상하리만큼…
그 사람의 세상은 점점 더 또렷해졌는데,
내 세계는 흐릿해졌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나는 점점 투명해졌고,
결국엔 그 사람이 떠났을 때
내 안엔 나조차 없었다.
사랑이 끝나고 나서야,
나는 침묵 속에서 나를 불러야 했다.
이름 없이 존재하던 나를
조심스럽게 다시 불러내야 했다.
무엇을 좋아했는지,
무엇을 두려워했는지,
무엇에 설레고 상처받았는지를
하나하나 다시 배워야 했다.
어쩌면 내가 나를 잃는 순간은
누군가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을 잃지 않기 위해
나를 버릴 때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조금 달라지고 싶다.
사랑을 하더라도 나를 잃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의 마음에 머물더라도
나의 마음을 먼저 돌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랑하는 일과 나를 지키는 일이
동시에 가능하다는 걸 믿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나를 잃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과
다시 사랑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