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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메이트 May 09. 2024

짧은 만남, 영원할 추억

4일 차: 순천->남해

나>> 여기 이제 전라도 아니야.

붑커>> 정말? 그럼 우리 엄청 멀리 왔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화개장터를 거치진 않았지만 바닷가를 따라 광양과 하동의 경계를 가로질러 경남 남해까지 달려왔다.



금산 보리암에서 내려다보이는 남해바다를 감상하기 위해 오르막 도로를 올라가는 길이었다. 래에 있는 제1주차장에서부터 올라가려면 너무 멀어서, 꼭 위에 있는 제2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가라는 글을 인터넷에서 미리 보고 온 참이었다. 그런데 1주차장에서 가로막혔다.

"오토바이는 못 올라갑니다."

"헉. 왜요..?"

"경사가 너무 가팔라서 위험해요."

직원분은 대신 택시를 부르거나 버스를 타고 올라갈 수 있다고 알려주셨다.

"그런데 버스를 타려면 여러 사람이 모일 때까지 기다려야 해서 오래 걸릴 수도 있어요.."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며 어떡할까, 택시를 잡아야 하나 고민하는데 눈앞에 흰 차가 한 대 지나간다. 우리는 이때다 하고 손을 번쩍 들었다.

국내에선 히치하이킹 문화가 별로 없기 때문에 세워주실거란 기대 없이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손을 들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정말로 차가 멈춰섰다!

내려간 창문으로 보인 얼굴은 인상 좋 중년의 부부다.

"정말 타도 돼요!?"

기대치 않았던 행운에 우리는 얼떨떨해 하면서도 냉큼 차에 올라탔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두 분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홍성에서 오셨다는 두 분은 보리암에서 기도를 드리러 당일치기로 잠시 내려오신 거라고 했다. 태워주시는 동안 이것저것 먼저 물어봐주신 덕에 보리암까지 올라가는 시간이 전혀 어색하지 않고 즐거웠다.

"그럼 바이크 타고 익산에서부터 온 거예요?" 운전중이신 아버님께서 물으셨다.

"네~"

"아이구 좋겠다. 젊으니까 바이크로 이렇게 여행도 다니지. 아무데서나 멈추고. 자고 싶은데서 자고. 배고프면 먹고. 그쵸?"

"어머 너무 좋다. 우리 아저씨도 바이크 타는데." 옆에 계신 어머님께서 엄지를 치켜 세우며 거드셨.

"오, 무슨 바이크 타세요?"

"아저씨는 할리 데이비슨."

할리 데이비슨이라는 말에 남편의 눈이 반짝인다. 

"우와. 큰 거 타시나봐요."

"맞아요. 1700cc 짜리."

와우. 이번에는 남편이 엄지를 척 세운다.


바이크 이야기를 하다 보니 보리암까지 금방이었다.

"천천히 조심해서 잘 다녀요~"

"감사합니다~!"

따뜻한 분들을 만나서 절에 오르기 전부터 마음이 뿌듯했다. 매점이 있으면 작은 커피라도 사드리고 싶었는데 보답할 만한게 아무것도 없어서 조금 아쉬웠다.



보리암까지는 20분 정도 오르막 산길을 걸으면 되었다. 절에 오르면 금산의 쏟아져 내릴듯 솟아오른 바위 봉우리들이 주변을 감싸고 있고 아래로는 해안가가 내려다보인다.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세우고자 보리암에서 기도를 드리고는 훗날 왕이 되어 그 보답으로 비단이라는 뜻의 금산이라는 이름을 이 산에 내렸다고 한다. 아직도 그 기도한 자리가 리암의 한쪽에 아있어 사람들도 각자의 소원을 빌기 위해 발걸음을 한다. 리도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도록 맘속으로 기도를 했다.



보리암에서 내려가는 길에도 정류장에 버스는 없었다. 혹시 올라올 때와 같은 운이 따라주려나 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때 한 사람이 이제 막 내려가려는 듯 차에 올라타고 있었다. 우리는 용기를 내어 그분에게 다가갔다.

"저기.."

"네?"

운전자는 우리와 비슷한 나이대의 청년이었다.

"혹시.. 내려가시는 건가요?"

"네 맞아요.'

"앗 저희도 내려가는데.. 괜찮으시면 저 아래 주차장까지만 태워주실 수 있을까요..?"

"아 네네 타세요."

오 세상에. 오늘만 벌써 두 번째로 이런 천사같은 분을 만나다니.

"감사합니다~ 진쫘 감사합니다~" 남편이 연신 인사를 했다.

태워주신 분은 시흥에서 오셨는데 혼자 여행하는 걸 좋아해서 이 곳까지 왔다고 했다. 삼천포와 남해를 여행하고 오늘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하셨다.

"저희는 바이크를 타고 와서 여기까지 올라올 수가 없었거든요. 태워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아~ 바이크라 그랬군요. 멋있네요. 바이크로 다니시면 힘든점은 없나요?"

"음.. 비만 오지 않으면 괜찮은 것 같아요."

"아니야 힘드뤄 힘드뤄요." 남편의 장난스러운 대답에 웃음이 터졌다.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주차장까지 왔다.

"저게 저희 바이크예요. 덕분에 잘 왔어요. 감사합니다!"

"네~ 즐거운 여행 하세요."


우연히 마주친 낯선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소박한 유대를 만들어 나가는 것은 여행에서의 큰 즐거움 중 하나다. 불과 일분 전만 해도 전혀 몰랐던 평행선 같은 사이인데, 잠깐의 만남으로 두 선이 살짝 스치는 작은 교차점이 생기고, 때로 그 순간이 평생의 기억에 한 페이지로 남기도 한다.


짧은 시간에 고마운 사람들로부터 두번이나 도움을 받다니. 보리암에서의 기도가 벌써 효험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상주은모래해변이 보이는 어느 정자에서


남해의 작은 항구


여행 4일째. 130km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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