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에 오기 전 알바니아에서 심한 기침 감기를 앓았다. 미취학 아동일 때 이후로 이정도로 기침을 한 건 처음일 정도로독하게 아팠다. 병원을 갈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열은 나지 않아 그냥 약국에서 시럽만 사서 마시며 버텼다. 그랬더니 모로코에 도착하고 나서는 기침이 제법 가라앉긴 했다. 근데 모로코에서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갑자기 왼쪽 갈비뼈가 아파오기 시작한 것이다.
위치는 아래쪽 갈비뼈였는데 왼옆구리가 전체적으로 아프면서도 어느 한 점을 누르면 정수리까지 짜릿하게 머리가 곤두서도록 아팠다.
처음엔 그냥 물놀이를 너무 많이 했더니 근육통이 생겼는가 했다. 그런데 하루 하루 지날수록 통증이 심해졌다. 걱정이 되어 하루에도 몇번씩 아픈 자리를 두드려도 보고 살짝 눌러도 보았다.
나중엔 인터넷에 검색도 해보았다. 어디 부딪힌 적 없이 갑자기 생긴 갈비뼈의 통증.. 골절일 가능성은 없어 보였지만 한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바로 '기침에 의한 골절'이었다. 알바니아에서 밤낮으로 수백번 기침을 했던 걸 고려한다면 그리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사실 나는 여태껏 골절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지금 이 아픔이 뼈에서 기인한 것인지 아닌지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나>> 여보! 나 아무래도 갈비뼈 부러진 거 같아.
붑커>> 엥? 에이 그럴리가 없지.
나>> 아냐. 진짜야. 느낌이 딱 골절같애. 뚝 부러진 거 말고. 금이라도 갔을 것 같다구.
팔을 들어올리기도 힘들고 들숨날숨만 쉬어도 찢어지게 아픈데. 심지어 가만히 있어도 욱씬거린다. 이게 골절이 아니면 뭐람?
"좋아. 그럼 내기하자. 부러진 게 맞으면 붑커가 나한테 과일 사주고, 그런게 아니면 내가 한국음식 요리해줄게."
"좋아요!"
그렇게 나는 둘째 시누이 일함언니의 차를 타고엘자디다 공립병원 응급실에 갔다. 집 근처의 작은 병원에 가고 싶었는데, 모로코에서는 큰 공립병원으로 가는 것이 더 낫다고 했다. 작은 사립병원들은 과잉진료를 하는 경우도 더러 있어서이다.
병원에 들어서니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 사람들이 서넛 있었다. 소란스럽게 붐비는 응급실 광경을 상상하고 갔는데, 예상외로 조용하고 사람도 얼마 없었다. 10분도 안되어 금방 내 차례가 되었다. 진료실에 들어가니 젊은 의사선생님이 앉아 계셨다. 나는 일함언니의 도움을 받아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선생님은 병력을 다 들어보시고는,
"따로 검사는 안해도 되겠네요. 주사와 약을 처방해드릴게요."하셨다.
솔직히 엑스레이는 한번 찍어보고 싶었는데 그래도 의사선생님이 괜찮다고 하니 한편으론 안심이 되었다. 엉덩이 주사를 한대 맞으니 몇분 사이에 아픔도 완화되어 갔다.
응급실이라기에 비용이 더 나올 것을 걱정했는데, 놀랍게도 모든 비용이 무료였다.심지어 외국인인 나에게까지 말이다.
나>> 뭐야. 모로코 왜 이렇게 좋아?
붑커>> 그러게. 원래 완전히 무료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 사이에 바뀌었나 봐.
내가 갔던 공립병원의 입구
의사선생님이 써주신 처방전. 이렇게 수기로 작성한 처방전은 처음 보는지라 신기하다.
그로부터 3일간 처방받은 약을 복용했다. 미미하게나마 통증이 나아지는 게 느껴졌다. 아직 몸을 뒤척일 때 뻐근한 건 남아 있었지만 '이 정도라면 수영을 살살 해봐도 될 것 같은데?'하는 (멍청한!!)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약 복용 3일째가 되는 날 어리석게도 정말 물놀이를 해버리고 말았다.
결과는? 당연하게도 통증은 도루묵이 되었다. 아니, 전보다 더욱 극심해졌다. 이제는 밤에 잠도 설칠 지경에 이르렀다. 응급실에서 영상검사를 하지 않고 약만 받아왔던 게 생각나며 등골이 오싹해졌다.
'어엇. 이거 정말 큰일이다. 실은 정말 갈비뼈에 금이 갔던 건데 진통제로 통각만 누르면서 금간 자리가 더 벌어지게 만들었던 건 아닐까? 어휴 그러게 수영은 왜 해가지고! 하.. 사진 찍어보고 싶다고 그때 응급실에서 말할걸.'
다음날 아침 나는 옆구리를 부여잡고 동네 사립 영상의학과에 갔다. 사립병원은 우리나라의 여느 의원과 비슷했다. 나는 최대한 자세히 의사선생님에게 병력을 이야기했고 통증이 느껴지는 정확한 자리를 짚으며 말했다.
"여기. 딱 이 자리가 정-말 많이 아파요. 진짜 진짜 아파요."
나는 분명 요 지점이 부러졌을 것이라고 거의 스스로 진단을 마친 상태였다. 의사선생님은 엑스레이를 찍어보자고 하셨다.
결과는 놀라웠다.
"뼈에는 아무 이상 없습니다."
세상에. 뼈가 멀쩡해도 이렇게 아플 수가 있구나. 그럼 진짜로 뼈가 부러지면 얼마나 아플까.
붑커>> 다행이네.
나>> 으윽 멀쩡하다니. 진짜 너무 아픈데.
모로코의 영상의학과는 신기하게도 찍은 엑스레이 사진을 CD에 넣어주는 게 아니라 커다란 필름 자체로 서류봉투에 넣어서 주었다. 물론 엑스레이라서 가능했을 거다. CT나 MRI 같은 검사는 너무 여러장이라 이렇게 필름으로 주진 못하지 않을까.
아무쪼록 나의 갈비뼈가 안녕하다니 다행이었다. 그 뒤로 일주일 넘게 일절 수영을 금하고 약을 꾸준히 복용하고 근육이완 연고도 발랐더니 호전이 있었다. 원인은 오랜 기침에 의한 늑간 근육통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픈 건 서러웠지만 그 때문에 모로코의 병원에 발을 들여 보는 이색 경험을 했기에 옆구리에게 조금은 고마워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