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를 처음 갔을 때도 그랬다. '내가 아프리카 대륙을 밟게 되다니' 하는 감명이 있었다. 새로운 곳으로의 떠남은 언제나 가슴 벅차는 일이지만 특히나 새로운 대륙을 디딘다는 것은 또 하나의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과 같이 남다른 느낌을 준다.
중남미에 도착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아니 그 이상의 성취감이 차올랐다. 거대한 두 대양 사이에 자리한,육로로는 닿을 수 없는 땅 아메리카. 그곳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의 기분은 가장 어려운 숙제 하나를 완성해냈을 때의 그것과 비슷했다.
아침 출근시간 상파울루의 지하철
아메리카 여행의 문을 여는 나라는 브라질이다. 그중에서도 최대의 인구를 보유한 대도시 상파울루에 와 있다. 낯선 곳에 오자 설렘의 크기에 비례하여 두려움도 크게 다가왔다. 겪어 보지 않고는 모르지만, 오기 전부터 중남미의 치안은 누구나 혀를 내두를 정도로 좋지 않다고 들어왔기에 저절로 온몸에 힘이 빡 들어가고 눈이 부릅떠진다.
공항에서 나와 지하철에 들어간 시간이 아침 8시 경으로 출근시간과 겹치는 바람에 물밀듯 밀려오는 사람들의 파도에 뒤섞여서 정신없이 이동했다. 앞뒤 양옆으로 다른 사람들과 밀착되자 가방과 주머니가 더욱 신경 쓰인다. 지하철을 타려는데 방향도 헷갈리고 노선도는 봐도 모르겠다. 그때 가방을 멘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성분이 다가와 우리를 도와주었다. 꼬여 있는 색색의 노선들이 학생의 설명 한번에 명확해졌다.
"정말 감사합니다!"
즐거운 여행 하라며 해맑게 손을 흔들어 주는 그 학생은 단지 길을 알려준 것을 넘어서 경계심으로 잔뜩 경직되어 있던 우리의 마음을 토닥여 준 것이기도 했다.
상파울루의 지하철을 타면 재미있는 구석을 발견하게 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지하철이 들어올 때의 휘파람 소리이다.
"휘---익!!!"
보통 다른 나라들에서는 '지금 OO행 지하철이 역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라는 방송이 나오거나, '띠리링 띠리리롱'하는 안내벨소리가 나오곤 하는데 브라질은 그렇지 않았다. 각 역마다 경비를 서는 분들이 계셔서 지하철이 들어올 때 개찰구까지도 들릴만큼 강한 휘파람을 불어승객들에게 알린다.
또 한가지 특이했던 건 여성전용칸이 있는 것이다. 처음에 모르고 여성전용칸 앞에서 남편과 같이 줄을 서 있었는데 경비원분에게 제지를 받고서 알게 되었다. 그래서 여성전용이 아닌 칸에 타면 여자 승객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하나 더 의외였던 점. '라틴 아메리카'라고 하면 흥겨운 삼바 리듬, 살사, 정열의 춤사위, 축제 등의 키워드가 먼저 떠올랐기 때문에 왠지 만나는 사람마다 다들 외향적이고 어딜가나 떠들썩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근데 지금껏 다녀본 지하철 중에 브라질의 지하철이 예상외로 가장 조용했다. 대화를 하는 사람도 거의 없고 대부분이 핸드폰이나 책을 보고 있었다. 무엇보다 지하철이 굉장히 깨끗했던 기억이 난다.
브라질에 오자 가로수의 모양이 확연히 다르다. 빌딩과 맞먹게 키가 자란 길쭉하고 늘씬한 남미의 나무들이 머나먼 곳에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큰 광장이나 상가에는 다수의 경찰 인력이 배치되어 있다. 한쪽 다리엔 경찰봉, 다른쪽 다리엔 권총을 찬 경찰관들은 그 표정부터가 다른 나라의 경찰들과 사뭇 다르다. 날카로운 매의 눈초리로 사방을 노려보는 그 안광은 아무 잘못 없는 나까지도 쭈그러들게 만든다. 언제라도 달려들지 모르는 맹수들과 대적하는 광야의 전사같은 눈빛이랄까.
"살면서 이런 기분은 또 처음이네. 되게 안전하다고 느껴지면서 동시에 되게 위험하다고 느껴지는 곳이군."
내 말에 남편이 맞장구를 치며 웃는다. 가는 곳마다 경찰이 있기에 언제라도 날 지켜줄 수 있다는 안도감도 들지만, 또 그만큼 이곳의 치안이 불안정하다는 뜻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걷다가 잠시 앉은 공원에는 여러 명의 스케이트 보더들이 한창 연습중이다. 청년부터 중장년까지 보더들의 나잇대는 다양하다. 아기가 탄 유모차를 끌고 온 젊은 부부도 있었는데 남편이 보드 연습을 하는 동안 아내는 유모차 옆에 앉아 아기를 보며 남편을 응원한다. 레게 머리를 한 보더는 보드로 층계 가장자리를 아슬아슬하게 미끄러져 내려가는 기술을 연마 중이다. 두발을 자유자재로 춤을 추듯 보드를 타는 모습에서 어느 이념에도 얽매이지 않으려는 반항과 자유분방함 같은 것이 보인다.
브라질의 벽화는 조경의 수준을 넘어선 또다른 예술이다. 우리의 숙소는 베트맨 벽화거리 근처에 있어서 짐을 풀고 오후에는 벽화거리로 나가 보았다. 유명 영화나 애니메이션의 장면, 강렬한 색채로 표현한 초상화, 심오한 교훈이 담긴 한컷의 만화까지. 이름은 베트맨 벽화거리이지만 베트맨 뿐 아니라 다양한 주제들로 그려진 그림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남편은 몇년 전에 브라질을 여행한 적이 있는데 그때 상파울루 한 가족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다고 한다. 오늘 남편이 나와 함께 다시 상파울루에 왔다는 소식을 전하자 그분들로부터 저녁 식사를 같이 하자는 연락이 왔다. 그리하여 막 대학을 졸업한 외아들과 부모님, 이렇게 세식구가 함께하는 단란한 브라질 가정집에 초대되었다.
"미리 연락 좀 주지. 우리집에서 자고 갔으면 좋았을텐데.."
부담을 드리기 싫어서 미리 연락하지 않았던 건데 부모님께선 왜 안자고 가냐며 아쉬워하셨다. 그럴만도 한게, 예전에 남편과 지내시면서 즐거운 기억이 많았다고 한다.
"붑커가 그때 왔을 때 고쳐줬던 헤어드라이어 아직도 쓰고 있잖아."
어머님은 그 당시 헤어 드라이어가 고장나서 버리려고 했던 걸 붑커가 고쳐준 상태로 지금까지 쓴다며, 드라이어를 방에서 들고 나와서 보여주셨다.
"방바닥도 붑커가 고쳐줬었는데. 지금은 바닥을 바꿔서 없어져 버렸지만."
지금은 대리석으로 교체했지만, 그전에는마루였던 바닥의 한곳에 부서진 부분이 있었다고 한다. 그걸 본 남편은 공구를 가져와서 뚝딱뚝딱 고쳤던 모양이다. 아버님은 바닥의 한곳을 콕 짚으시며 '이 부분이 부서졌었다'고 가리키셨다. 지금도 손수 뭘 고치길 즐겨하는 남편의 버릇이 과거에도 여전했었구나 싶어 웃음이 나왔다.
"저녁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피자 시킬까?"
"피자 좋아요. 저흰 다 잘 먹어요!"
우린 커다란 피자를 두 판 배달 시켰다. 피자와 함께 온 음료 중에 과라냐라는 달콤한 탄산음료가 있었다. 과라냐라는 아마존 열대과일을 첨가하여 만든 것으로 브라질에서 인기가 많다고 한다.
아버님은 탄산음료 보다는 맥주를 좋아하셨다. 집에는 맥주만 따로 보관하는 냉장고까지 있었고 벽장에는 어머님이 좋아하신다는 와인이 가득했다. 아버님은 낮은 도수부터 높은 도수까지 편의점 뺨치게 다양한 종류의 맥주를 신나게 꺼내 보여주시며 맘에 드는 걸 골라보라고 하셨다. 그렇게 그날 마신 맥주가 네다섯 종류는 되었을 거다.
"이건 카샤사라고 하는 브라질 술인데 한번 마셔 봐요."
카샤사는 사탕수수를 발효하여 만든 것으로 달큰한 향이 나면서도 도수가 아주 높아 천천히 마셔야 한다. 차가운 맥주보단 마신 후 몸이 따뜻해지는 카샤사가 내 취향에 더 맞았다.
"정말 맛있어요!"
같은 사탕수수 발효 술이라도 품질이 좀 떨어지면 '핑가', 고품질의 것은 '카샤사'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날 마신 술은 카샤사라 그런지 엄청 향긋하면서 맛이 깔끔했고 다음날 숙취도 없었다.
자정이 가까울 때까지 우린 술잔을 기울이며 여행 이야기, 한국에서의 생활, 브라질에서의 삶 등으로 쉴새 없이 대화를 이어갔다. 아버님은 본래 조상님이 이탈리아에서 브라질로 이주해 온 분들이라고 하시며 우리의 나폴리 이야기에 큰 관심을 보이셨다. 이탈리아나 그 주변으로 여행가실 생각은 없으신지 여쭈었더니 '난 브라질에 있는 게 좋다'라고 하시며 껄껄 웃으셨다.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것보단 한곳에서 쉬면서 낚시하길 더 즐기시는 아빠 생각이 났다.
"저희 아빠도 여행은 그다지 안 좋아하셔요. 그래도 나중에 모로코는 한번 모시고 가려구요."
한참 이야기꽃을 피웠더니 우리 모두 두볼이 발그레하게 취기가 올라왔다. 내일 모레 건강검진이 있어 술을 드시지 않은 어머님께서 차를 운전하시어 우리 숙소까지 데려다 주셨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따뜻한 환대를 받은 브라질에서의 첫날이 저물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