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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메이트 Jun 13. 2022

사람을 찾습니다.  - 셰프샤우엔의 이발사

모로코 여행기 #23

온 동네를 벌써 한 세바퀴는 돈 것 같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그 어느 곳에도 우리가 찾는 것은 없었다.

나>> 여기쯤이었던 것 같은데..

붑커>> 확실해?

나>> 응. 사람 많은 골목길이고 근처에 가방가게도 있고. 딱 여기 같은데.. 희한하네.

우리가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찾고 있는 것은 바로,

이발소.




셰프샤우엔에는 몇몇 이발소가 있다.

그 중 우리가 찾고 있는 이발소는 다름아닌 4년 전, 내가 계획에도 없던 쳐피뱅 스타일을 하게 만들었던 곳이다.

2018년 2월. 내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쳐피뱅을 하게 된 날. 나는 셰프샤우엔을 여행중이었고, 그날은 왠지 앞머리가 자르고 싶었다. 여행하는 동안 앞머리가 많이 길어 눈을 간질이는 것이 신경쓰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모로코의 미용실은 어떤식으로 머리를 잘라주려나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서 들어가게 된 어느 미용실. 아니 이발소.
그 땐 몰랐다. 내가 들어간 곳은 이발소였다는 것을.. 안에는 흰머리에 흰색 모로코 전통모자를 쓰신 할아버지가 앉아계셨다. 오.. 연륜이 있으시니 경험도 많으시겠지. 역시 잘 찾아들어왔어. 이발사 할아버지는 나를 거울 앞에 앉히셨고 나는 바디랭귀지로 '앞머리만 자를게요'라고 설명했다. 할아버지는 온화한 미소를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시고는 능숙한 손길로 빗과 가위를 준비하신다. 그러나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여기는 미용실이 아니라 이발소다. 여성의 머리카락을 잘라보셨을리가 만무한 이발사 할아버지는 나의 앞머리를 쓱쓱 빗어내리시더니, 앞머리가 이마에 찰싹 달라붙도록 손바닥으로 꾹 누르신다. 아.. 불길함을 직감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린 후였다.   

사각사각. 시원스레 머리카락이 잘려나갔다. 할아버지께서 앞머리를 누른 손을 떼시자 내 앞머리는 눈썹 1cm 위에서 찰랑거렸다. 아...


허브티와 함께 찰칵. 짧게 올라붙은 앞머리가 지금보니 귀엽다.


거울을 보면서 아무리 눈썹을 치켜떠봐도 앞머리가 눈썹을 가려주기엔 역부족이다. 그래 이럴때 아니면 언제 또 이런 머리를 해보겠어. 보다보니 조금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바뀐 앞머리를 요리조리 살펴보고 있던 나에게 이발사 할아버지께서 차 한잔을 건네신다. 모로코에서는 이발만 하러가도 웰컴티를 대접받을 수 있다.
무턱대고 이발소로 머리 자르러 갔다가 쓴맛을 본 뒤여서 였을까, 이날 마신 허브티가 그렇게 꿀맛이었다.
나중에 붑커를 통해 알게 된 거지만, 실제로 모로코에서 허브티가 최고로 맛있는 곳이라 하면 셰프샤우엔을 꼽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물이 좋기 때문이다. 모로코의 물은 알칼리성이 강해서 외국인들이 마셨을 때 탈이 날 수도 있다. 특히 바닷가 지방에 가면 마트에서 파는 생수에서도 약간의 짠맛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산을 끼고 있는 마을인 셰프샤우엔은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마시기 때문에 물맛이 훨씬 좋다.  








4년 전 이발소에서의 일은 나에게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 친구들이 '너 앞머리에 무슨짓 했냐'면서 빵터지긴 했지만. 거기서 마셨던 차의 달콤상콤한 맛도 가끔 생각나고, 머리도 나름 맘에 들었다. 다음에 다시 가게 되면 꼭 그 이발사 할아버지를 찾아뵙고 그 땐 내가 차 한잔 사드려야지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셰프샤우엔에 다시 방문했지만 지나가는 이발소마다 젊은 남성 이발사만 있을 뿐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우리가 빼먹고 가지 않은 골목이 있거나, 아니면 이제 은퇴하셨는지도.. 어쩌면 저 젊은 이발사들 중 한 분이 할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은 아들일지도 모를일이다. 아무쪼록 건강히 지내고 계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셰프샤우엔의 이발사를 찾습니다.

아래와 같이 키는 작은 편이시고, 왜소한 체형, 흰 피부, 흰 머리에 흰 모자를 쓰신 분이었습니다.  

정면사진이 없어서 아쉽습니다만 저정도로 연세가 지긋하신 이발사는 아마 셰프샤우엔에서 저 분이 유일하실 겁니다. 혹 셰프샤우엔에 가셔서 이발소를 지나게 되시거든, 안에 저런 분이 앉아 계시진 않는지 한번 유심히 봐주시길 바라며, 혹 발견하시거든 저 대신 그 분께 허브티 한잔만 대접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머리를 자르기 전. 몇 초 뒤 닥칠 일은 까맣게 모른 채 기념사진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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