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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메이트 May 28. 2022

"인샤알라 (신의 뜻대로 이루어지길)"

모로코 여행기 #5

마라케시에서의 두 번째 날.

붑커와 나는 마라케시에 걸쳐있는 높은 산맥인 '아틀라스'를 등산하기로 했다.

아틀라스는 규모가 굉장한데, 오늘 우리가 갈 곳은 그 일부인 'Setti Fatma (세티 파트마)'다.

설명추..ㅇ... 아니 무엇이든 알려주길 좋아하는 친절한 붑커는 세티 파트마에 대해 열심히 설명한다.

지금은 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생각나는 건, 알라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이자 이슬람을 처음으로 만든 성인이 '무함마드'이고, 그의 아내는 '하디자', 그의 딸이 '파트마'이다... 이 정도?

'Setti (세티)'는 지혜롭고 훌륭한 여성의 이름 앞에 붙이는 칭호라고 한다. 따라서 세티 파트마는 '성녀 파트마'정도로 해석이 가능하겠다. 남자의 경우에는 'Sidi (시디)'라는 칭호를 붙인다. 모로코에는 이런식으로 훌륭한 인물의 이름을 장소에 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세티 파트마가 그렇고, 엘 자디다의 해변인 'Sidi bouzid (시디 부지드)'도 그렇다.     

이슬람에서는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 코란에 나오는 성인들의 이름을 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붑커(아랍어로는 아부바커. 붑커는 프랑스식 이름.)'라는 이름도 무함마드의 가장 친한 친구인 '아부바커'라는 성인의 이름을 따 온 것이라고 한다. 붑커의 어머니는 무함마드의 아내인 '하디자'와 같은 이름을 갖고 계신다. 그래서인지 어머니께서는 성품이 매우 온화하시고 아침 저녁으로 정성을 다해 기도하신다.
그런데 붑커는 왜... (이하생략.)




도심에서 상당히 벗어나자 드디어 세티 파트마라고 적힌 푯말이 보인다. 원래는 더 높은 봉우리인 툽칼산에 나를 데려가려고 했지만 아직 눈이 녹지 않아 장비 없이는 등산이 어렵다며 붑커는 조금 아쉬워했다.

붑커>>여름에 또 한번 와. 그 땐 툽칼산에 데려갈게.

나>>당연하지! 또 올게. 근데 오늘 날씨 비 온다고 했는데 괜찮겠지?

붑커>>괜찮을거야. 우린 항상 운이 좋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구.  

나>>하하 맞아! 인샤알라.  


...인샤알라가 항상 통하진 않는다. 산 어귀 주차공간에 차를 댈 때부터 하늘은 벌써 먹구름 가득이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걱정은 하나도 되지 않았다. 등산 전문가인 붑커와 함께 있어서였을까. 아니면 스무살 때의 패기가 아직 조금은 남아있어서 였을지도.




인샤알라
'신의 뜻대로 이루어지길'
인샤알라가 항상 통하는 마법의 주문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인생을 좀더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만으로도 때로는 충분하다.






세티 파트마의 등산코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까지 계곡줄기가 졸졸 이어진 길을 따라 몇 분을 걸어가게 된다.  계곡 주변으로 음식점, 기념품 가게, 천막, 평상, 민박집이 즐비하다. 어렸을 때 가족과 함께 놀러갔던 동학사 올라가는 길이 생각나 왠지 친근했다. 지구 반대편의 계곡도 비슷한 풍경이구나.



계곡물이 시원하게 흐르고, 저 멀리 웅장한 바위산이 보인다.





조금 가다보니 계곡을 가로지르는 작고 굉장히 허술해보이는 나무다리가 나타났다.

나>>오.. 이 다리 뭐야? 건너갈 수 있는건가? 

붑커>>응 건너갈 수 있지. 가보고 싶어?

나>>응 렛츠고!



흔들거리는 나무다리는 불안정해보이지만 생각보다 튼튼했다.

 


다리를 건너가자 연세가 지긋한 할아버지께서 우리를 반겨주셨다.

붑커, 나>> 살라모 알라이쿰~

할아버지>> 알라이쿰오 살람~

붑커와 할아버지는 몇 마디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고, 그 사이 옆에 있는 고양이 한마리가 나의 시선을 잡아끈다. 할아버지가 키우시는 건가 아니면 그냥 길고양이일까. 너무 귀여워 한번 쓰다듬어보려고 다가가자 갑자기 새침한 표정을 짓더니 계단 위로 도망간다.


 

도도한 고양이와 간절한 외침 'No~~~' 가지마~~~


그렇게 야옹이는 계단위로 총총 사라졌다. 어딜가나 냥이의 마음을 사로잡긴 어렵구나.

다리를 건너 봤으니 이제 돌아갈 시간. 가기 전에 붑커가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찾는다.

붑커>> 나 큰 돈 밖에 없다. 너 혹시 작은 돈 있어?

나>> 응. 나 가방에 5디람짜리 있어. 왜?   ------>모로코의 화폐단위는 '디람'이다.

붑커>> 오 그럼 그거 이 분한테 드리고 가자. 

할아버지께 다리를 건넌 값을 치른 후 우리는 다시 산으로 향한다. 모로코 여행을 하다보면 종종 이렇게 작은 재미를 얻고 작은 돈을 건네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저 주차 하는 것을 잠시 도와주었을 뿐인데, 그저 계곡 위의 흔들다리를 건넜을 뿐인데, 그저 키우는 염소를 만져보았을 뿐인데 때로는 작은 답례를 해야한다. 모로코에는 이런 사소한 일들을 업으로 삼아 생계를 유지하는 데 보태는 분들도 계시기 때문이다. 새삼 붑커가 옆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느꼈다. 만약 현지인과 함께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런 풍습을 전혀 모른 채 답례도 하지 않고 지나치기 일쑤였을텐데.  




조금 더 걷다보니 얼마 안가 산길이 시작되었다. 초반에는 산길이라기보다 조금 경사지고 가끔은 계단도 나오는 산책로같은 느낌이었다. 아직 바위산이 나오기 전인가보다. 콧노래도 흥얼거리면서 여유롭게 올라가다보니 화려한 전통복식이 걸려있는 천막 하나가 나타났다. 붑커가 잠시 여기 들렀다 가자고 한다.

나>> 여기서 뭐하게?

붑커>> 여기는 베르베르의 전통 복장을 입어볼 수 있는 곳이야. 체험해보고 가자. 

오... 우리나라의 한복 대여점 같은 곳이었구나. 전통 복장이라니 얼른 입어보고 싶다!

베르베르인은 모로코에 살고 있는 역사깊은 토착민족이다. Amazigh라고도 하는데 (발음은 어려워서 잘 못따라하겠다. 아마지그..?) 예전에 붑커가 '나는 amazigh, european, arabic 혼혈이야.'라고 말한 적이 있어서 그때부터 amazigh이 모로코에 사는 민족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인기척을 느낀 가게 직원분이 우리쪽으로 다가오더니 빨강 파랑 하양 초록 등 오색찬란한 옷과 장신구를 한아름 가져와 보여주셨다. 세상에 이걸 전부 입는다고..?


네, 다 입었습니다.

정말 이걸 다 입네... 푸른 치마를 입고 그위에 하얀 치마를 입고 붉은 두건을 쓰고 또 그 위에 하얀 겉옷을 두르고 또 그 위에 장신구...또 장신구... 또 다른 장신구... 마침내 완성된 베르베르식 복장은 무척 화려하고 아름답다.


이 정도면 베르베르인 같은가?

붑커가 시키는대로 물동이를 들고 취한 포즈. 이 밖에도 맷돌을 가는 척 해봐라, 주전자를 들고 차를 따르는 척 해봐라 하면서 이것저것 시키는 것도 많다. 덕분에 예쁜 사진을 많이 건졌다.


베르베르 여성들은 아랫턱에 전통 문양으로 타투를 하는 것이 풍습이었다고 한다. 나는 타투 대신 직원분이 펜으로 그림을 그려주셨다. 생각보다 잘 어울려서 맘에 들었다.  


턱에 그린 문양이 마음에 들어서 그 날 저녁 숙소로 돌아가기 전까지 지우지 않고 돌아다녔다. 난 베르베르 아시안이다!

사실 저 날 전통복장을 하고서 베르베르 춤도 췄는데 차마 모두와 공유할 수 없는 춤사위다. 부끄러움을 잘 견디는 편이지만 그것만큼은 혼자만의 추억으로 간직해야겠다..^^ 베르베르 전통 춤은 어렵지 않다. 다소곳하게 제자리에 서서 보일 듯 말 듯 양쪽 어깨를 위아래로 들썩이면 된다. 둠칫둠칫.
좀더 구체적으로 그루브를 배워보고 싶으신 분들은 유튜브를 찾아보시면 잘 나와있을 것이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다시 바위산으로 향한다.

특별한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도록 도와주신 직원분께 계산을 하면서 감사하다는 인사도 빠트릴 수 없다.

"쇼크란. 라헤브덱! (감사합니다. 신의 축복이 있기를!)"

그렇게 신의 축복을 빌어주고 나오는 길, 우리에겐 축복 대신 비가 한두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야 알라 (Ya Allah. 오 마이갓)..."

사실 아직은 보슬비 정도여서 맞을만 했다.
그래. 계속 이 정도로만 온다면 등산은 무리 없을거야! 우산도 우비도 등산화도 없이, 밀짚모자에 슬립온만 신고 있었는데도 어디서 샘솟는 자신감이었는지 나와 붑커는 거침없이 산을 타기 시작했다.




그 땐 몰랐다. 우리 앞에 어떤 일이 닥칠지...  



 



<다음 편 예고>

험준한 바위 속으로 붑커가 사라졌다.

나>> 붑커!!! 어딨어!! 어딨냐구!!! 으허어어어어어어어엉 죽은 거 아니지.. 엉엉엉엉

비는 계속 오고, 옷은 점점 축축해지고, 전파도 안 터져서 전화는 먹통이다. 추위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몸이 덜덜 떨린다.
붑커는 어디로 간 걸까. 길을 찾긴 한걸까. 혹시 발을 헛디딘 건 아닐까? 찾으러 가야하나? 우리가 만약 집에 돌아가지 못한다면? 안돼.. 20시간이나 다리 팅팅 부어가면서 비행기 타고 날아온 게 불과 3일 전인데 이렇게 억울하게 죽을 순 없어. 과연 우리의 운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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