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걸쳐 입고 산책하러 나간다. 지금 이 시각에는 햇볕도 세지 않고 바람도 선선하니 걸을만하다.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
생각을 정리하고 잡념을 떨쳐버리기에 땀을 내며 걷기만큼 좋은 것은 없다. 오늘은 평소에 가던 코스보다 더 멀리, 많이 걸었다.
벌써 40 하고도 몇 해가 지났기에, 만 나이로도 30대라 우기지도 못하게 된 시점이다.
어릴 적 상상 속 40대의 내 모습은 대단한 기업에 임원이 되어 있거나 사회적으로 명성 있는 사람이 되어 세상을 후리고(?) 다닐 줄 알았는데, 현실은 뭐 하나 특별한 것 없는 이도 저도 아닌 평범한 회사원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 그냥 그렇게 살고 있다.
바쁘게는 살았지만, 어디 가서 내놓을 만한 성과도 없고, 그렇다고 내가 속한 조직에서 잘 나가는 것도 아니다. (뒤처지지 않으려 아등바등하고 있지만 이미 뒤처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는 오리>
그래서 이렇게 불편한 생각을 마주하게 되거나, 무기력해질 때면 땀 흘리며 걷는 시간이 필요하다.
혼자 멀리 여행을 떠나거나, 조용한 숲 속이나 바닷가에서 산책이라도 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니, 혼자 산책하며 색다른 길을 걸어본다.
평소와는 다른 길을 걸으면 마음가짐이 새로워지기도 하고 답답한 마음이 풀리기도 하니, 우울한 생각에 갇힐 때면 종종 써먹는 방법이다.
한편으론 40대가 되니 좋은 점도 많이 있다. 정신없이 앞만 보며 달려오던 20·30대와는 달리 앞뒤, 위아래를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타인의 눈치를 보는 일도 덜 해졌으며,
나이 듦에따라 깊어지는 감정 탓에 기쁨과 슬픔의 가짓수도 늘어나 혼자 생각하고 마음 정리하는 시간이 많아졌으며, 또한 이를 즐기기도 한다. 그 와중에 예전엔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새로운 일(방송 댄스 수강 등)에 도전하며, 새로운 나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일도 많아졌다.
한때는 조직생활이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지금도 크게 변한 건 없지만)
여러 사람들과 다 같이 모여 겉도는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는 소소하게 2~3명과 진지한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고, 내성적인 성향 탓에 부끄러움도 많아 남들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며 발표하는 것 역시 반기지는 않는다.
때론 회사 내에서, 사회생활을 하며 남들과도 다르다는 생각에 외롭고 지칠 때도 많았다. A형만 있던 팀에 혼자 O형이었던 난 그냥 얼굴 보며 이야기하면 될 것을 굳이 옆에 있는데 메신저로 말하는 상황도 싫어 일부러 소리 내어 말하기도 했다.
멀리서 보면 비슷한 결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마치 나 자신이 커다란 감나무에 매달린 무른 귤 같이 느껴지는 불편한 상황들을 종종 마주하고 그 안에서 치이고 터짐에도 버텨온 순간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난 전보다는 괜찮아졌다.
중년이 시작되었지만무한한 가능성이 있으며, 앞만 보며 달려온 지난날에서 벗어나 주변을 둘러볼 줄 아는 여유가 생겼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나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팀에서 점심은 안 먹겠지만 회식은 참여하고, 주말 워크숍은 싫어하지만 골프는 다시 시작한 아이러니한 상황과 행동들이 계속될 테지만, 이것 또한 즐기고 순간순간 나 자신을 지키며 가벼운 마음으로 직장 생활을 영위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