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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동아빠 구재학 Oct 29. 2022

소설 :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나만 찌질이가 아니라는 위안을 주는 소설

내가 '알랭 드 보통'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건 2000년대 초반 어느 날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을 때였다.


한 친구가 최근에 알랭의 책을 읽었는데,

"마치 내 얘기를 하는 것 같아서 깜짝 놀랐다. 너무 공감이 가더라"

는 얘기를 했다. 그러자, 다른 친구가 자기도 읽었는데

"나도 내 얘기인 줄 알고 깜짝 놀랐다. 통찰력이 대단하다. 정말 천재인 것 같아."

라고 했다. 나는 말없이 친구들의 얘기를 들으며 도대체 무슨 책이길래 하는 호기심이 들었고, 다음날 서점으로 가서 그 책을 집어 들었다.


그때 친구들이 극찬했던 책이 알랭 드 보통의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이다.

2005년 발행된 13쇄판 표지


이 책은 한 남자가 우연히 한 여자를 만나서 설레고 불같이 사랑하다가 익숙해지고, 헤어지고나서 후회하고 자책하며 괴로워하다가 실연의 상처부터 '사랑의 교훈'을 깨닫고 어느 순간 다시 새로운 사랑의 감정에 빠지는 누구나 한번쯤은 겪었을 법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줄거리만 보면 흔한 로맨스 소설 같다. 그런데, 목차를 보면 마치 철학책을 보는 듯 하다. 그래서 책 표지를 다시 보면 분명히 제목 앞에 '소설'이라고 쓰여있다. 나처럼 목차를 보고 놀란 사람들을 위해 일부러

"놀라지마. 나 철학책 아니고 소설책이야."

라고 윙크하는 듯이 말이다.

사랑의 기승전결을 철학적으로 강의하려는 듯한 목차


연애를 해보지 못한 사람이라도 어느 순간 누군가가 신경 쓰이고 생각하면 설레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 썸을 타고, 그게 혼자만의 감정이 아님을 확인하는 순간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되고, 하루 종일 붙어있다가 헤어지면 또 밤새 전화기를 붙들고 떠들다 잠드는 시기를 거쳐,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더 중요한 일들이 생기고, 저녁이 되면 의무감으로 전화를 걸어 관심도 없는 서로의 일과를 묻다가, 그마저도 뜸해지고, 어느 순간 이게 사랑인가 싶은 권태감과 귀차니즘이 밀려올 때 이별을 하는 것이 사랑의 기승전결일 것이다.


그런데, 사랑의 기승전결은 지극히 사적인 것이어서 나 외에 다른 이들은 사랑을 하면서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알 수가 없다. 가끔 연인과 싸워서 속상할 때 죄 없는 친구를 불러내서 단편적인 하소연을 하는 때가 아니면 남들은 시랑을 할 때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어떻게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사랑을 나누는지, 헤어지고 난 후에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나만 찌질이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이 책의 첫 몇 페이지를 읽었을 때 나는 멈출 수가 없었다. 젊은 시절의 내 얘기를 책으로 읽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이리도 전개가 똑같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의 전개뿐 아니라, 주인공인 남자가 느끼는 감정의 전개가 내가 사랑을 할 때 느끼던 것과 너무나 흡사했기 때문이다.


특히, 화자인 남자가 실연한 후에 괴로워하는 '제21장 자살' 편이 절정이었다.

'사랑에서 버림받은 뒤에 자살하는 것보다 합리적인 반응이 어디 있겠는가?'

라며, 집안에 있는 온갖 약들을 다 꺼내서 식탁에 올려놓고 여러 번 초고와 수정을 거쳐 유언을 쓰면서, 유언이 발견될 때쯤이면 자신의 몸은 싸늘하게 식어 있을 것이고, 경찰의 연락을 받고 달려온 전 여자 친구가 눈물을 쏟으면서 그동안 자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잔인하게 굴었던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며 가슴을 치는 상상을 하는 부분에서 나는 무릎을 쳤다.

나만 찌질이가 아니었구나..


내 친구들뿐 아니라 나 역시 이 책을 읽는 동안 '사람들 사는 건 다 똑같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이 책을 여성들에게 권하고 싶다. 특히, 남자친구나 남편들이 도대체 왜 이리 철이 없는지 이해가 안 가는 분들에게 말이다.

당신의 남자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세상의 남자들은 다 어리고 철이 없다.


참고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가 남자 주인공 관점이라면, 알랭 드 보통의 또 다른 책 '우리는 사랑일까'는 여성 주인공 관점에서 쓰인 비슷한 형식의 소설이다.


지금 사랑을 하고 있다면, 두 책을 서로 읽어보고 바꿔 읽어보면 서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실연으로 괴로워하는 이가 이 책을 읽는다면 나만 괴로운 것이 아니구나, 시간이 해결해 주는구나 라는 위안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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