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E 기획자의 일곱 번 째 이야기
우리 회사는 대부분 다른 회사들이 생각하는 "주 업무" 외에 행사나 문화 생성, 네트워킹 등에 진심인 회사이다.
그래서 너무 좋다!!!
내 기준으로는, 회사가 공식적으로 지원해 줄테니 나와서 놀아! 라는 부분들이 있는데 대표적인 예시를 몇개를 들어보면서 나의 첫 회사와 비교해보겠다. (featuring "라떼는" 이야기)
전사행사
이 회사는 전사 행사에 진심이다. 입사 이례 일년에 두 번 (여름에 한번 연말에 한번) 전사행사를 했는데, 그냥 강당에 모여서 와아 하는 수준이 아니다. 전사원이 (2000명정도) 들어갈수 있을 만한 큰 곳을 대여해서 (올림픽공원 안에 있는 실내 체육관이나, DDP등) 반나절은 대학교 축제같이 돌아다니면서 먹을 거 먹고 게임하고 무언가 참여할수 있는 액티비티들을 제공하고, 나머지 반나절은 앉아서 무대를 바라보며 행사를 진행하며, 통상 마지막에는 초대가수가 와서 공연을 한다.
그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포인트는 연말 행사의 경우 전체 "드레스 코드"가 있는데 그 드레스 코드에 맞춰서 팀들이 옷을 맞춰 입고 오는 문화가 있다. 당연히 안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꽤 진심인 팀들은 대단한 의상들을 입고 온다. 작년 행사의 테마는 00년대 싸이월드 감성이었는데 부끄럽다는 우리팀 사람들을 어르고 달레고 두들겨 패서 전원 H.O.T. 의상을 입혔었다. 하얀색 솜 멜방 바지에 안에 맨투맨도 팀원 한명 한명 마다 색깔을 적당하게 분배 (레터링이 있거나 흐리멍텅한 색, 겹치는 색상 없도록) 해서 다같이 단체복을 입었고 ... 결론적으로 나는 너무 너무 너무 신났고 우리팀은 매우 매우 매우 포토제닉한 팀이었다. (실제로 회사 공식 포토팀이 많이 찍어 주었다 너무 신나)
행사날 찍힌 "예쁜" 단체 사진들을 한동안 동네 방네 자랑하고 다니기도 했다.
특히나 작년 연말행사의 하루를 되돌이켜 보면 하루종일 너무 너무 재미있고 행복했다. 월급받고 하루종일 공식적으로 격하게 놀았고, 의상 입고 너무 재미났고, 점심 저녁 모두 회사가 밥도 사주고, 초대가수로 코요테가 왔을땐 미쳐 날뛰었었다.
그런데... 이게 싫어서 당일날 개인 휴가 내고 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너무 신기하다... 한 사람에게 이렇게 큰 기쁨이 되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피하고 싶은 일이라는게 신기하지만 결론적으로 자유가 주어지는 환경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으니 결론적으로 다들 행복한것 같다.
나의 첫 회사를 생각해보면 너무 가난하고 험악하고 돈이 없어서 이런 행사는 커녕... 가기 싫은 업무 행사도 동시에 눈치를 보며 가야했다. 팀 워크샵을 가는데 눈치 보면서 점심은 꼭 먹고 회사에서 오후에 출발해야했고 출장을 가는데 부장님이 눈치보인다고 주말을 껴서 출장을 다녀오고 싶어했다. 하아...
동호회
지금 회사는 돈을 줄테니 모여서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놀라고 격려한다. 돈도 주고 담당 팀이 이래 저래 지원도 해주신다. 일 말고는 그 어떤일도 허용되지 않던 첫 회사를 또 한번 회상해보면서 ("여자"가 커피 마시러 가면 눈치를 주면서 "남자"가 담배 피러가는건 당당했던 회사이기도 했다)... 이런 제도 너무 감사하다.
나는 지금 회사의 보드게임 동호회 회장이다. 같은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곳에 쉽게 모일 수 있는 사내 동호회 구조도 좋고, 게임 같은 경우는 아무리 좋아해서 같이 플레이할 사람을 구하는게 힘든데 회사에서는 그게 너무 쉽게 이루어져서 좋다. 게다가 우리회사는 모여서 놀기 좋은 커다란 방이 3개 존재하는데, 회의실이 아니라 일종의 팬션 같이 생긴 큰 방들이라서 애초부터 의도가 모여서 워크샵을 하거나 모임을 위해 제공하는 방들이다. 그래서 정말 모든 면에서 최적화 되어있다.
한달에 한번 정도 모임을 하면, 같은 소제에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꽤나 큰 활력소가 된다. 동시에 평소에는 만날 수 없었던 부서의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네트워킹하고 mingling을 하게되는것도 큰 장점이다.
평소에 오프라인 출근을 좋아하지 않으신 분들도 게임을 하기 위해 출근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그냥 왠지 막 뿌듯하다.
돈 줄 테니까 만나서 밥먹어라
라고 쓰니까 좀 웃긴데... 우리 회사는 옛날부터 회사 내에서 랜덤 점심을 많이 했다고 한다. 내가 입사하기 전엔 심지어 전사원이 랜덤 점심을 하던 날도 있다고 한다 (옛날 옛적 회사가 작고 전원 오프라인 출근하던 시절) 랜덤점심이란 회사에서 조를 짜주면 점심을 같이 먹고 점심비를 회사가 내주는 그런 이벤트이다.
이번달에는 기획자들을 대상으로 랜덤점심 이벤트를 열었다. 신청하면 무려 3만원!!! (1인당 3만원) 을 줄테니 랜덤 조로 점심을 먹으란다 - 시간도 무려 90분씩 쓰란다.
개인적으로 남들보다 출근을 자주 하는 나로써 매일 매일 밥친구가 없는게 아쉬운데 밥먹을 사람도 생기고, 새로운 기획자들 만나서 네트워킹도하고, 무려 공짜로 밥도 먹고 너무 신나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팀에 이런 행사가 있다고 홍보를 했더니... 단 한명도 신청하지 않았다. 하하하하하
그 어떤 보상을 줘도 재택보다 매력적이지 않다는 뉘앙스였고, 지인 기획자는 모르는 사람이랑 밥먹으면 체한다고 싫다고했다. 또 신기하다! 신기해!!
기획자가 200명좀 넘게 있는데 신청 인원은 30명 얹어리... 흠 나는 소수-비주류 에 속하는 사람인가보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던 첫 회사는 너무 너무 돈이 없어서 회식을 할 때 마다 개인돈을 보내서 먹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러다보니 뭐 누군가는 나는 술을 안먹었는데 왜 동일하게 n빵을 하냐 이런걸로 싸우기도 했다. 40명정도 되는 대규모팀의 회식장소를 물색하는데, 후보를 가져가는 족족 부장님이,
"더 싼데는 없어?"
라고 받아쳤다. 부장님이 제일 만족했던 회식장소는 홍대입구에 당시에 1인당 1만원이 안되었던 고기뷔페였다. 그 외에 다른 회식장소들에서는 늘 막내들이 메뉴 주문 통제를 하러 다녀했는데..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몰래 냉면을 시켜먹어서 우리를 곤란하게 하곤 했다. (돈 없다고!)
첫 번째 회사를 떠나서 두 번 째 회사를 갔을때... (지금 회사 말고) 딱 봐도 그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회사였고... 1인당 자리에 쓰레기통이 한개씩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감동의 눈물을 흘렸었다.
거기서도 난 막내로 시작했었는데 회식 메뉴를 정하는 중 내가 닭갈비를 제안했다가
"회식으로 그렇게 싼 걸 먹으면 어떡해?"
라는 말을 듣고 진심 충격을 먹었다. 정말이다. 원래 회식은 "더 싼거" 먹는건줄만 알았던 나였다.
눈물을 닦고, 난 이제 곧 아까 위에 언급한 3만원 짜리 점심을 먹으러 갈 준비를 하겠다. 고기 반찬에 맛있게 행복하게 먹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