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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홀라당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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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근 Dec 08. 2024

까 마 귀

외로움과의 싸움

까 마 귀     

         

         

- 김 중 근     

     

적당히 내리쬐는 햇살이 정겹다. 3월 중순으로 접어든 이후 도통 까마귀들이 날아오지 않는다.


만경강 지류로 흘러오는 미꾸라지, 붕어, 황어, 웅어며 그밖에 이름모를 생명체들이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던 하천이 보인다. 하천 바위 틈에 옹크려있던 미꾸라지를 천망지축 신이난 꼬마가 잡아올리면 그물같이 모여있던 꼬맹이들이 일제히 환호하던 개울이었다. 그 신명은 이제 사라지고 미꾸라지를 잡던 개울은 산업 폐수와 생활 폐수로 찌들어진 더러운 개천이 되어버렸고, 미꾸라지, 붕어, 잉어등을 마음대로 휘적고 잡을 수 있었던 큰 내 조차도 목천교 다리 밑을 정지하여 제방을 쌓는 바람에 어렸을적 물장구쳤던 정서가 말라붙어 삭막한 개천이 되었다.      


세상 인심(人心)이 각박하다 보니, 세월따라 흐르는 개울까지도 인심을 잃어 오염된 것이다. 이젠 평생 마음 속에만 간직한다. 그 어린 시절의 고향 생각이 나면, 머릿속에서 끄집어 낼 뿐이다. 그러나 그것 뿐이 아니다. 하천을 끼고 돌아나온 목천교 뚝방을 타고 올라서면 바둑판같이 잘 정지된 만경 평야의 논들이 보이고 그 논들 사이로 곧게 뻗은 지방 도로 위로 최근 23번 산업도로가 지나는데, 이 고가(高架)의 산업 도로가 지평선(地平線)을 딱 막아 서있어 한 여름엔 시야(視野)를 가려 답답하다. 시간(時間)과 공간(空間)을 끊어 그 옛날의 풋풋한 추억으로 가는 길을 막아논 것이다. 시끄러운 자동차의 경적(警笛) 소리가 끊이지 않는 길이 되었다.     


한없이 길게 뻗은 지방 도로의 전선주에 도도하게 올라 앉아있던 까마귀 한 놈이 냅다 아래로 곤두박질한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 백, 수천 마리의 까마귀 떼는 그 길을 가운데로 편 갈라논 논 바닥에 순간적으로 내려앉는다. 그러다 한 놈이 내 달리는 차창을 향해 아침 부터 깍깍거리다가, 내 승용차와 마주치면 불현듯 어디론가 피해 날아가곤 했다. 어김없이 날마다 그 시간 무렵이면 그 자리로 돌아와 깍깍 울어대던 출근길이다. 그네를 타고 그위에서 발을 한 번 굴러 보면 바로 손에 잡힐 듯 한데....까마귀들이 슬픔에 꽉 잠긴 황량한 들길을 가로질러 기다려도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듯, 출근 길은 오전 내내 까마귀들이 연대(聯隊)별로 도열해서 전선줄에 앉아 나를 기다리던 길이었다. 오후되면  아무 생각없이 눈길을 마주했던 까마귀가 고즈넉한 잔디밭 위로 날아든다. 오후의 정숙이 밀려올 시간 이따금 연구실(硏究室) 창가로 보이는 소나무 가지 사이로 스산한 바람 일으키면, 그의 새까만 날개짓을 볼 수 있다. 저녘 노을에, 까맣고 파르스름한 색이 금속 빛으로 발광(發光)하며 도도히 날개를 움직이기도한다. 그런데 며칠 전 부터 수없이 많은 그들의 비상(飛上)이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맨 앞장선 한 녀석이 끝없이 멀리 나갔다가 다시 날개를 내저으며 어딘가로 사라져간다. 뒤를 이어 수많은 까마귀 떼가 사열하듯 비상 훈련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더니 오늘은 울적함이 앞선 탓일까 녀석들이 보이질 않는다. 수 많은 시간을 내 마음에 이 녀석들이 보이는 날은 미움도 슬픔도 없는 평온이 내 마음에 자리한 날이었고, 이 녀석들이 보이지 않은 날은 슬픔이 가득찬 들길에 버려진 느낌이었다. 아마 봄 바람을 타고 시베리아로 날아간 그들이 나에게 이상한 마음의 병을 남기고 떠난 모양이다.      


더 멀리 날아가고 또 가야할 험난한 장고(長考)의 길일지라도 날 새어 날아야만하는 그 들의 운명이다. 그들만의 언어(言語)를 이제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돌아올 겨울이나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그들은 흔히들 흉조(凶鳥)라고 하는데, 외로움이 빈 들녘에 가득할 때마다 나는 그들과 눈을 마주하며 내 빈 자리를 메꾸어줬던 것이다, 허전함과 대립(對立)되었던 시간을 공유했던 탓인지 멀리 떠나간 그들이 나에게는 말벗과 같은 유일한 길 동무였다. 까맣고 이유없이 재수없다는 속설로 인간으로부터 터부시된 그들이다. 격리된 세상에서 바람 따라 왔다 계절 따라 멀리 날아간 그들이다. 외로움에 익숙한 친구인 나를 떨쳐버리고 떠난 그들의 빈 자리에 내려와 앉는 고독(孤獨)을 이제는 피할 수 없다.     


폐수(廢水)와 공해(公害)로 찌들어진 인심(仁心)같이 그들마저 정(情)을 붙이고 살기엔 힘에 버겁다고 떠난 것을 내가 잡을 수 없슴이 안타깝다. 물론 계절 따라 오고가니 자연의 순리 앞에 속수무책이다. 비록 내가 그들에게 먹이로 볍씨 한 톨 뿌려준 적 없고, 무엇하나 또렷하게 새겨 넣은 정 하나 흘려놓은 적 없으니 잡아놓을 명분도 없다. 그 동안 그들과 나는 창을 사이에 두고 밀당을 하면서 진심을 다한 눈짓 한번 마주하거나 정을 주지 못했다. 막상 그들이 떠나고나니 이젠 아득한 별 빛처럼 외로움을 달래는 방법을 알 듯 싶다....태양은 빛을 내리게 하고, 산은 나무를 자라게 하고. 강과 바다는 물고기를 살게 하는 것 처럼 어느새 그들은 내게 흐르는 물 처럼 다가왔던 것을 왜 몰랐던가?...     


어느 날 불현듯 맑은 물처럼 퐁퐁 솟아오르는 샘물이 그립고 아련한 고향이 생각나듯, 혼자 있는 시간에 애절함이 솟는 것은 외로움일게다. 긴 시간을 그들(까마귀)과 눈길을 마주했던 것도 외로움과의 싸움이었다. 외로움은 동시(同時)에 그리움을 수반한다. 때때로 그리움은 물과 같아서 흐르는 물처럼 흘러가며 모든 것을 맑고 깨끗하게 정화시켜준다. 아울러 주위를 촉촉이 적셔주고 아름다운 감흥(感興)을 불러일으킨다.          


                                          

- 2010년 3월 중순 어느 날  연구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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