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길이 숨 가뿐 호흡 소리...
겨 울 비
- 김 중 근
밖은 외로움을 달고 때 아닌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비에 흠뻑 젖은 시린 산소가 싸늘한 기운을 호흡한다. 내 방의 저녁을 쓸쓸함으로 환기(換氣)시켜 외로움이 아슴푸레 스며든다. 이내, 멀리 산 허리 휘도는 장막처럼 젖은 안개 한섶을 붙잡고 시린 눈길을 겨울 이파리에 옮긴다. 가슴을 쓸어가는 동풍(冬風)의 심란(心亂)은 겨울 비에 젖고, 황녹(黃錄)의 나뭇잎은 아픔이 바스라진다. 이파리는 바람에 흔들리면서 슬픔을 머금고 겨울 비에 잠긴다.
공허함이 내리는 겨울 비 밖은 여전히 적막하다. 숙명의 나날을 기다리며 이파리는 허공에서 손을 흔들어댄다. 잎새의 떨리듯 두려운 흔들림이 꾸불꾸불한 오솔길을 따라 손짓한다. 이파리 위로 내리는 겨울 빗물은 그를 마구 찌르니, 잎새의 온 육신은 고통스럽고 아프기만 하다. 모두들 서둘러 떠나야할 채비에 아름다웠던 그가 겨울 비에 젖으며 필사의 힘으로 매달려 있지만 혹독한 계절을 버티는 중이다. 비바람 몰아쳤던 지난 여름과 태양을 달구어서 크고 작은 열매들이 걸려 있던 가을 속을 지나면서 고운 자태를 뽐냈던 그다. 한 때 높푸른 하늘을 가리고 따가운 햇살을 적당히 가려서 모든 이들에게 아름다운 휴식터요 안식처였는데...이젠 겨울 비에 젖어 마지막 가는 길이 숨 가뿐 호흡 소리에 애절하다. 비 내리고 바람 칠 때 마다 저녁 하늘의 물 안개와 이파리들이 한꺼번에 쏟아져내리는 아득함에 공허함이 점점(點點)이 떨어져 내린다. 이파리 그는 비를 따라 왔다가 겨울 비를 따라간다. 아름다움 뒤에는 언제나 외로움을 동반하는 것은 숙명인가 보다 무대 위에 올려진 배우가 은막을 떠나고 존재없이 사라지는 배우들과 다를게 없다. 떠나가는 것은 자연의 섭리에도 마찬가지로 쓸쓸하게 보일 뿐이다.
비 바람에 맞서 서럽게 홀로 서있는 산 마을 어귀 가로수(街路樹)의 눈길이 서럽다. 이 겨울비 내리는 하늘 아래에서 적막한 산(山) 길에 힘없이 눈길만 준다. 오며가며 지나던 나그네가 늘 다니던 길인데 나그네가 근래 소식 조차 없기 때문이다. 별이 내리는 오솔길을 따라 걷다가 비가 오면 잠깐 쉬어가는 나그네와 인연되어 그저 온종일 서서 기다려온 그다. 묵묵히 서서 이 비로 떠나는 이파리 마다 안부를 전하고 “나그네를 보거들랑, 겨울 비를 맞지말고 꼭 내게 와서 편한 잠자리에서 쉬었다 가시라”고 눈물 짓는다. 그렇지만 빈 여정(旅程)만 발길을 재촉하고 술잔에 가라앉은 나그네의 황망(慌忙)함은 빗줄기에 마냥 젖는다.
눈물 뒤에는 언제나 슬픔을 동반하는 것은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생(生)을 마감하고 허무하게 아스러져가는 인생(人生) 또한 다를바 없다. 살고 죽는것은 것은 자연(自然)의 섭리에도 마찬가지로 슬프게 보인다.
2023년 12월 16일
비오는 날 웅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