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일흔에 풀어놓는 소소한 이야기(제38편)
유흥을 무척 즐기는 한 선비, 아니 한량이 기생 둘을 데리고 밤에 호수로 가 꽃배를 띄우고 놉니다. 때마침 보름이라 달이 휘영청 떠올라 호수를 밝게 비추고 있습니다. 술이 한 잔 또 한 잔 거듭되면서 흥이 저절로 일면서 선비가 먼저 말을 꺼냅니다.
선비 : 춘심아, 네 눈에는 달이 몇 개나 보이느냐?
기생 1 : 아이 선비님도 참! 벌써 술 취하셨어요? 몇 개긴요, 하나잖아요.
이번에는 곁의 기생에게 묻습니다.
선비 : 초월아, 네 눈에는 몇 개나 보이니?
기생 2 : 한… (하다가) 두 개예요, 두 개. 하늘에 하나, 호수에 또 하나.
둘의 대답이 끝나자 선비가 말합니다.
선비 : 그렇구나. 역시 너희들은 평생 기생이나 해야겠구나. 어찌 하나 혹은 둘만 보일까? 저렇게 열한 개나 되는 달을!
두 기생이 동시에 대꾸합니다.
“네, 열한 개요?” 하는 말에 선비가 우쭐대며 말을 잇습니다.
선비 : 봐라. 하늘에 하나, 호수에 하나, 우리들 술잔에 세 개, 우리 세 사람 두 눈에 비친 달이 여섯 개. 이러면 모두 열하나잖아.
선비는 기생들이 찾아내지 못한 달을 하나하나 거론하며 우쭐댑니다. 아마도 그녀들보다 많이 찾아낸 밝은 눈을 자랑하고 싶었던 게지요. 선비는 참 똑똑한 사람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우리는 처음 사람을 볼 때 겉모습 하나만으로 판단합니다.
‘아 저 사람은 눈이 부드러우니 착한 사람이겠구나.’,
‘저 사람은 몸이 마른 데다 입술이 얇아 신경질적이겠구나.’,
‘저 사람은 뚱뚱한 데다 말도 느리니 미련하겠구나.’
헌데 만남이 잦아지면서 자신의 판단을 수정하기도 합니다.
‘눈이 부드러워서 착한 사람인 줄 알았더니 사실은 순 사기꾼이잖아.’,
‘신경질적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마음씀이 넓군.’,
‘미련하기는커녕 아주 약아빠졌잖아.’
이렇게 그 사람에 대한 평이 바뀝니다. 그러면 몇 번 더 만났다고 하여 그 사람을 다 안 것일까요? 아닙니다. 더 자주 만나면 또 바뀌게 됩니다. 그럼 오래 함께 지낸다면 다 알까요? 아내랑 한 이불 덮고 산 지 사십 년 넘었는데 아직 아내를 제대로 모릅니다. 그러니 형제자매는 더 모를 수밖에요.
제게는 누님이 세 분 계십니다. 세 누님 다 여든이 넘었습니다. 저랑 나이 차이가 많다는 사실 말고 차이점이 또 있습니다. 저는 대학까지 나왔습니다만 세 분은 초등학교 문턱도 밟은 적 없습니다.
몇 년 전 아버지 제사 때 찾아온 누님들과 얘기를 나누던 중, 부산 사시는 막내 누님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동생아, 혹 한글 읽고 쓰는 걸 배울 수 있는 데 없을까?”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왜 글 배우려고?”
“응.”
“아니 그 나이에 글 배워서 뭐 하려고?”
누님이 그 말에 꽤나 섭섭하셨던 모양입니다.
“야, 이 사람아! 못 배운 게 서러워서 배우고자 하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고?”
그 말에 단번에 사과하고선 누님 사시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한글교실을 수소문하여 다니게 하였습니다. 그 뒤 누님은 초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중학교 과정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고등학교 과정까지 하시겠답니다.
저는 그동안 누님을 몰랐습니다. 80년 넘게 한글을 읽지 못하고 쓰지 못하니 당연히 그대로 사시다 가겠지 했는데 아니었습니다. 제가 아는 누님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그만큼 누님을 몰랐던 거지요. 고등학교 과정까지 꼭 해내겠다는 그 의지를 몰랐습니다.
아주 가까운 사람을 몰라 벌어진 우스개 얘기가 생각납니다. 한 아가씨가 아주 멋진 사나이를 만나 사랑하게 되어 결혼을 합니다. 신혼 첫날밤 호텔에 가서 샤워하고 나온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가발 벗은 신랑의 민머리 때문에요.
이런 예는 여자에게도 일어납니다. 코가 오뚝하고 쌍꺼풀이 예쁜 미녀를 만나 결혼해서 아이가 태어났는데, 부부와 너무나 얼굴, 특히 아내와 다른 얼굴에 의심을 하다가 알고 보니 성형수술 했다는 사실을요.
다시 옛날이야기로 돌아갑니다.
기생 두 사람보다 달의 개수를 훨씬 많이 안 선비는 그럼 행복했을까요? 아니 선비가 본 달의 개수는 과연 맞긴 한 걸까요? 선비의 눈매는 날카로웠습니다만 만약 그가 바람 부는 날 똑같은 형태로 놀았다면 달의 개수를 달리 말했을 겁니다.
바람이 불면 물결이 흔들립니다. 흔들리는 물결에 비친 달은 하나였다가 둘이었다가 나중에는 바람의 강도가 세차면 세찰수록 개수는 달라집니다. 즉 선비도 자기 기준에서 달을 보았다는 말이지요. 그러고선 기생들이 자기보다 지식이 얕다고 깔봅니다.
진짜 하늘에 뜬 달 말고는 다른 달은 모두 우리 눈이 만들어낸 허상입니다. 호수에 반사된 달이든, 눈에 비친 달이든, 잔에 담긴 달이든 다 허상입니다. 이렇듯 사람의 참모습도 하나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를 이렇게 보고 저렇게 봅니다. 그가 바로 그 하나임에도.
이왕이면 처음 본 그의 모습이 나중에까지 변함없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좋은 방면으로 말이지요. 요즘 사람들을 대할 때 자꾸 흔들립니다. 저 사람이 내가 알던 그 사람인가 하고. 세상이 그렇게 만드는가 봅니다.
처음의 모습을 간직하기 어려운 시절이기는 합니다. 그래도 그 모습이 보고 싶습니다. ‘처음처럼’이 소주 이름만이 아니듯이 처음처럼 사는 모습이 그리운 지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