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의 무게감

나이 일흔에 풀어놓는 소소한 이야기(제51편)

* 말 한마디의 무게감 *



지지난 주 토요일 오후, 봄동배추 씨앗 뿌리려 밭을 일구는데 아주 큰 돌이 나와 어쩌나 하다가 그냥 들어 옮기기로 했습니다. 처음 들 때까진 괜찮았는데 내려놓으려 할 때 갑자기 허리 쪽이 툭 튀어나온 물체에 부딪친 듯 크게 아팠습니다.

처음에는 잠시 그러려니 했는데 점점 더 아프더니 걷기는커녕 바로 앉을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오는 게 아닙니까. 무거운 짐을 들다 허리가 ‘뚝’ 끊어지는 듯한 증상, 전에도 이런 증세를 겪었던지라 단박에 허리 쪽에 이상 생겼구나 했습니다.


일단 원인 찾는 일은 둘째치고 한의원에 가 침이라도 맞아야 될 것 같다고 여겨 일어서려는데 문득 현재가 토요일 저녁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면 안 됩니다. 동네 한의원이라도 토요일 오전까지만 진료할 뿐. 응급실이라도 가야 하나 생각하며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다 도로 주저앉았습니다. 아예 몸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통증이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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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습니다. 차를 몰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누군가 모는 차를 탈 수도 없을 정도로 아팠으니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니까요. 화장실도 앉은 상태로 엉덩이걸음을 해야 했고, 누울 때도 아프고 누워서도 아팠습니다. 도무지 견디기 힘들 정도로.

한바탕 난리를 피우고서야 겨우 잠들었다가 다음날 일요일 잠을 깨 일어나려니 힘들기는 하지만 겨우 일어설 수는 있었습니다. 일요일이라 가야 할 곳이 두 군데 있었지만 나가지 못하고 꼼짝없이 방안에 누워 있으면서 화장실과 식탁 가는 일 말고는 행동을 일절 줄였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즉 지난주 월요일에 겨우 차를 몰 수 있을 정도로 움직임이 가능해 한의원에 갔습니다. 그 한의원은 원래 OO면에 있을 때부터 다니던 단골이었는데, 재작년 OO시 북구로 옮겨가 우리 집에선 좀 멀었지만 거기로 갔습니다.


51-1.jpg (케데헌 속 '한의원' 캡쳐)


선생님은 OO면에 있을 때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사 잘하는 한의사(일반 의사 포함)로 제가 인정하던 분이셨습니다. 손님이 오고 갈 때면 깍듯이 인사를 하는데, 다른 한의원(병원)에서도 요즘은 (한)의사들이 다 인사를 잘하지 않느냐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분은 다릅니다. 거의 90° 가깝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합니다. 처음 받아보는 사람들은 좀 민망할 정도로.

한의원에 다닌 지 사흘쯤 되자 허리 통증이 쑥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토요일이 되자 잔일 해도 되겠다 싶어 산에 가 베어다 놓은 땔감을 도끼로 쪼갰습니다. 일 끝날 때까지 아무 이상 없었는데 저녁이 되자 다시 허리가 아프고 일주일 전의 증세로 돌아갔습니다.


해서 이번 주 월요일부터 다시 한의원에 나갔고. 오늘 아침이 되어서야 통증 사라졌고... 가만 생각해 봤습니다. 이번엔 무엇 때문에 아팠는지 하고. 문제는 지난 주 목요일, 그러니까 비 오기 바로 전날이었습니다. 시골에선 ‘비설거지’가 꼭 필요합니다.

설거지는 원래 일을 하고 난 뒤 하는 뒤처리를 말하나, ‘비설거지’는 비가 오기 전에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고추 늘어놓았다가 비 온다는 예보 있으면 거둬들인다든지 하는. 요즘 우리 집에 해야 할 비설거지는 땔감을 준비하고 그것을 처리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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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허리에 이상 생길지도 모를 위험을 무릅쓰고 나무를 자르고 옮기고 일을 해야 했습니다. 왜냐면 비 맞으면 말짱 도루묵이니까요. 다만 일을 하면서도 선생님이 가르쳐 준 대로 허리보호대fmf 착용하고, 천천히 움직이고, 허리 굽혀 일할 때도 한 번씩 가끔 쭉 펴고...

일단 선생님의 가르침을 잘 지켰습니다. 그 덕분인지 오늘 아침에 나은 듯하나 혹 덧날까 봐 다시 한의원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겪은 상황을 얘기했지요. 그랬더니,


한의사 : 왜 선생님께서 다시 아프지 않으신 줄 아십니까?

나 : 선생님께서 놓은 침의 효과겠지요.

나름 예의 지킨 답에 한의사가 고개를 흔들더니,

“아닙니다. 물론 제 침과 뜸이 좀 효과가 있었겠지만 근본적인 건 선생님 자신이 해결하신 겁니다. 허리보호대 잊지 않았고, 천천히 몸을 움직였고, 일을 하면서도 가끔씩 허리를 펴는 일 꾸준히 한 덕입니다.”

그 순간 머릿속이 확 밝아졌습니다. 이런 대답, 이런 대답을 얼마 만에 들었는가? 물론 저도 준비했지만 가장 큰 공은 한의사에게 있지 않은가요. 그 공을 환자에게 돌리는 그 말. 참 쉬운 표현인데도 그런 말을 들은 적 하도 오래돼 들은 적 없는 듯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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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 필요할 때 꼭 해야 할 말을 잊고 산 게 아닌지 곰곰 생각해 봅니다. 교사인 제게 가장 필요했던 말은 아이들에게 대한 따뜻함이었습니다. 가령 지각한 아이에게,

“어이구, 무슨 일 있었니? 좀체 지각 안 하는 네가 다 지각하다니.” 하는 말 대신 저는,

“야 임마, 너는 날이면 날마다 지각해!” 했으니까요.

직장 상사가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부하 직원이 실수했을 때 하는 말도,

“아, 처음엔 다 실수할 수 있지요. 실수하면서 배우는 겁니다.” 대신,

“아니 미스터 김, 대학 안 나왔어요?” 하지는 않는지요.


51-11.jpg ('친절한 의사' 사진은 글 내용과 관련 없음)


솔직히 그분의 침술이 뛰어난지 아닌지 알 능력이 제겐 없습니다. 허나 배려하는 마음이 담긴 침술은 아주 뛰어나다고 봅니다. 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수(敎授) 능력보다 따뜻함이 담긴 말 한마디가 아이들에겐 더 큰 효과를 주니까요. 깔아뭉개는 말보다 용기 북돋우는 말 할 줄 아는 직장 상사를 둔 부하 직원은 그 회사 다님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길까요.

병이 호전됨을 자기에게 돌리기보다 환자에게 돌리려는 그 마음이 너무나 고와 어제도 갔습니다. 며칠 전에 눈이 좋지 않아 힘들다는 말을 했더니 그날부터 눈에 침을 놓아줍디다. 효과 있으리란 생각 듦은 배려의 침이기 때문이겠지요.


*. 사진은 모두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으며, 한의원 광고함이 아님을 아실 터라 굳이 한의원 이름과 위치를 밝히진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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