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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Feb 19.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66)

제66편 : 장석주 시인의 '희망은 카프카의 k처럼'

@. 오늘은 장석주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희망은 카프카의 k처럼
                                          장석주

  희망은 절망이 깊어 더 이상
  절망할 필요가 없을 때 온다.
  연체료가 붙어서 날아드는
  체납이자 독촉장처럼 절망은
  물 빠진 뻘밭 위에 드러누워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아 감은 눈앞에
  환히 떠오르는 현실의 확실성으로 온다.
  절망은 어둑한 방에서
  무릎 사이에 머리를 묻고
  서랍을 열어 서랍 속의
  잡동사니를 뒤집어 털어내듯이
  한없이 비운 머릿속으로
  다시 잘 알 수 없는 아버지와 두 사람의 냉랭한 침묵과
  옛날의 병에 대한 희미한 기억처럼
  희미하고 불투명하게 와서
  빈 머릿속에 불을 켠다.
  실업의 아버지가 지키는 썰렁한 소매가게
  빈약한 물건들을
  건방지게 무심한 눈길로
  내려다보는 백열전구처럼.
  핏줄을 열어, 피를 쏟고
  빈 핏줄에 도는 박하향처럼 환한
  현기증으로, 환멸로,
  굶은 저녁 밥냄새로,
  뭉크 화집(畵集)의 움직임 없는 여자처럼
  카프카의 K처럼
  와서,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의 주인을
  달래서, 살고 싶게 만드는
  절망은
  -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2021년)

  #. 장석주 시인(1955년생) : 충남 논산 출신으로 1975년 [월간문학]을 통해 등단. 스스로 ‘문장노동자’라 일컬으며, ‘나는 읽는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말을 하면서 1년에 1만 쪽을 읽고 2,000권의 책을 사 모은다고 함.

  지난 목요일 배달한 장석남 시인과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둘 다 이름 비슷한 데다 꽤 알려진 시인이기 때문임



  <함께 나누기>


  이 시인은 뉴스에 오르내리는 일이 잦습니다. 여러 방송에서 패널로 나오고 EBS에서는 프로그램 진행자로도 나왔으니까요. 또 2016년에는 25살이나 어린 제자이면서 시인인 '박연준'과 결혼을 했는데, 결혼식 대신 책을 펴냄으로 혼인신고를 해 화제가 됐습니다.

  제가 부러운 건 25살이나 어린 여자와 결혼했다는 게 아니라 글방이 있는 안성에 3만 권, 파주 본가에 7천 권의 책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 자기 이름으로 펴낸 책도 60권쯤 되고, 1년에 5,000매 이상의 글을 해마다 써왔다니… 정말 부럽습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오늘 시는 제목인 ‘희망은 카프카의 k처럼’에서 많은 암시를 받습니다. 카프카의 소설에 'k'라는 주인공이 두 번 나옵니다. [성(城)]과 [소송]에서. 두 소설의 줄거리는 생략합니다. 다만 제 보기에는 [성]이란 소설에 나오는 ‘K’가 이 시의 k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만.


  “희망은 절망이 깊어 더 이상 / 절망할 필요가 없을 때 온다”

  시가 처음 발표되었을 때 읽자마자 이 구절을 책갈피에 넣었습니다. 아마 저뿐 아니라 많은 분들이 여러 글에서 인용하고 있더군요. 제목이 희망을 말하고 있겠지 하며 읽다가, 읽다 보면 뜻밖에도 희망보다 절망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시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암울하고 어두운 내면의 풍경을 더듬습니다. 마치 소설 [성]에 나오는 ‘k’가 처한 상황처럼. 그리고 이 시행은 밑바닥에 떨어진 이에게 위로하는 말로도 쓰입니다. ‘이제 바닥이니까 더 이상 내려갈 일은 없고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연체료가 붙어서 날아드는 / 체납이자 독촉장처럼 절망은 ~~~ 환히 떠오르는 현실의 확실성으로 온다”

  참 돈을 주고 사고 싶은 표현입니다. 절망을 연체료가 붙어서 날아드는 독촉장에 비유하다니... 한 번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사람은 헤어 나오기 힘듭니다. 마치 사금융에 대출받았다가 더욱 절망에 빠져 자살로 내몰리게 되는 이들을 떠올리게 하는.


  “실업의 아버지가 지키는 썰렁한 소매가게 / 빈약한 물건들을 / 건방지게 무심한 눈길로 / 내려다보는 백열전구처럼”

  저는 시를 배우려 하는 입문생에게 권하고픈 시가 바로 이 작품입니다. 비유 하나하나가 참 깔쌈합니다. 앞에 달린 긴 시구 '실업의 아버지가 지키는 썰렁한 소매가게 빈약한 물건들을 건방지게 무심한 눈길로 내려다보는'이 '백열전구' 단 한 시어를 수식하니까요.


  비유를 배우려 하는 이들에게 권할 만하면서도 사실 비유 빼놓고 읽으면 알맹이가 너무 적습니다. 다른 부분도 한 번 볼까요.


  "절망은 (어둑한 방에서 무릎 사이에 머리를 묻고 서랍을 열어 서랍 속의 잡동사니를 뒤집어 털어내듯이 한없이 비운) 머릿속으로"

  역시 (     ) 부분을 빼버리고 읽으면 '절망은 머릿속으로'입니다. 그래서 처음 시를 쓰려하는 입문자에게 선뜻 이런 비유를 배워라 하긴 어려울 듯.


  "~~ 뭉크 화집(畵集)의 움직임 없는 여자처럼 / 카프카의 K처럼 / 와서,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의 주인을 / 달래서, 살고 싶게 만드는 / 절망은"

  이번엔 도치와 비유가 섞인 표현이 나옵니다. '절망은 (뭉크 화집의 움직임 없는 여자처럼 카프카의 K처럼 와서)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의 주인을 달래서, 살고 싶게 만든다'는 식으로.


  그럼 '뭉크 화집의 움직임 없는 여자처럼'이란 시행은 어떤 뜻? 뭉크는 수많은 여인을 만나 사랑했고 끝내 헤어집니다. 그런 이유에서 그의 그림엔 여자에 대한 혐오감이 짙게 드러난다고 합니다. '움직임 없는'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이란 뜻으로 새길까요.

  절망이 '와서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의 주인을 달래서 살고 싶게 만드니까' 결국은 절망에서 희망의 싹을 틔우게 된다는 뜻이겠지요.


  오늘의 기쁨이 내일의 환희를 담보하지 않고, 어제의 절망이 오늘로 이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걸  버팀목으로 희망을 일으킬 수 있음을 알아라는 뜻으로 썼을지도.


  *. 사진은 [이로운넷](2017년 12월 22일)에서 퍼왔는데, 팔레스타인 거주지에 질서 유지란 명목으로 이스라엘이 가스수류탄(일면 '최루탄')을 던졌는데, 그걸 모아 만든 '수류탄 정원'입니다.

  '창살 없는 세계 최대의 감옥'이라 불리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꽃 -희망-을 피우려는 몸부림이 참 애잔하고도 안쓰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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