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그늘에서, 내가 그늘이 되어가는 이야기

사계의 감정을 지나, 다시 사랑을 말하다

by 삥이


나이를 먹는다는 건,

시간을 흘리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의 그늘이 되어가는 일이다.


봄처럼 피어나, 여름처럼 뜨겁게 살아내고,

가을처럼 익어가다, 겨울처럼 누군가를 감싸는 일.


그 모든 흐름 속에 녹아든 그분들의 진심을 기억하며 나는 말한다.


"지금 이 순간이, 당신이 제게 와준 시기예요."




<나얼 - 기억의 빈자리 (Acoustic MR)(Acoustic Inst)(Piano MR)>



며칠 전,

내 친구가 말하더군.


"나는 엄마가 말만 하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병원, 좋은 의사, 좋은 시기를 준비할 수 있는 때가 되었는데, 엄마는 내가 사준 신발을 구겨 신고 동네 병원에 갔다는 사실이 미안하다고만 해. 나는 그게 미워."


라고 말하던 내 친구의 눈시울은 붉음을 넘어, 말없이 고요히 울리던 눈물로 가득했고, 그 주변의 우리의 눈시울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지금도 엄마가 내 손을 잡아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내가 엄마의 손을 잡고 있었다.


나는 지금도 아빠가 "삥이야 과자 사 먹어"라며 만원을 줄 줄 알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내가 아빠를 향해 백만 원을 건네고 있었다.


그늘이 뒤바뀌는 시기.


그건 내가 누군가를 책임져야 할 '시기(時機)'일 수도 있지만,

부모님 입장에서는 '시기(猜忌)'의 순간일 수도 있다.


“왜 나는 이것조차 못할까?”

“왜 내 자식은 이렇게 따지지?”


그 질문들 속에는,

이전과 달라진 위계가 아니라

무너져가는 존재감에 대한 두려움이 숨어 있지 않을지.



그래, 우린 인간이잖아.



시기(猜忌)를 받을 시기(時機)가 왔다는 건,

이제 내가 감당해야 할 누군가의 마음까지 품을 그릇이 필요해졌다는 뜻일 수도 있겠지.


이 '시기'라는 게 참으로 웃긴 게

대한민국의 사계절처럼 우리가 그 이들.

즉, 내가 부모님을 혹은 부모가 나를 바라보는 시간을 참 적절하게 덮어주는 단어이다.


시기는 곧,

감정 (心機, 심기, 마음의 움직임)

시절 (時節, 시절, 시간의 흐름 속 일정한 절기나 계절)

순간 (時機, 시기, 타이밍)

질투 (猜忌, 시기, 남을 시기하며 꺼리는 감정)


이를 부모의 말로 풀면,

내가 키운 시기(時機)에 아이는 "빠빠", "마마" 입을 열었고,

내가 보낸 시기(猜忌)에 아이는 나를 한스럽게 바라보았고,

내가 함께한 시기(時節) 덕에 우리는 함께 나이 들어갔고,

내가 늙은 것 같은 심기(心機)에 아이는 나를 향해 눈물을 품었더라.


그렇게 사계의 감정은 덜어내며 흘러갔고, 덧없이 채워짐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함께한 우리 가족의 시간은

"삶은, 덧없다" 보단

"덧없는, 삶" 조차 재밌다 보니 덜어내면 그저 흘렀고, 다시 채워졌고, 지금은 가득해졌단다.


그래서,

우리가 종종 듣는

"네가 내 인생 가장 큰 선물이야."


라는 부모의 말은

어릴 때는 '역시 우리 부모님은 날 사랑해'의 자긍심이 되고,

어른이 된 때는 '난 우리 부모님을 사랑해'의 그늘로 변화한다.





나 일 "기깔나게" 잘하고 싶다.

나 살 "멋지게" 빼고 싶다.

나 옷 "예쁘게" 잘 입고 싶다.

나 돈 "많이" 벌고 싶다.

나 "뜨겁게" 사랑하고 싶다.

나 "포근하게" 사랑받고 싶다.


라는 꿈 가득한 감정이


나 일 잘하는 게 쉽다.

나 살 빼는 게 쉽다.

나 옷 입는 게 쉽다.

나 돈 버는 게 쉽다.

나 이제 사랑받고 있다.


라는 성숙함으로 바뀔 때,


그제야

그늘이 뒤바뀌는 시기가 찾아올 때,

나도 아이에게 말할 수 있을 테지.


"네가 내 인생 가장 큰 선물이야."


아마,

그 말은 내가 부모에게 배운 진리고,


내가

아이에게 가르쳐줘야 할 진리일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생명이 품은 가장 원대한 숙제인 'DNA 전달'을 다른 종에 비해 꽤나 뒤늦게 깨달아 수행하는 편이고,


그건 보통 우리네 삶에서 '노화'가 찾아오는 '늙음'의 시기인 편이다.



그제야

그걸 깨달을 때 우리는 그 이들을 향해 사랑과 존경과 연민을 담아 눈물 몇 방울을 건넬 수가 있다.


"감사합니다. 이 삶을 선물해 줘서."

"감사했습니다. 끝내 사랑을 알려주셔서."


싶은 게 많은 게 우리네 삶이고,

쉬운 게 없는 게 진정한 삶이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스릴 넘치는 거다.

그렇게 하루하루 우리는 늙어가며, 시기의 정도에 따라 감정도 변화한다.





나는 아직도 엄마가 내 손을 잡아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당당히 내가 엄마 손을 잡는다.


"엄마, 나랑 장 보러 가자."



나는 아직도 아빠가 "삥이야 과자 사 먹어"라며 만원을 줄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당당히 내가 아빠를 향해 백만 원을 건넨다.


"아빠, 이걸로 모임 나가서 아빠가 한 턱 쏴."



내가 진정한 사랑을 느낄 때 즈음의 시기는 혹시 가을 즈음일까.


그 시기가 너무 늦지 않았으면 싶다.


쉽진 않겠지.




나이를 먹는다는 건,

시간을 흘리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의 그늘이 되어가는 일이다.


그리하여 노화라는 것은

시간을 그저 보내었다는 증거가 아니라

내가 누군가의 시간을 채워줄 시기가 왔다는 것일 지도 모른다.



박지혜 가족사진 (19).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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