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했던 나를, 다시 가능하게 하는 마음
저 산에 꽃 핀다 하더라.
어찌 그 길만 봄이겠는가.
내 발끝도 꽃이네라.
<Lauv - Modern Loneliness>
Chap 01.
└ 부러움, 질투, 도달 가능성 착각.
로또, 기도, 일확천금 혹은 초대박.
그리하여 마냥 '누리고 싶은' 그들의 심리.
우리는 성공을 바라면서도 정작 '그 자리까지의 발걸음'은 생략하기도 한다.
이것은 마치
보이는 만큼 부러워하고,
모르는 만큼 질투하는 여느 어린이와 같다.
닿을 수 없는 거리에서
부러움을 키운 그들은
금수저를 부러워하고,
청약 당첨자를 향해 찬사를 날리며,
유튜브 100만 팔로워를 지닌 이를 연예인이라며 옹호하기 바쁘다.
이를 도달 가능성 착각(Illusion of Attainability)이라고 부른다.
어떤 목표나 결과를 실제로 이루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마치 쉽게 달성할 수 있을 것처럼 느끼는 심리적 착각을 의미한다.
SNS, 유튜브, 블로그 등 온라인 콘텐츠 매체는 이러한 성과 편집물만 노출되고, 또 그것이 알고리즘에 의해 "당연히" 상위노출되므로 더욱 증폭되는 경향이 있다.
욕망의 대상이, 실제보다 가까워 보이게 되면
질투는 쉬워지고, 열등감은 깊어진다.
"그들의 하루를 부러워 하지만, 그들이 묵묵히 걸어온 1,000일을 본 적은 없었다"
마치,
좋은 직을 가지고 있거나,
많은 돈을 가지고 있거나,
멋진 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실패해 본 적 없으시죠?"
라고 묻는 것과 같다.
이는 겉으로는 동경처럼 보이나,
속은 그의 노력을 보지 않은 무례일 수도 있다
성공한 사람은 계속 성공할 거라 믿고,
그 흐름에 탑승하면 나도 똑같이 성공할 거라는 핫 핸드 오류(Hot-hand fallacy).
마치 축구 선수가 슛을 몇 번 연속으로 넣으면, 그다음도 무조건 성공할 거라 믿는 것처럼.
이제 충분히 궁금증을 제안했다.
왜 우리는 "개꿀"을 외치기만 하며,
그 속에 뛰어들기를 두려워하는가.
Chap 02.
└ 노력의 구조, 무지성 동경
누구나 한 번쯤은 시작한다.
예금, 투자, 청약, 부업, 블로그, SNS, V-log, 운동, 독서, 공부..
관심은 쉽다.
시작도 쉽다.
하지만,
너무나도 당연히,
그리고 자명하게도,
이 모든 것은 '끝없는' 장기 마라톤이다.
마치 브랜드 마케팅과 같다는 말이지.
끝이 있다는 건,
폐업이거나
죽음이라는 뜻이니까.
그런데도,
잘된 이의 정면만 동경하고
그 이면을 모른 채, 혹은 외면한 채
'그 자리'에만 오르겠다고 한다.
결국,
완주의 망상을 품은 채
출발선에서 지쳐간다.
"그걸 나도 누렸으면 좋겠다."
"그거, 내 것이었으면 개꿀일 텐데."
그런 마음은,
장기 마라톤이 아닌
단기 달리기의 스타트라인만 바라보게 만들지.
그리고
필연(必然)으로
지친다.
왜냐하면,
끝이 없었는데,
끝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묻더군,
그: 삥이님 어떤 것을 해야 잘될 수 있을까요? 수익화는 어떻게 잡죠? 인스타는 어떻게 해야 팔로워가 늘어요?
나: 이러 이렇게 해보시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너무 어렵네요..
나: 제 생각에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로 본인의 작업물에 대한 관심보다 "뜨고 난 뒤의 본인"에 대한 갈망이 강하셔서 그런 게 아닐지 싶습니다.
그: ...
이 질문을 2주 간격으로 수년째 이어온 분들이 많다.
또 누군가 한 잔을 기울이며 말하더군,
그: 아니, 회사에서 나한테 "이만큼 해주면" 당연히 나도 열심히 하지 안 하겠냐? 이건 부려먹으려고 그러는 거지. 어휴.
나: 맞아, 너는 더 좋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데. 이직이라도 해보는 건 어때? 아니면 포트폴리오를 만들며 사람들과 관계를 쌓아봐.
그: 일단, 시간이 없어 ㅎㅎ
나: ...
모든 마라톤은
한 걸음으로 시작해.
절대로 '완주 욕망'으로 시작하지 않는단 말이야.
자기 결정 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 Deci & Ryan)에 따르면,
인간은
"잘되고 싶다"는 욕망은 넘치지만,
"왜 내가 이걸 해야 하지?"라는 이유가 없다면
사람은 달리지 않는다고 해.
그저, 트랙 밖에서 구경하다가..
지쳐버린다지.
Side.
└ Self-reward Mechanism, 자기보상의 심리학
사실, 그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헬스를 시작해 진짜 몸짱이 되려면
몇 달이 아니라 '수년'이 필요하다는 걸.
SNS로 천 원 한 장이라도 벌려면
로직 분석이나 킬링 콘텐츠보다
기획이라는 이름의 '수련'이 필요하다는 걸.
공부를 시작해 성과를 보려면
자격증 몇 장이 아니라
마음 전체를 담금질하는 '수양'이 필요하다는 것도.
정말 그런 거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처럼,
장인정신은 일종의 '변태성'이다.
좋아한다는 걸 넘어서,
그것에 미쳐야만 가능한 어떤 무게.
그런데도,
우리는 땀은 원하지 않으면서
땀의 결과만 탐하고 있다.
숫자가 오르면 웃고,
숫자가 떨어지면 울며,
결국, 내 마음 전체를
'숫자'에 위탁해 버리는 거지.
Baron과 Hershey(1988)가 검증한
『Outcome bias in decision evaluation.』 연구 결과지를 보면,
사람들은 의사결정의 품질보다 결과의 좋고(good), 나쁨(bad)으로 판단한다는 것을 엿볼 수도 있다.
일명, 성과 편향(Outcome Bias).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는 데 전문가다.
가증스러운 인간이라는 말이다.
성실한 척을 하면서
게으름의 기술을 발전시켜 왔고,
'할 수 있는데 안 한다'라는 자의식을
마치 '나의 가능성'처럼 포장해 왔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는 노력해도 안 되는 사람'일까 봐 두려워서 그런 거 아니야?
이른바
자기보상(self-reward)이라는 심리 구조에 갇히는 현상이다.
누군가는 그렇게라도 숨을 돌리지 않으면 무너질지도 몰라.
하지만 숨이 곧 멈춤이 되어선 안 된다.
'오늘 하루 열심히 살았으니 맥주 한 캔 정도는 괜찮아.'
'이번 달은 고생했으니 여행 정도는 괜찮겠지.'
'지금 당장은 바쁘지만, 나중에 제대로 할 거야.'
그 "괜찮아"라는 말 뒤에는
늘 미뤄진 삶이 앉아 있다.
Last.
진짜 부러운 건,
네 돈이 아니라,
결국 나의 가능성이 되어야 해.
네가 나를 부러워하는 것보다,
내가 나조차를 부러워하는 삶.
결국,
위 논제들을 살펴보면
우리가 질투하는 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이 된 나'를
상상하는 그 순간일지도.
그 사람이 누린 것들을 통해
'가능했던 나'를 떠올리기 때문에 아플지도.
그리고 그 '가능했던 나'는,
지금 이대로의 나를 비난할지도.
그래서 무력감이 찾아올지도.
욕망이 현실이 되려면
노력이라는 시간의 도수를 거쳐야 한다.
"노력이 뭔 소용이야, 재능이 중요해"
"재능이 뭔 소용이야, 배경이 중요해"
"배경이 뭔 소용이야, 인맥이 중요해"
마치 세상을 다 아는 어른이신 것처럼,
시니컬한 말투로 점철된
그 같잖은 것들 말고,
앞선 노력이라는 도수를
감정과 맞닿은 기록으로 만들어야 된다는 말이다.
내가 걸은 만큼,
내가 부딪힌 만큼,
내가 깎여나간 만큼,
나의 '가능성'은 진짜 '가능'으로 바뀔 수도 있잖아.
pain의 gain.
아픈 만큼 자랄 수도 있어,
healing의 kneeling.
낮추는 만큼 치료가 되고,
filling의 feeling.
결국 가득해질 거야.
"질투는 타인을 향한 동경이 아니라, 잃어버린 나를 향한 연민이다."
그러니,
질투하지 말고
다시 시작하자.
한 걸음부터,
숫자가 아닌 감정부터,
겉모습이 아닌 과정부터.
오늘의 '1'은,
내일의 '100만'보다 아름다울 수 있잖아.
같이 해보자.
내일의 너를 내가 먼저 믿어줄게.
▼ 딴 거 또 보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