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집사람은 눈물을 흘릴 여자가 아니여!

by 한지원

"자네 집사람은 눈물을 흘릴 여자가 아니여!"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신랑 시절이었다.
장인어른 칠순을 시골 처가에서 치르기로 하여 아내의 일가친척들이 처가에 다 모였다.
처가 식구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였는데, 그분이 누구였는지는 기억이 없지만 멘트만은 확실히 기억한다.
그 후로 처제들이나 아내의 사촌들에게 들은 내용을 종합을 해본 결과 위 발언이 전혀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닌 것으로 결론 났다.
아내의 고향은 충북 음성으로 시골 출신이다.
시골 학교가 늘 그렇듯 동네에 모여 살던 집안네 일가친척 또래들이 같이 학교에 다니다 보니, 어렸을 때의 일거수일투족이 가족의 레이더에 걸리는 모양이다. 학교에서 어느 누구와 다투었던 일, 혹은 누구를 때렸던 일, 맞고 들어왔던 일.
그러나 나의 아내는 한 번도 누구에게 맞아본 적도 없고 맞아서 눈물을 흘린 적도 없었다고 했다. 오히려 형제들 중에 바깥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고 들어오면 정의의 사도처럼 짠하고 나타나서 원수를 갚아 주곤 했다고 했다. 이쯤 되니 내가 시골 동네 깡패랑 사는 건지, 조폭마누라 하고 사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우리의 아이들은 이모나 외삼촌의 말을 굳세게 믿고 있어서 엄마가 소싯적 껌 좀 씹은 엄마로 알고 있다.
"얘들아! 그렇다고 네 엄마가 요즘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학폭 가해자는 아니란다."


시골로 이사 온 후로 농부 남편의 시원찮은 돈벌이로 인하여 나의 아내는 여러 가지 알바를 갖고 있었는데... 그중 방과 후 애들을 돌보는 돌봄 교사를 한 적이 있다.
하루는 쇼핑백에 옷을 한 가득 넣어서 들고나가는 것을 보았다.
"여보 뭘 그런 걸 들고 다녀"
"학생 중에 조손가정의 학생이 있는데 입히려고"
"누구 옷인데?"
"수현이 작아서 못 입어!"
더 이상 물어보면 혼날 것 같아서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방과 후 돌봄 교실에도 가정 사정이 어려운 아이들이 있다. 아내는 항상 불쌍한 애들이라며 가슴 아파했다.
"저기 저 집 인구 조사하러 들렸던 집인데, 부부가 모두 몸이 불편해!"
아내와 둘이서 차를 타고 이동 중에 길옆의 한 집을 가리키면서 아내가 한 말이다.
어투는 쿨하게 얘기했는데 얼굴을 안쓰러운 빛이 역력하다. 속이 상한일을 당하거나, 안타까운 일을 목격하여도 얼굴에 내색을 하지 않는다. 감정에 따라 행동에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는 사실을 결혼 26년 차가 되면서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아직까지 아내의 눈물을 본적이 거의 없다. 이제야 그 새신랑 시절에 처가 식구들에게 들었던 "자네 집사람은 눈물을 흘릴 여자가 아니여"가 내 가슴에 와 닿는 문장이 되었다.

그 여자를 내가 울게 만들었다.
나는 고향이 서울이다. 을지로 6가...
이제 본적지는 의미가 없지만, 아직도 본적이 서울특별시 중구청에 있다.
내 아내는 나의 사촌 여동생의 친구이다.
여동생이 나에게 소개팅을 주선하여 결혼에 골인한 샘이다. 결혼 전 아내가 여동생에게 내 고향과 시댁 식구들이 시골과 관련이 있는지 물어보았다고 한다. 시골에서 과수원집 셋째 딸로 자란 아내는 시골 생활이 싫어 도시 남자와 결혼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인간이 도시를 버리고 시골로 귀농을 했으니 얼마나 서운 했겠는가?
아내와 둘이서 괴산으로 답사를 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결혼 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내의 눈물을 보았다. 장인어른이 돌아가셨을 때에도 내 앞에서는 눈물을 보이지 않던 아내가...
이제 와서 이런 말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아내에게 한 없이 미안하기도 고맙기도 하다.

여보!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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