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보다 독립을 추구하는 두 아이의 아빠 독립단장입니다.
육아휴직 전에 저는 매우 바쁜 생활을 했습니다. 하루에 한두 시간 아이들을 보거나, 아이들이 잠든 새벽에 출근하고, 잠든 밤늦게 퇴근했죠. 주말이나 어쩌다 쉬는 날에는 피로도에 나의 휴식을 찾기 급급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의 감정을 잘 보살피지 못했죠. 그러면서 경제적인 부분에서 아빠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아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무엇일까? 그리고 나도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점이 들었습니다. 제가 찾은 답은 '소유보다 존재하는 아빠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존재 자체보다는 무엇을 소유할지만 고민하며 살고 있다. 자신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 내가 소유한 아파트, 자동차, 회사에서의 직급 등으로 설명할 것이다. 많은 직장인들이 매일 바쁘게 출근하는 이유도 금전적인 이유가 가장 크다. 이는 가장으로서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의 사교육, 유학, 해외여행, 명품, 고가의 자동차 등을 가족들에게 제공해야만 부모로서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만약 소유가 나의 존재라면, 이를 달성하지 못하거나, 잃을 경우 나는 어떤 존재가 되는 것일까? 나의 가족은 소유와 존재 중 어느 것을 더 희망할까? 소유를 완전히 배제한 삶은 불가능하겠지만 나의 존재를 지속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자아실현,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일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지속 소유하기 위해서 자신의 존재를 헌신하고는 한다.
나는 금전적인 것을 제공함으로써 인정받고 싶지 않다. 소유를 통해 나의 역할을 다 했다는 만족감을 받고 싶지 않다. 진정으로 내가, 가족들이,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찾고, 이루고 싶다. 아빠와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것, 자신이 원하는 길을 걸어가는 것을 지지해 주는 것.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금전적인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행복과 사랑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에 있다. 사소한 것을 놓치지 말자.
아래 글은 故 이어령 선생님이 딸을 잃고 난 감정을 집필한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의 일부다.
바비인형이나 테디베어를 사주는 것이 너에 대한 사랑인 줄 알았고, 네가 바라는 것이 좋은 승용차를 타고 사립학교에 다니는 것인 줄로만 여겼다. 하찮은 굿나잇 키스보다는 그런 것들을 너에게 주는 것이 아빠의 능력이요 행복이라고 믿었다.
아무리 바빠도 삼십 초면 족하다. 사형수에게도 마지막으로 하늘을 보고 땅을 볼 시간은 주어지는 법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을 표현하는 데는 눈 한 번 깜박이는 순간이면 된다.
지금 나에게 그 삼십 초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그때처럼 글을 쓸 것이고 너는 엄마가 사준 레이스 달린 하얀 잠옷을 입거라. 그리고 아주 힘차게 서재 문을 열고 "아빠 굿나잇!" 하고 외치는 거다. 약속한다. 이번에는 머뭇거리며 서 있지 않아도 된다. 나는 글 쓰던 펜을 내려놓고, 읽다 만 책장을 덮고, 두 팔을 활짝 편다. 너는 달려와 내 가슴에 안긴다.
나는 근본적으로 대부분의 가장들이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 대해 의문이 든다. 우리는 돈이라는 소유로 인정을 받으려고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아버지, 어머니라는 존재로서 인정받으려 하지 않는다. 소유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지만 존재로서 인정받는 것은 돈이 들지 않는다. 나의 마음만이 필요하다.
어쩌면 우리와 가족들은 서로 원하는 것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혹자는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지만 아이들, 가족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금전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돈을 버는 것은 분명 다르다.
물론 나는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투자자의 마인드로 부자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돈을 버는 것이 아이들과 가족 그리고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돈을 좇아 혼신을 다하기보다는 아이들과 함께 생각하고, 행동하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가치를 쫓으며 나의 삶을 살 것이다. 이것이 내가 주체적으로 살기로 결정하고, 육아휴직을 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