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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이 Sep 18. 2024

<나를 위한 돌봄> 포스트잇 주문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DAY3, 1인칭 마음 챙김

주문이 필요하다. 마법이 필요하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에서 벗어나고 싶으나

자꾸 침대 안으로 들어가 누워버리는 나 자신을 바꿀 수 있는 마법의 주문이 필요하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은 받아들이고, 내가 할 수 있을 하나씩 찾아 움직이고 싶으나


마음과 다르게 내 몸은 한없이 축 늘어진다.

아, 이런 게 우울인가 하며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쓰고 돌돌 말아 벽에 딱 달라붙는다.

벽을 타고 흐르는 냉기가 시끄러운 마음을 식혀주는 듯 시원하단 생각을 하며.

그러다 제발 다시 잠들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으로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깨어 있으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깨어 있는 내내 우울하기에 차라리 잠을 자는 게 낫겠다 하는 결정을 내린다.

그렇게 누워있었음에도 나는 이런 내가 스스로 일어나 움직이기를 바라는 마음은 있다.

 다만 그 마음이 실행에 안 옮겨져 답답할 뿐.


그래서 노을이 지는 시간이 반갑다.

 이제 곧 해가 질 터이니 합법적으로 내가 침대에 누워있어도,

잠자리에 일찍 들어가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아무도 나에게 ‘너는 게을러, 너는 쓸모가 없어’라며 돌을 던지지 못하는 시간이

해가 진 이후의 시간이 아닐까 하는 합리화가 생긴다.


그래서 여름보다 겨울이 좋았다. 해가 길어지면 초저녁까지 하늘이 밝은데

그 시간에 누워있으면 마음이 불편했다.

생기 있게 지내고 싶어도 도무지 일어날 힘이 없는

나에게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다고 위로해 주는 시간이 노을 이후부터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런 나에게도 침대에서 벗어나는 일이 종종 있는데 그건 바로 화장실 갈 때와 자기 전 씻을 때다.

생리적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리고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 억지로라도 어기적 어기적 일어나야 한다.

무엇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잠자는 시간을 준비하기 위해선, 자기 전에 꼭 씻어야 한다.

그러면 어김없이 내가 마주치는 곳이 있으니 바로 거울 앞이다.


화장실 세면대 앞과 화장대 앞에는 커다란 거울이 있다.

부스스한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반사해서 비추는데

그럴 때마다 보기 꺼려지는 사람을 만난 듯 나는 눈동자를 빠르게 굴리고 그 앞을 후다닥 지나간다.

그렇게 누워있어도, 거울 앞을 피해도 어쩌겠는가. 삶은 계속되는 걸.



 나는 먹고사니즘을 위해 경제활동을 해야 하고,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힘을 내 밖으로 나가야 했다. 결국엔 다시 거울 앞으로 돌아와 눈곱을 떼고 양치하고 세수한다.

그렇게 스스로 멱살 잡으며 일어나 거울 앞에 서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우연히 거울에다 주문이라도 걸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거울에 비친 내가 너무 애틋하고 안쓰러워 무엇이라도 해야만 했다.



 '거울아 거울아, 나에게 제발 주문을 걸어줘' 내가 걸고 싶은 주문 몇 가지를 포스트잇에 적었다.

'생각보다 좋을 거야', '나는 운이 좋을 거야' , '이건 내가 준비할 수 있는 일은 아니야', '네가 옳아.' 등

여러 주문을 얇은 펜 말고 굵은 펜으로 적었다. 그래야 효력이 강력할 것 같았다.


짧지만 강한 한 마디를 찾아 네임펜으로 꾹꾹 진심을 담아 주문들을 눌러썼다.

늘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볼 때마다 이 문구를 계속 읽고 또 읽었다.

로션을 바를 때, 머리를 말릴 때, 화장할 때 등 거울을 볼 때마다 계속 읽었다.

그리고 새로운 주문이 떠오르면 마치 신묘한 부적을 만들 듯 포스트잇에 정성 들여 주문을 썼다.

그렇게 늘어난 주문은 이제 10가지가 넘는다. 용하게도 이 포스트잇 주문은 꽤 효과가 있다.

아주 작은 나를 위한 돌봄이지만 거울에 붙은 주문들이 마치 나를 위로해 주고 응원해 주고 힘을 준다.


 최근에 새롭게 추가된 주문은  

'불안함을 내가 하고 싶은 일로 지운다'이다.


나는 무기력하게 누워있어도 불안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죄책감이 들었고

스스로가 미웠다.

몸은 편하게 누워있을지라도

마음은 초조하고 불안한 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불안을 없애려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로 지우면 된다는 용기를 갖고 싶었다.

포스트잇은 쉽게 붙이고 뗄 수 있지만 거울에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내 마음을 꽉 붙잡고 있는 포스트잇 주문 덕분에 오늘도 나는 거울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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