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day one me, 믹스커피는 달달하지만 매일 마시는건 부담이야
믹스커피 끊기, 오후3시 보리차 마시기
2025년 10월 27일 월요일
믹스커피는 너무 달달하고 맛있다.
스트레스가 확 하고 올라왔을 때 마음을 달래기 위한 처방약으로 훌륭하다.
아침에 마셔도 맛있고, 점심 후 한 모금은 감칠맛까지 난다.
하지만 매일 1-2잔씩 마시기엔 부담스럽다.
너무 달달하다. 프림까지 있으니 건강에 좋을리 없다.
머리도 알고 마음도 알지만
내 손끝은 이 사실을 잘 까먹는다. 알지만 모른척 하는데 일등 공신이다.
반투명한 커피포트 안으로 보글보글 거품이 끓기 시작하면
익숙한 솜씨로 커피믹스 봉지를 리듬감 있게 탁탁 턴다.
컵으로 쏟아지는 커피가루와 설탕 가루가
나를 구원해줄 거라는 강렬한 믿음이 있다. 한 모금만 마시면 일단 일하기 싫은 이 순간을
버틸 수 있다는 생각에 입맛이 다셔진다. 직장인이라면 아이스 아메리카노 못지 않게
커피 믹스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렇다. 내가 10년 넘게 유혹에 지고 있는 중이라 이렇게
자신있게 말한다.
10년 넘게 애정하는 커피지만, 끊고 싶은 달디 단 유혹의 믹스 커피.
사연은 이렇다.
커피 믹스 한 컵 걸쭉하게 마시고, 정신을 차리고 나면
떠오르는 말이 있다.
"언니! 우리 아빠가 뇌졸증으로 쓰러지기 직전까지 갔잖아. 오빠가 아빠 걸음걸이도 삐딱하고
발음도 갑자기 어눌해지는 모습 보고 심상치 않다 여겨 바로 병원 데려가서 살았어. 뇌졸증 전조 증상이었어. 그 이후로 우리 아빠가 가장 먼저 한 일이 뭔지 알아? 아침마다 먹는 믹스커피 끊기. 뇌혈관이 탁해져. 큰일 나. 그만 마셔!"
올해 초 만난 후배는 톤을 한껏 높인 채, 커피믹스를 당장 끊으라며 긴 사연을 늘어놓았다.
그 말을 들은 후부터 나는 믹스커피를 마시면 죄책감에 시달린다.
내 혈관이 깨끗할거라 장담하기 힘들었다.
그 후 커피믹스를 최대한 적게 마시려고 노력했다. 상반기는 꽤 성공적이었다.
일주일에 한 잔도 안 마신 때도 있었다. 뜨거운 여름 날엔 아이스 커피만한 게 없어서 그런건지
뜨거운 믹스커피는 내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그런데 날씨가 부쩍 쌀쌀해지면서 텀블러에 담긴 아이스커피엔 점점 손이 덜 갔다.
배를 따뜻하게 덥히고 싶다는 생각에 뜨거운 커피가 떠올랐다.
뜨거운 블랙커피를 마시면 될 텐데, 이상하게 유난히 쓰게 느껴져 좀처럼 넘어가지 않았다.
게다가 ‘하기 싫은데 해야 해. 그래도 돈을 벌어야 하니까 일해야 해. 그런데 정말 하기 싫어. 아---’ 하는
내적 외침이 들려오는 날이면, 결국 커피믹스 1일 2잔으로 마음을 달랬다.
1일 2잔으로 모잘라, 세 번째 커피믹스를 탄 날 나는 결심했다.
나는 너무 나약한 인간이구나. 커피믹스의 유혹도 하나 못 이기는데 뭘 할 수 있을까.
마음을 달래다 몸이 축 날 수 있다는 생각에 한 모금만 마시고 싱크대에 다 쏟아 버렸다.
생각해보면 나는 직장에서만 커피 믹스를 마신다.
굳이 내 돈주고 사먹는 기호식품이 아니다. 내 돈 주고 사먹지도 않는다.
직장에서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을 때 찾는다.
소소한 일도 잘 안풀리고 매사 짜증날 때가 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어쩔 수 없지' 하고 지나가지만
사실은 예민함이 폭발하기 직전일 때 약처럼 믹스커피를 마셨다.
내 마음 달래자고 꾸준히 내 몸을 망가뜨릴 수 없다는 생각에 chat gpt에게 요청했다.
[믹스커피를 끊고싶어. 방법을 알려줘. 그걸 미션으로 만들어봐.]
기다렸다는 듯이 정말 많은 미션이 대화창에 미끄러져 나왔다.
그 중 나는 커피 대신 에 보리차 마시기를 일일미션으로 정했다.
나쁜 습관을 끊기 위해 내 믹스커피 패턴을 돌아봤다.
가장 유혹에 흔들리는 시간은 오후 3시였다.
점심을 먹고 나면 몸이 나른해지고 힘이 빠질 때,
달달한 게 간절히 당긴다. 그 한 잔만 마시면
남은 오후를 버틸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래서 결심했다. 오후 3시엔 믹스커피 대신 보리차를 마시기로.
보리차는 달콤하진 않지만, 그래도 해봤다.
쉽지 않았다. 달달한 커피를 참으니
이번엔 간식이 간절해져서 혼이 났다.
평소 식습관을 잘 지키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이 식욕을 다스릴 수 있을까?
커피믹스 앞에서 작아지는 내 모습에 지지 않으려고,
오늘도 다시 보리차를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