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day one me, 무채장아찌, 집밥, 새로운 레시피
<2025년 D-68 > 새로운 레시피 하나 시도하기 2025년 10월 25일 토요일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맛있어지는 식재료인 '무'가 냉장고에 한 개 있다.
초록색 부분이 많을수록 달디 단 무라고 배운 나는 마트에서 심사숙고한 끝에
기다랗고 튼튼해 보이는 초록무를 집으로 데려왔다.
이 초록무로 무엇을 만들까 고민을 많이 했다. 얼큰한 국을 끓일까. 채 썰어 무생채를 해볼까.
적고 보니 애초에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지도 별로 없었다.
그렇지만 난 이 무로 집밥을 해 먹고 싶다는 마음은 간절했다.
평일에는 집밥을 거르기 일쑤라 주말에라도 따뜻한 집 밥을 해 먹고 싶었다.
집밥의 치유 없이는 다음 일주일을 잘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날이 추워져서일까. 요즘은 유독 집밥이 그립다.
평일 아침에는 밥과 잠 중에 100% 잠을 택한다. 밥은 품도 많이 들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용해서 느긋하게 식탁 의자에 앉을 여유도 없다.
그래서 이동하는 차에서도
한 입에 쉽게 넣을 수 있는 떡, 빵, 냉동식품으로 아침용 생존식사를 한다.
그렇다. 건강하지 않다. 심지어 여유도 없다.
직장에서 먹는 점심 식사는 늘 긴장 모드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때도 많다.
정신없는 날에는 무엇을 먹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점심을 대충 먹거나 거르게 되면 오후 세 시쯤부터 간식 욕구가 폭발한다.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고 믹스커피를 들이켜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요즘은 먹기 싫어도 점심때는 억지로라도 밥을 먹는다.
이를 방지하려면 숟가락을 들어 꾸역 꾸역이라도 밥을 입에 넣어야 한다.
저녁식사를 풍족하게 먹으면 좋겠지만
오히려 보복심리로 너무 많이 먹어 그동안 살도 찌고 건강도 많이 상해버렸다.
폭식 후 잠을 자는 행위는 정말 최악이다.
심지어 스트레스가 많고 몸이 지쳐있으면 정성 들인 집밥보다는
맛있지만 건강에 좋지 않은 배달음식, 픽업음식 등을 먹을 확률이 훨씬 높다.
운동하는 건강한 삶, 폭식 없는 저녁시간을 보내고 싶어 올해는 저녁 수영을 시작했다.
덕분에 몸은 조금씩 가벼워졌지만, 여유롭게 갓 만든 집밥을 먹기는 더 어려워졌다.
그렇다. 나는 욕심이 많다.
집밥을 먹고 싶지만, 식은 밥 말고 지금 막 만들어진 따뜻한 밥을 먹고 싶다.
그러다 보니 주말밖에 기회가 없다.
평소보다 2-3시간을 더 자고 일어나면 체력이 충전된다.
그 힘으로 나는 집밥을 차릴 수 있다. 반찬은 최대가 2개지만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다. 심지어 냉장고에 오랫동안 박혀있는 식재료가 아닌
신선한 식재료를 바로 구입해서 만들 수 있다.
신선한 식재료 ‘무’로 무엇을 만들까 고민하다가
인스타 숏츠에서 본 ‘무채 장아찌’를 호기롭게 시도해 보기로 했다.
마침 ChatGPT가 준 오늘의 미션도 “새로운 레시피 하나 시도하기”였다.
그렇다면 무채 장아찌는 내게 즐거운 도전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게다가 장아찌는 한 번 만들어두면 오랫동안 여러 번 꺼내 먹을 수 있다.
‘갓 만든 반찬’이라는 집밥의 고집을 잠시 내려놓고, 김치처럼 두고두고 먹으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레시피를 자세히 찾아보니,
무채 장아찌는 만들자마자 바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상온에서 하루, 냉장고에서 3일을 숙성해야 비로소 제 맛이 난다고 했다.
즉, 토요일 저녁에 만들면 목요일 저녁에야 먹을 수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그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미래의 나에게 주는 집밥선물이 아닐까.
토요일의 내가 만든 음식을 지친 목요일의 내가 꺼내 먹을 수 있다면,
그건 분명 내 일상에 작은 활기가 되어줄 것이다.
생각보다 장아찌는 쉬웠다.
무채를 썰고, 냉동실에 있던 청양고추를 꺼내 함께 썰어 매운맛을 더했다.
스마트폰 화면 속 영상은 나에게 강조했다.
“1:1:1:1 — 간장, 식초, 설탕, 물. 이것만 기억하면 됩니다!”
냄비에 재료를 붓고 끓이다가, 펄펄 끓어오르면 준비 완료다.
미리 담아둔 무채와 청양고추가 들어 있는 유리통에 그 신비의 양념물을 부어 넣고 숙성시키면 끝.
바로 맛볼 수 없으니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향만큼은 합격이다. 내가 좋아하는 장아찌의 향, 그 익숙하고 짭조름한 냄새가 났다.
식탁 위에 올려둔 장아찌 통을 보며 괜히 설렌다.
작은 행복은 내가 만들 수 있다.
작은 성공은 내가 노력해서 경험할 수 있다.
지금 내게 무채 장아찌는
작은 행복이자, 기다리고 있는 작은 성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