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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돌 기자 Oct 29. 2021

술을 계속 마시면 주량이 늘까?

"괜찮아, 마시면 늘어!"

"주량이 세잔이야? 괜찮아. 마시면 늘어!"

주량은 고무줄이 아니다. 늘지 않는다. 덜 취하는 방법을 터득한 것일 뿐.

일 자리에서나 회사에서 처음 술자리를 가지면 의례적으로 주량을 묻는다. 그리고 주량과 관계없이 술을 권한다. 사실 주량은 그들에게 중요한 정보가 아니다. 궁금해서 묻는 것도 아니다. 주량은 마시면 늘어나는 거니까!


주량은 늘지 않는다. 절대로.

과학적으로도 주량은 늘지 않는 것으로 판명났다. 알콜이 몸에 들어오면 알콜 분해 효소가 이를 분해하는데, 사람마다 이 과정이 진행되는 속도가 제각각이라 주량 차이가 난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 주량을 알 수 있는 건 이 때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주량은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임상유전체 분석 전문기업인 GC녹십자지놈은 전국 수십개 의료기관에 이를 확인하는 '알코올 리스크 스크린' 검사를 건강 검진 목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이는 혈액 채취 한 번으로 얼마나 알콜 분해 능력이 뛰어난지 알 수 있는 검사다. 표준형, 알콜 분해가 빨라 폭음 위험이 있는 알콜 의존주의형, 분해가 느린 알콜 위험형, 알콜 분해가 매우 느린 알콜 고위험형으로 구분된다. 

아마 내가 검사를 받으면 알콜 고위험형이 아닐까 싶다. 알콜이 들어가면 일단 얼굴이 빨개진다. 그리고 귀가 빨개지고 몸에 접히는 부분들이 빨개진다. 눈가가 빨개지기 시작해서 눈알까지 붉어지기 시작한다. 이맘 때쯤 되면 친구들이 셀카를 찍자고 해도 거부한다. 어떤 어플도 내 관우같이 붉은 얼굴을 감춰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제 얼굴은 거의 검붉은 색을 띈다. 주량 이상이 지나면 팔에 반점 같은 게 생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가려움증과 두드러기가 동반한다.

문제는 아직도 사회에는 '주량은 마시면 늘어나는 것' 이라고 믿는 알콜 광신도가 도처에 있다는 것이다. 이게 먹히는 사회라서 알쓰들은 오늘도 원활한 사회생활을 위해 주량을 늘릴 수밖에 없다.

이따금 주량이 약했는데 마시다보니 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사실 그건 마시다보니 늘어난 게 아니라 1. 원래 셌거나 2.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는 거다. 편한 자리에서 술이 더 빨리 취한 경험, 누구나 있을 것이다. 굳이 정신력으로 저항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일시적으로 알콜 분해 효소가 늘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지만, 이는 정말 일시적인 것이라서 오히려 건강을 헤칠 수 있다. 다만 맛에 적응되고 분위기에 적응되다보면 익숙해질 수는 있겠다.

상대가 주량을 말하면 존중해주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예전에는 술 마시고 나타나는 가려움증을 일부러 참기도 했지만, 이젠 더 이상 참지 않고 술 자리에서 긁는다. 당신들이 즐거운 이 술자리에서, 나는 고통 받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알린다. 누구는 몸에 대형 술단지가 있는데, 내 몸에는 간장종지만한 술단지가 있는 걸 어떡하나. 살려면 긁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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