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시 짓다, 9] 시는,

by 검은개

시는

죽은 아비의 절단한 검은 발가락을 주워

구멍 난 핑크빛 스웨터를 바늘로 꿰매듯

겨울을 맞이할 수 있다


바늘에 찔린 봉긋한 피가

군화가 밟고 지나간 붉은 아지랑이가

시가 적힌 재생지에 스미는 걸 본 듯도 하다


피비린내를 지울 수 없다 시는


파란 아기집에서 잠든 새끼를

하얀 강보로 감싸고 모로 누워

양수의 바다에서

자장가를 흥얼거릴 수 있다


단 한 사람만 아는 언어를

영롱한 돌에 담고 굴리며

기도하고

그믐달을 올려다볼 수 있다


미래의 어미에게 안부를 묻고

저만치 뒤떨어져 따라오는 발자국을 시로

쓸 수 있다


쓸어도 싸릿대 자국이 남는다 시는


해로워 생활이 되지 않는다는 당신이

해로워서 앓고 있는 당신의

머리맡에 두고 간 것이


시는 기침을 낫게 할 수 없다



KakaoTalk_20250528_234154414.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시 짓다, 8] 다시 웃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