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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짓다, 10] 충실한 슬픔

by 검은개

저 어디 깊숙이에서

종양처럼 엉겨 굳은

붉은 눈동자 같았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삼일 꼬박 지새우니

묻으러 가는 길에서 잠이 왔다

영정 사진 뒤에서


밤에도 아침에도 끊이지 않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개수를 세고

본전은 했다 말했다


집으로 돌아오니

기르던 개가 새끼를 낳아 있었고

씻지도 않고

벽에 기대어 앉았다


오래전 어딘가에서

커다란 두 귀를 손으로 잡고

수십 명의 사람이 두개골 따라

토끼 살을 발라내고 있었다


하얀 털과 무해한 눈동자가 철장 안에 가득했다


아버지 따라

간판 없는 식당에 들어가

푸짐하게 차려진 기름진 고기를

사납게 짖는 개를 보며

처음 먹었고


토끼 같은 아이였고

개의 눈동자를 가진 아이였고

없는 간판을 찾아보았지만


하얀 인형을

다 먹은 숟가락 옆에

두고 왔다 했다


차가운 바닥에 기울어지듯 누워

어설프게

토끼의 귀를 그려 보았다


크게 그릴수록

하얀 인형의 붉은 눈동자가 부풀고


따라온 영정 사진 뒤에

숨어서

슬픔의 종양을 오래도록

울렸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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