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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짓다, 11] 충실한 믿음

by 검은개

흔한 종(種)이죠

이렇게 죽은 건 드문 일이고요


누군가는 밥에 독을 탔을 거라 했고 누군가는 고양이의 보은이라 했다


볕 안 드는 허공에 빛을 주기 위해서는

거울이 필요하다

빛은 굴절되어도 반사되어도 빛난다


저렇게 높은 거울에

팔레트 같은 그림자가 생기고

투두둑 투두둑, 바닥에 떨어질 때

빛을 머금은 초록 눈동자가

붉게 번져갔다


한 치의 의심 없이 사랑을 가르는

순결한 목선


박고 죽은 박새

충실한 믿음만 남아

거울에 반사된 빛이

떠나버린 사랑의 그림자란 걸

알지 못한 박새

그렇게 박고 죽은 박새


박새의 마음이

날지 못하고 바닥을 서성거렸다

닭처럼


저렇게 높은 거울 아래

떨어진 빛 따라

듬성듬성 바닥을 쪼았다


흔한 종(種)이죠

이렇게 사는 것은 흔한 일이고요

저렇게 죽는 것도 흔한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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