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문숙 Aug 31. 2024

사랑하는 사람이 미워지는 밤에는

“시가 얼매나 어려운 긴데 그걸 쓴다꼬?”

사랑하는 사람이 미워지는 밤에는          

불협화음의 시 낭송 소리가 울린다. 7층 운동장의 중앙에 큰 책상이 있다. 책상에는 어르신들이 모여 있다. 매주 수요일 시 창작 교실이 열린다. 어르신들 십여 명이 시를 읽고 있다. 엇박자로 때로는 돌림노래가 되기도 한다. 한두 글자 빠뜨려도 개의치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미워지는 밤에는 몹시도 괴로웠다.

어깨 위에 별들이 뜨고

그 별이 다 질 때까지 마음이 아팠다.”     

<시 그리는 수요일>, 고령의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시 창작 교실을 시작하고 일 년이 되어 간다. 각 병동의 어르신 중에 시와 그림에 관심 있는 분들로 구성되어 있다. 회비도 없다. 자격도 없고 시를 쓰지 않아도 좋다. 어떤 이는 시를 읽고 어떤 이는 시를 쓰고 어떤 이는 그림을 그린다. 시에 관심이 없어도 사람이 그리워 오는 분들도 있다. 마실 프로그램의 이름처럼 그야말로 병실을 벗어나 마실 나온 어르신들이다.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 시를 우습게 알거나 가벼이 여기는 말이 아니다. 시를 읽고 쓰며 시가 어떤 장르보다 어렵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고 아무나 도전할 수 없을 만큼 넘볼 수 없는 장르는 더욱 아니다. “밭을 가는 농부도 길쌈을 하는 아낙네도 철을 다루는 기계공도 회사원도 마음에는 시가 늘 살아 숨 쉰다. 다만 그 마음을 꺼내 놓지 않기에 그는 시인이라 불리지 않을 뿐이다.” 어느 시인이 한 말이다.

시 창작 교실에 온 어르신이 대뜸 한마디 하신다.

“시가 얼매나 어려운 긴데 그걸 쓴다꼬?”

뭘 좀 아시는 분이다. 어려운 걸 안다는 건 대상에 대해 노력했다는 거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 삶을 부지런히 가꾸는 우리의 마음이 바로 시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의 인생이 바로 시라는 말이다.

처음 시 수업을 하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동구문화원에서 역사 탐방수업을 진행하였다. 동구의 알려지지 않은 장소를 찾아서 그날의 느낌을 적는 데는 산문보다 시가 좋을 것 같았다. 짧은 시간에 수필 한 편을 완성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시는 분량이 많지 않아 부담이 없다. 모두 수업을 기다리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그날의 감흥을 풀어놓았다. 시를 쓰며 모두 즐겁게 강좌를 마무리한 기억이 있다.

병동의 어르신을 대상으로 시를 제대로 가르치기는 힘들다. 게다가 시를 전공한 것도 아니어서 나 역시 부단히 공부하는 장르이다. 일반인 대상이라면 이론과 실기를 병행하여 실력을 다져야 하지만 어르신들에게는 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그건 중요하지 않다. 대부분 노인성 질환이 있는 분들이어서 평소의 사고를 이어 나가지 못한다. 진행의 속도를 늦추거나 퇴화하는 인지 기능과 신체 기능을 조금씩 회복하고 유지하는 게 목표다. 잠시나마 병실을 벗어나 동네 마실 가듯 7층으로 내려와 이야기 한 자락이라도 들으면 그것만으로도 목표 달성이다.

시 한 편을 읽으며 그날의 이야깃거리를 끌어낸다. 과거의 한순간을 불러내어 기억의 회로를 움직여 추억하고 현실을 살아가는 데 활력이 된다면 그저 그만이다. 습관처럼 이어지던 일상에서 잠시 멈춰 생각할 거리로 주변을 환기하는 셈이다. 시 창작 수업이라기보다 문학 심리 상담과 치료에 가깝다.

자기 서사가 건강하지 않을 때 삶에 문제가 나타난다. 자기 서사는 저마다의 삶을 구조화하고 운영하는 이야기 형태의 인지체계이다. 문학작품 서사의 기본 구조와 속성이 자기 서사와 서로 통한다. 문학작품의 건강한 서사는 병약한 자기 서사를 바꾸어 삶을 변화시킨다. 문학작품 서사를 매개로 하여 자기 서사를 진단하고 인정하거나 바꾸어 나가는 과정에서 문학 치료가 이루어진다.

처음에는 짧고 간단한 시를 선택했다. 나태주 시인의 시는 짧고 상징적이다. 시인의 인생철학이 짧은 글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 비슷한 연령대의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 첫 시간에는 시를 반복해서 읽고 뒷장에 프린트된 밑그림에 색칠한다. 그날의 시를 모티브로 자연스럽게 얘기 나누고 자신의 마음을 적도록 이끈다.

한두 명이 시를 적고 대부분 그림을 그린다. 참가하는 어르신 모두 시를 읽고 자기만의 글을 쓰기는 어려운 일이다. 글을 모른다, 말하지 않아도 한글을 깨치지 못한 분도 있을 거다. 어떤 이는 그림을 그리고 어떤 이는 색칠하고 또 자신의 추억을 적고 어떤 이는 곱씹어 읽으며 생각에 빠져든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제각기 빠져드는 세계는 다르다.

처음에는 방문자가 많지 않았다. 매주 들쑥날쑥하다가 고정 회원이 생겼다. 평소 시와 글을 쓰던 분들은 자신의 무기력함에 실망하여 상처를 입기도 하지만 대개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현재의 상태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짧은 시에서 조금씩 분량이 늘어난다. 아무리 시가 길어도 읽거나 얘기 나누는 데는 큰 무리가 없다. 답답한 병실에 앉아 있거나 잠을 자는 것보다 시를 통해 마음속 깊이 잠자는 시심을 캐내고 싶다.

일 년이 지나는 동안 의도했던 수업의 의미는 물론 생각하지도 못했던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서정시 위주로 수업을 하니 감성 또한 말랑말랑해져 표정이 한결 부드럽다. 이제는 다소 내용이 어려워도 곧잘 읽는다. 다양한 주제로 나누는 대화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그림에 색칠하며 트로트와 가곡, 흘러간 옛 노래를 따라 부를 때, 나는 춤도 춘다. 그만큼 자연스럽고 즐거운 분위기다.

오늘은 도종환 시인의 <사랑하는 사람이 미워지는 밤에는> 시를 읽는다. 역시 돌림노래가 된다. 청력이 좋지 않은 어르신이 한 구절 늦게 시작하였으나 어느 누구도 나무라지 않는다. 낭송을 마치고 두세 번 읽는 사람, 바로 뒷장을 넘겨 그림에 색칠하는 사람, 백지에 무언가를 끄적이는 사람, 이보다 자유로울 수 없다. 오로지 자신에게만 몰두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미워질 때는 어떻게 하세요?”

앞다투어 대답한다. 많이들 미워해 본 모양이다.

한 대 때려요. 미우면 안 보면 되지. 더 잘해 줘요.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게 더 나아요.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괴로우니 술로써 치료해야지요. 참을 인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는데 참으면 복이 옵니다. 살아온 인생만큼 대답도 제각각이다. 사랑은 스스로 좋아서 하는 것이니 누가 하지 말란다고 멈출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랑하다 미워지고 미워지다 다시 사랑하는 변덕스러운 마음을 얘기하다 뒷장을 넘겨 색칠한다.

L 사회복지사와 자원봉사자들은 몸이 불편한 분들을 도와 그림을 함께 완성한다. 일찍 마무리한 사람들은 다른 시를 낭독한다. 한 분 한 분 완성된 그림을 들고 개인의 서사를 곁들여 얘기 나눈다. 같은 산이라도 산청에 살던 어르신은 분홍 진달래가 곱게 핀 지리산이라 한다. 등산을 좋아하던 어르신은 잿빛 산을 그려 눈 덮인 설악산이라 한다. 그림 소개를 마치고 인사하는 어르신들에게 모두 한마음으로 우레 같은 박수를 보낸다.

동네 마실 나오듯 슬그머니 등장한 어르신이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궁금해 기웃거릴 때는 시를 내밀며 큰 소리로 낭독해 달라 부탁한다. 크고 우렁찬 목소리로 낭송하면 시 창작 교실의 분위기는 한결 고조된다. 시의 리듬을 터득하며 낭독하는 동안 소리의 울림은 뇌를 자극한다. 그래서인지 처음보다 한결 밝아진 모습이다. 색칠도 촘촘해졌다. 하나의 색을 사용하던 분들이 알록달록 예쁘게 색칠한다.

마실 프로그램으로 시 창작 교실을 열어 달라는 L 사회복지사의 요청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수락하고 잘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누구나 시인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시는 쓰는 것이 아니라 낳는 것이라는 나태주 시인의 말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마음 안에 시가 살아 움직이다가 저절로 터지거나 누군가 건드리면 툭툭 튀어나온다. 오시라, 누구든지. 시 그리는 수요일로.     

“사랑하는 사람이 미워지는 밤에는

사랑도 다 모르면서 미움을 더 아는 듯이 쏟아버린

내 마음이 어리석어 괴로웠다.”

도종환, <사랑하는 사람이 미워지는 밤에는>     


이전 04화 너의 모든 것이 빛나는 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