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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문숙 Aug 31. 2024

꽃밥 만드는 시간

나는 입맛을 돋울 방법을 궁리한다

     

요양 병동의 저녁 식사 시간이다. 내가 근무하는 병동은 콧줄을 통해 유동식 식사를 하는 분들이 많다. 식사를 두 번에 나누어서 준비하는데 먼저 스스로 음식을 씹어서 삼킬 수 없는 위관 영양 환자들의 식사가 시작된다. L-튜브, 즉 콧줄을 통해 모든 영양을 공급하는 환자들부터 식사를 챙긴다.

유동식 식사 시간에는 준비에서 끝날 때까지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유동식의 양과 내려가는 속도의 완급을 조절해야 한다. 콧줄이 빠지지는 않는지, 속도가 빨라 기침이라도 하지 않는지, 침상을 오가며 챙길 것이 하나둘이 아니다. 잠시 한눈을 팔기라도 하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을 겪기도 한다.

침상에 누워 콧줄을 통해 들어오는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는 그들의 처지는 또 어떤가. 노환, 예기치 못한 사고, 삼킴장애, 피치 못할 이유로 콧줄을 할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누워 있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해도 그 누구도 진정 원하던 일이 아니었을 거다. 말 못 하고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마음을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아무 말 없이 누워 있어도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의 정성 가득한 마음은 전해질 거라 믿는다. 그래서 나는 수시로 그들에게 말을 건넨다. 처치하는 동안 보통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대하며 모든 과정을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한다.

“어머님, 식사 들어갑니다. 맛있게 드세요.”

“아버님, 식사 끝나고 물 들어갑니다.”

한두 마디 인사를 건네며 안색을 살필 때 편안해 보이는 것은 나만의 착각은 아닐 것이다.

유동식 환자들이 식사할 때 올려놓은 침상을 내리고 나면 어느새 일반식 식사 시간이다. 스스로 음식을 삼킬 수 있는 분들의 식사에는 본격적인 수발이 필요하다. 요양병원이다 보니 스스로 식사를 하는 분들보다 수발이 필요한 분들이 대부분이다. 저 멀리서 식판을 담은 이동차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면 위생 장갑을 끼고 제각기 맡은 환자의 자리로 간다.

일반식을 하는 이들의 식사는 경식과 연식으로 나눈다. 노환으로 기력이 쇠잔해진 분들이 먹는 재료를 다져서 만든 것은 경식이다. 그보다 조금 더 저작과 소화 능력이 떨어지는 분들이 즙을 내어 드시는 것이 연식이다. 병세가 호전되어 유동식에서 연식으로 또 경식으로 바뀌는 분도 있다. 퇴원하거나 처치에 따라 다른 병동으로 가게 되면 식사 수발하는 분들의 숫자는 줄어들거나 늘기도 한다.

소화기에 큰 이상이 없는 분들이니 식사 때를 배꼽시계의 감으로 아는 모양이다. 침상을 세우고 자리에 앉히면 얼굴에 화색이 돈다. 엘리베이터가 열리는 알림음이 울리고 드르륵거리는 배식차 소리가 들리면 귀를 쫑긋 세우고 자세를 고쳐 앉는다. 병실로 하나둘 식판이 들어오면 입에 군침이 돌아서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목에 턱받이를 두르고 밥을 기다리는 분들의 모습은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다. 어서 빨리 밥을 달라는 눈짓을 보낸다. 식판을 자리에 올리면 손으로 끌어당기려 하는 분도 있다. 우리가 수발을 들어야 하는 환자는 비교적 가벼운 증세부터 중증에 이르기까지 정도에 따라 다양하다. 맞춤 수발을 해야 한다. 잘게 부수거나 즙을 내어서 만든 반찬이 작은 종지기에 담겨 나오면 나는 입맛을 돋울 방법을 궁리한다.

오늘은 하얀 미음 위에 즙을 낸 반찬을 한 숟갈씩 올려 꽃 그림을 그린다. 당근즙으로 붉은 꽃잎을 그리고 호박 나물을 갈아서 만든 반찬으로 초록 이파리를 만든다. 잘게 다진 김은 검정 씨앗이 된다. 한 송이 꽃이 밥그릇에 담겨 있다.

“꽃밥이다.”

환한 표정을 지으며 입맛을 다시는 어르신에게 꽃밥을 한 숟가락 떠서 건넨다. 꽃잎 한 숟갈 씨앗 한 숟갈 드리다 보면 그릇은 어느새 바닥이 드러난다.

처음에는 천천히 씹고 천천히 삼키는 어르신들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한 숟갈 드리고 나서 기다리는 동안 심심풀이 삼아 한 일이다. 꽃 그림을 그려 가며 대화를 나누는 동안 식사량도 늘어 건강이 좋아진 분들을 보면 영양가 있는 음식을 즐겁게 먹는 것이야말로 약보다 좋은 보약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을 다해 식사 수발을 하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정성을 표현하고 싶었다. 으레 습관적으로 하던 일을 반복하는 동안 어르신들을 위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게 되었다. 매 끼니 식사를 돕는 일은 예기치 못한 상황이 일어날 수 있기에 마음을 놓을 수 없지만 가장 보람을 느끼는 일이다. 다른 의료 처치보다 더 큰 의미를 두는 시간이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밥 먹고 합시다.” 입버릇처럼 하는 말처럼 나는 먹는 일에 삶의 비중을 크게 두는 편이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병동의 손이란 손은 모두 매달려 한바탕 전쟁 치르듯 긴장 속에서 식사 시간이 끝난다. 한 숟갈이라도 더 먹이려는 이와 도무지 식욕이 돋지 않는 이, 식사 습관을 잊지 않도록 스스로 먹을 수 있게 지켜보는 이, 한 차례 파도가 휩쓸고 가면 기진맥진하여 앉을 자리부터 찾고 싶다.

잠시 자리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다. 입안에 넣은 음식을 스스로 삼키는 일이 얼마나 큰 기적인지. 요양병원에 근무하기 전에는 당연한 일로 알았다. 중환자실에 근무하기 전까지는 밥을 먹고 몸을 씻고 옷을 입고 단장을 하고 스스로 본 용변을 처리하는 일들도 당연한 것으로 알았다.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고 맞이하는 일상의 모든 일은 병상에 누워 지내는 이들이 바라는 큰 기적이었다.

세상과 부딪히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부대끼는 모든 것이 살아 있음의 증명이다. 병원에서 근무하고 나서 작은 것 하나도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되었다. 불평하고 불만이던 모든 것을 ‘꽃밥’을 만들고 버무리듯 마음을 다하자, 스스로 다독인다.

오늘도 나에게 주어진 날들을 소중하게 맞이한다. 마음먹기에 따라 복잡하고 힘든 일도 즐거운 놀이로 바뀐다. 정신없이 한 끼를 해결하는 식사 시간이 ‘꽃밥 만드는 시간’으로 바뀌니 마음 부대낄 일이 없다. 남은 나의 삶도 정성을 다해 꽃밥을 만드는 마음으로 살리라 다짐한다.     

칠암마을 등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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