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보내 준 선물의 시간이었다
엄마, 미안해
고향에 계신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추석에도 안 오고 얼굴 못 본 지가 벌써 석 달째란다. 짬이 날 때마다 잠깐씩 통화를 했기에 엄마 얼굴을 못 본 지 그리 지났나 싶었다. 내가 오래 무심했구나, 변명거리를 찾는다. 교대 근무에 쉬는 날에는 수업이 있고 또 문화원의 상반기 책 만드는 일로 바빴노라 연신 핑계를 늘어놓는다. 추석에도 근무가 있어 찾아뵙지 못했다. 언제 한번 가겠노라는 말만 하는 딸을 손꼽아 기다렸던 모양이다.
“엄마, 미안해. 조만간 시간 내서 꼭 갈게.”
조만간, 편리한 말이다. 기약 없는 공수표를 또 날린다. 말을 하면서도 씁쓸한 건 그날이 언제일지 당분간 계획에 없다는 거다. 물론 모든 일정 미루고 당장이라도 갔다 오면 되는 거리지만 마음속으로 이런저런 이유를 찾는다. 차일피일 미룰 게 뻔하다. 아마도 지난 한 달가량 엄마를 가까이에서 모셔서 내심 안심이 되어서 그럴 거다.
몇 달 전에 엄마의 왼쪽 다리가 부었다. 앉아서 그림을 그리거나 성경책을 읽으니 다리가 붓는다며 우리는 잠깐씩 누워 계시라는 말만 반복했다. 잘 붓는 체질이니 그러려니 여겼다. 점점 붓고 통증이 심해지니 하는 수없이 가까운 보건소 들렀다. 원인을 모르니 무조건 큰 병원에 가라고 해서 내가 근무하는 병원으로 모셨다. 봉와직염이었다. 조금 더 늦었더라면 절단할 수도 있을 만큼 위험한 지경이었다. 한 달 정도 입원 치료를 받았다.
다행히 항생제와 처방 약이 효과가 있어 부기는 하루가 다르게 빠졌다. 나는 출근길에 병실에 들러 간식과 먹거리를 챙겨 드리고 퇴근 후에는 함께 지내다가 집으로 갔다. 동생들과 교대로 엄마 곁을 지키며 오랜만에 엄마와 푸근한 시간을 보냈다. 종합병원에서 긴 복도를 지나면 요양병원이 나오니 점심시간에도 잠시 얼굴 보고 왔다.
엄마는 자신의 건강은 점점 나빠질 거니 결국 가야 할 곳은 요양병원이라며 어떤 곳인지 보고 싶다고 하셨다. 입원해 있는 동안 휠체어를 타고 병동 구경도 하고 내가 근무하는 모습도 보고 가셨다. 다행히 경과가 좋아서 집으로 퇴원하고 지금까지 잘 계신다. 요양병원에 올 뻔한 엄마가 고향 집에서 노후를 보내시는 것에 감사하다.
요양병원에 입원하는 어르신들은 치료하다 호전되어 퇴원하는 것이 목표이다. 그런 분들이 대부분이나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며 오랜 기간 계시기도 한다. 갑작스러운 질환으로 급속도로 건강이 나빠지기도 하고 노인성 질환으로 들어와 그 상태를 유지하기도 한다. 초로 치매가 와서 입원한 이들을 보면 한창 활동할 나이에 질병에 발목 잡혀 일상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곳에 있는 분들이 입원한 이유도 수만 가지, 살아온 사연도 수만 가지이다.
요양병원에 계신 분들은 모두 누군가의 어머니 아버지였다. 나 역시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피해 갈 수 없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그들에게 늘 연민을 느낀다. 보이는 것 이면의 마음을 보려 하고 의료 행위를 뛰어넘는 정성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진심을 알아주는 눈빛을 볼 때는 신명이 나서 더욱 마음을 쏟는다.
바쁜 업무를 수행하다 보면 병원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일에는 마음에 동요가 크지 않다. 개인적인 일상의 부대낌도 병동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갈등도 크게 마음을 쓰지 않는다. 출근과 동시에 돌봐야 할 환자에 집중하고 새로운 업무를 수행한다. 오로지 치료하고 돌보아야 할 환자로만 대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다. 아직 모든 업무에 미숙한 초보이기에 더욱 그럴 거다. 여기저기서 수시로 불러 대고 빈틈을 보이지 않으려 뛰다 보면 어느덧 퇴근 시간이다. 말 그대로 다른 생각에 빠질 틈이 없으니 병원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감정의 거스러미는 금세 사라진다.
때로는 의도치 않게 환자가 감추고 싶은 사생활과 마주할 때가 있다. 대개 못 본 척하거나 알고도 모른 척하게 마련이다. 병원에서 보고 들은 환자의 정보는 비밀 유지가 기본이다. 의도치 않게 마주하는 환자들의 개인사는 고요한 호수에 돌을 던지듯 잔잔한 파동을 만든다. 종일 마음이 쓰여 병실을 들락거린다.
누워 있는 어머니 곁에서 한동안 앉았다 가는 이도 있다. 그는 매일같이 들러 꼼짝도 못 하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 흘린다. 알아듣지 못하는 어머니에게 귓속말로 사랑한다 말한다. 오늘은 엄마가 어디가 불편하다고 말씀하신다며 봐 달라고 할 때는 말을 하지 못하는 분이 그럴 리가 없지 싶은데 가 보면 거짓말처럼 그곳에 문제가 있다.
주말이면 모시고 나가 외박을 하기도 한다. 어머니를 남겨 두고 떠날 때 눈물짓는 어머니에게 모진 소리로 울음을 그치게 한다. “울면 다시는 오지 않겠다.” 모진 아들의 말에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닦고 웃으며 손을 흔든다. 다음 주말에 아들이 데리러 올 때까지 잘 참고 게셔야 할 텐데. 마음이 짠하다.
직접 모시거나 가까이에서 돌보지 못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보냈지만 남겨진 이나 두고 떠나는 이 모두 서로의 모습에 가슴 아프기는 매한가지다. 수년간의 입원 생활이 익숙해질 만도 한데 여전히 처음 병원에 모셔 올 때처럼 마음이 힘들단다. 오십은 넘어 보이는 자녀가 수시로 방문하여 의식 없는 어머니 곁에 앉아 무슨 생각 하는지 어떤 말을 하는지 짐작할 뿐이지만 손수 모시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일 거다.
그날도 그가 와서 울고 있기에 취침 약을 드리며 궁금증이 일어 물어보았다. 그는 막내이다.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져 누워 있어도 다른 형제들은 관심도 없다며 형제들에 대한 원망을 쏟아 낸다. 눈빛으로 대화를 나누는지 대답 없는 어머니에게 묻고 스스로 대답하며 얼굴을 어루만지고 또 손을 쓰다듬고 애가 타는 모습이다. 눈물을 닦기를 여러 차례. 그러기를 한 시간 가까이 한 연후에야 자리에서 일어난다.
요양병원에서 일한 지 2년쯤 되었을 때다. 동료의 어머니가 입원 중 돌아가신 일이 있었다. 나 역시 그 당시에 같은 병원에서 엄마가 장기간 입원할 때여서 내 일같이 마음이 쓰였다. 어르신들이 진단을 받고 투병하는 많은 과정을 거쳐 돌아가실 때 안타깝지 않은 죽음은 없다. 하지만 동료의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는 내 일인 듯 여겨져 감정이입이 되었는지 더욱 안타까웠다.
그 동료와 함께 나이트 근무를 할 때였다. 며칠 넘기지 못할 거라 서로 짐작할 뿐이지 달리 해 드릴 게 없었다. 업무인계 후 병실을 돌아보고 나서 동료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병실에 뛰어 들어가 보니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어머니를 품에 안고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 미안해.” 몇 번이나 되뇌었다. 집으로 모셔 갔더라면 어땠을까, 다른 병원으로 모셨으면 어땠을까, 여러 생각이 교차하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무력감에 더 힘들었을 거다.
엄마와 함께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매일 일하면서 볼 수 있었고 곁에 있어 안도하고 자주 얘기 나눌 수 있어 행복했을 거다. 더는 자책하지 않고 어머니의 마지막을 지켰다는 것으로 위안 삼았으면 좋겠다. 한 달여의 시간은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에게 신이 보내 준 선물의 시간이었다고 그녀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