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민 동시 '중력분, 박력분'
여행을 가게 되었다. 2년간 근무했던 주문진으로 가는 2박 3일 여행이다. 챙길 물건도 많지만 빼뜨릴 수 없는 게 있었다. 바로 수요일에 지인들에게 전송할 시 필사 재료다. 다행히 주말에 시를 골라놓았다. 김성민 시인의 <브이를 찾습니다>에서 고른 시, '중력분, 박력분'이다.
주문진에 도착해서 예전에 살던 산동네 마을 불당골을 가보았다. 남편과 나는 추억에 젖어 아직까지 남아있는 슈퍼와 건물이 허물어진 자리들을 보았다. 한번 들러 짜장면을 맛나게 먹었던 주영반점 자리는 무슨 전시회를 한 끝에 빈 건물로 남아있었다. 내려진 철제문에는 커다란 고래 한 마리가 그려있었다.
항구부근 시장에 들러 아는 집에서 밥을 먹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밤길을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저녁 시간 시를 필사했다. 필사는 이상한 힘이 있다. 그냥 시를 읽을 때와는 다르게 손끝에서 글자가 써질 때마다 새로운 생각도 하나씩 툭툭 터지는 듯하다.
중력, 지구가 우리를 당기는 힘
중력이라는 단어를 두고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시인은 중력분을 보고는 생각에 빠진다. 슈퍼에서 본 중력분을 통해 중력의 당기는 힘을 생각하고 뭔가 당길 수 있을 거 같다는 심정에 빠진다. 좋아하는 아이한테 뿌려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른다. 이 문장을 읽은 뒤에야 중력분을 뿌리고 싶었던 대상과 그런 순간들이 촤르르 떠올랐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어린이들을 잡으려고 무진 애썼다. 게임도 하고 야단도 쳐보고 설득도 했던 날들이 있었다. 어린이 손을 잡고 교정 산책을 하면서 그 어린이 마음으로 들어가려 애쓰던 날들도 있었다. 그때 나는 어린이들에게 중력분을 뿌리고 싶었다.
싱크대 하부장에서, 마트에서 보던 밀가루, 칼국수를 하거나 빵을 만들 때 쓰던 중력분과 강력분은 시가 되려고 내 옆에서 맴돌고 있었는데 내내 그 시를 붙잡지 못했다.
다행히 마지막 문장이 남았다.
그 옆에 박력분도 있다
시인은 마지막 문장에서 더 쓰지 않고 열어두었다. 분명 멋진 말을 가지고 있었을 터인데 쓰지 않았다.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다. 얄밉게 박력분을 어디다 쓸지 시인이 썼더라면 또 놓쳤네 할 뻔했다. 시를 전송하고 났더니 나에게는 박력분이 필요해요, 하고 답해온 분들이 여럿 있었다. 나는 이제 누군가에게 중력분을 쓰기보다는 나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나이가 들수록 박력분을 쓸데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시를 필사하고 감상을 쓴 뒤 사진을 찍어두었다. 하지만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다시 한번 사진을 찍겠다고 마음먹었다. 출근하느라 허둥거리거나 분주할 후배선생님들에게 시원한 바다를 보여주고 싶었다. 바다를 앞에 두고 휴양을 하고 있으려니 미안한 마음이 들어 작은 성의라도 보이고 싶어졌다.
수요일 아침, 필사한 종이를 가지고 바다로 나갔다. 파도 소리와 해의 기운과 갈매기의 노래를 담아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전송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