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바꾸어 쓰기도 괜찮아

시 바꾸어 쓰기

by 강승숙

수요일 아침 국어시간, 시 한 편을 화면에 띄우자 화르르 떨어지는 벚꽃처럼 교실에 웃음꽃이 번진다. 웃음은 꽃씨 어린이들이 서로 통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공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시는 박성우 시인의 <코알라 시간표>였다.


1교시:잠자기
2교시:잠자기
3교시:잠자기
4교시:잠자기
급식 먹고
5교시:잠자기

아, 코알라는
잠자기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잘 자는구나.


시를 읽은 뒤 작가는 왜 다른 동물이 아닌 코알라를 등장시켜 시간표를 만들었을까, 공감이 가는 구절은 어디인가를 가지고 짝토의를 했다.


어린이들은 '잠자기'라는 시어에 꽂혀 흥미진진하게, 침 튀기며 토의를 했다. 그걸 보면서 시 바꾸어 쓰기를 하면 좋겠네, 하고 생각했다. 역시였다. 어린이들은 순식간에 시를 써냈고 기발하거나 재미있거나, 웃음 주는 시들이 쏟아져 나왔다.


태영이는 ‘우크라이나 시간표’라는 제목의 시를 발표했다. 이를 주제로 시를 쓸 줄은 몰랐다. 태영이는 뉴스로 그 나라 상황을 보면서 궁금증, 안타까움, 불안감들이 쌓였을지도 모른다. 그간 말할 기회를 얻지 못했는데 이렇게라도 담아놓은 이야기를 풀어놓아 다행이다.


다른 친구들은 자신의 바람을 담은 시를 썼다. 어린이들이 간 뒤 배움 공책을 읽었다. 하나하나 재미있다. 어떤 어린이는 '잠자기' 자리에 '밥 생각'을 넣었다.


게임과 운동으로 시간표를 가득 채우면서 순수한 욕구를 표현한 어린이도 있다. 강아지나 갈색곰, 염소, 선풍기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유머스러운 시를 쓴 어린이도 있다. 사회와 미술, 음악을 좋아하는 민재는 세 과목으로 6교시 시간표를 다 채웠다. 교사인 나는 수학을 슬쩍 끼워 넣고 싶어졌다. 민재가 수학도 조금 더 좋아했으면 하는 욕심이 나서다. 예은이는 우리 반에 대한 사랑을 담은 시간표를 만들었다. 예은이 시는 우리 반 게시판에 붙여주고 싶었다. 지호가 만든 반가와 함께 우리 반을 상징물이 될 듯하다.


<꽃씨반 시간표> 유예은

1교시:시 낭송

2교시:목련 관찰

3교시:꽃잎 줍기

4교시:시 쓰기

5교시:책 읽기

급식 먹고

6교시:짝토의


아, 꽃씨반은 언제나 생각을 키워내는구나!


어린이들이 만든 시간표를 보자 나도 내 방식대로 시간표를 만들고 싶어졌다.


<선생님 시간표>

강승숙

1교시:꽃밭 산책

2교시:그림일기 쓰기

3교시:그림책 읽기

4교시:동화책 읽기

5교시:동요 부르기

급식 먹고

6교시:꽃씨신문 만들기


아, 꽃씨반 선생님은 이렇게 하면서 나이가 들었구나!


나만의 시간표를 만드는 활동은 어린이들에게 힐랑타임이 된 듯했다.


-선생님이 시 하나로 수업해 주신 게 대단하신 거 같다. 민재 시간표가 마음에 든다. 진짜 공부하는 과목이 들어있어서 현실적이고 재미있다. 유예은의 요상한 날씨도 마음에 든다. 그런 날씨에 문구점에 가 본 적이 있어서 공감이 됐다.(강담현)

-강승숙선생님 시가 마음에 든다. 선생님의 특징을 잘 살려서 썼다.(김보광)

-태영이가 러시아, 우크라이나 시간표를 만든 게 마음에 든다. 어떻게 전쟁하는 나라의 시간표를 만들게 되었을까?(정예린)


어린이들은 주말에 부모님 앞에서 코알라 시간표를 낭송한 뒤 부모님의 시간표를 받아왔다.

<우예*성 어머니 시간표>

1교시:커피 마시기

2교시:드라마 보기

3교시:수다 떨기

4교시:쇼핑하기

5교시:바다 보기

아, 엄마는 자유롭게 쉬고 싶구나


<이서* 어머니 시간표>

1교시 캐나다 가기

2교시 미국 가기

3교시 멕시코 가기

4교시 브라질 가기

5교시 한국으로 돌아오기

아, 비행기는 어디든 갈 수 있으니 참 좋겠다.


<김민* 어머니 시간표>

1교시 아침밥

2교시 아침밥

3교시 아침밥

4교시 아침밥

자고 일어나서

5교시 아침밥

엄마는 아침밥을 잘 먹어서 힘차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구나.


어머니들이 만든 시간표를 보니 일상의 애환이 은근하게 스민 걸 알 수 있다. 비행기는 어디든 갈 수 있으니 참 좋겠다고 썼다, 자유롭게 쉬고 싶다는 문장으로 시를 맺은 어머니도 있다. 아침밥에 마음을 다하는 엄마까지, 무겁지 않지만 시 하나하나에 고단한 일상이 묻어난다.


어린이들은 국어교과서를 통해 시를 만나는데 시를 여전히 어렵게 느낀다. 사정이 이러니 우선 시와 친해지고 가까워지는 게 필요하다. 이때 김용택의 <논다>는 좋은 보기 시다.


<논다> 김용택

나는 산이랑 논다

나는 나무랑 논다

나는 개미랑 논다

나는 나비랑 논다

나는 비랑 논다

나는 별이랑 논다

나는 달이랑 논다

나는 그렇게 논다


김용택 시인의 시 <논다>를 어린이 자신의 이야기로 바꾸어 써보았다. 글을 길게 쓰지 않던 한 어린이는 <논다> 시 바꾸어 쓰기를 유난히 길게 썼다. 하고 싶은 말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온 거 같다. 시를 통해 그 어린이의 일상, 관계 전모를 파악할 수 있을 거 같다. 다른 어린이 하나는 자연만 등장한다. 시어 하나하나가 이쁘다. 오래전, 그러니까 60년대 어린이가 쓴 것만 같다. 자꾸 읽어보게 된다.



<논다> 김태현

나는 은우랑 논다

나는 아빠랑 논다

나는 e마트랑 논다

나는 핸드폰 이란 논다

나는 침대랑 논다

나는 Zoom 이랑 논다

나는 컴퓨터랑 논다

나는 밖에서 논다

나는 공책으로 논다

나는 옷이랑 논다

나는 티브이랑 논다

나는 책으로 논다

나는 음식이랑 논다

나는 게임과 논다

나는 시와 논다

나는 춤이랑 논다

나는 로블록스 랑 논다

나는 마인크래프트로 논다

나는 키보드랑 논다

나는 마우스랑 논다

나는 음료수랑 논다

나는 엄마랑 논다

나는 그렇게 논다


<논다> 박무성

나는 친구랑 논다

나는 햇님이랑 논다

나는 눈이랑 논다

나는 강아지랑 논다

나는 모래랑 논다

나는 꽃씨랑 논다

나는 봄이랑 논다

나는 그렇게 논다


▪김태현 글 <논다>가 마음에 든다. 자신이 노는 것을 많이, 잘 썼다. 꽃씨신문 4호에서 친구들 작품을 보니 추억이 떠올랐다. 친구들과 했던 일이 추억에 남았다.(박기광)

▪김태현의 <논다>가 마음에 든다. ‘나는 아빠랑 논다’를 보고 태현이가 아빠를 사랑하는 게 느껴져 기분이 좋다.(이나연)

▪김태현의 <논다>가 마음에 든다. 태현이는 노는 게 많다. 뭘 어떻게 놀길래 저렇게 길게 쓴 건지 궁금하다. 그중 옷이랑 논다는 게 어떻게 노는지 제일 궁금하다.(이준우)


어린이들이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거나 배울 때 친해지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시도 마찬가지다. 뜻깊고 울림이 큰 시도 좋지만 어, 이것도 시였어, 되게 재미있네, 나도 할 수 있는 같은 시로 시작하면 더 좋을 거 같다. 부담 없이 시작해서 한걸음 한걸음 깊고 멋진 시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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