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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향이랄 게 없는 사람이다. 대전의 성모병원에서 태어나(놀랍게도 이 사실조차 얼마 전에야 알게 되었다!), 잠시 친가가 있던 김해에 머물렀다가, 아직 걸음마도 채 떼지 못한 채 대구로 흘러와 정착했다고 들었다. 그것도 어느덧 20년이 넘었다. 대구 도심 한복판에 있는, 시끌벅적한 도시의 소음이 가득한 집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아스팔트에는 상가의 쓰레기가 즐비했고, 마을의 고요함 대신 밤에도 시들지 않는 네온사인이 흐드러진 시내의 주상복합건물 꼭대기 층. 그러니,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고향‘의 이미지는 내게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추억을 나누는 정겨운 마을의 거리, 몰래 사랑을 속삭이던 집 앞 계단, 입김을 내어 가며 걸음을 재촉하던 좁은 골목길 따위는 없었다. 지내다 보면 정이 들기야 하겠지만, 아무래도 그런 도시의 이미지에 마음을 둘 수 있는 내가 아니었다. 복잡한 거리와 주말 저녁이면 즐비한 취객, 흥분과 고성으로 뒤죽박죽이 된 동네. ‘고향’으로서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면, 내가 살았던 그곳, 그 집은 해당 사항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해서 내게 고향이 없느냐 하면, 주저 없이 그렇다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태어난 곳에 대한 기억도, 유년기를 보낸 동네에 대한 뚜렷한 이미지도 남아있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도, 물리적 실체로서의 ‘공간’이 고향의 전부인 것은 아니다. 내게 고향이란, 내 마음이 정주하던 ‘장소’에 가깝고, 그러므로 그 고향은 언제나 곁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공간’이 ‘장소’가 되는 것은 나의 기억과 감정에 의존하는 것이고, 그런 차원에서 ‘장소’란 반드시 특정한 어느 공간을 상정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요컨대 ‘위치’가 아닌 ‘감정’이 중요한 것이고, 그러한 감정들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의 유무가 나의 고향을 판가름하는 데 있어 중요한 준거가 되어 주고 있다고 해야 할까. 결국 고향이 어디에 있는가를 찾기보다는 ‘누구’와 함께 있을 때, 무엇을 경험하고 생각하고 ‘느끼고’ 있는가에 따라 나의 고향은 발생하거나 사라지는 것. 마치 하나의 현상과도 같달까.
그러니까 내게 있어 고향이란 것은…어떤 실체를 가진 대상은 아니었던 셈이다. 흔히 말하는 고향은 그리운 곳, 그래서 언젠가는 내가 ‘돌아가야’ 할 곳. 물리적 실체로서의 고향이 존재하지 않는 내게, 그것은 어떤 특정한 공간이나 지역이라기보단 사람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니까 나를 키워내고, 나를 품어낸 이. 당신들이 어쩌면 내겐 고향이 되어 주었다고 해야겠지. 여전히 나는 고향을 추상적으로 생각하고 정의한다. 마치 바다 위를 부유하는 외딴 섬처럼 느껴진다고나 할까. 함께하는 사람들, 걷는 길 위에서 느끼는 감정, 드는 생각들…이 모든 것이 어쩌면 그 ‘외딴 섬’의 위치를 가리키는 나침반이자 이정표다. 그렇다면 내 삶은 결국, 그 ‘고향’을 찾아 항해하는 여행의 과정인지도 모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