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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제이 Mar 24. 2024

17년간 외벌이 가장으로 살아온 소회(所懷)

총각 시절 내가 꿈꿨던 결혼 생활은 퇴근 후 집에 왔을 때 아내가 나를 반겨주는 집, 방과 후 집에 오면 엄마가 아이들을 반겨주는 집이었다. 대충 그 꿈은 이룬 것 같다. 고단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따뜻하게 나를 맞아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퇴근 후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들어가는 꿈은 이루었지만 대가는 혹독했다. 무엇보다 경제적인 부담감과 압박이 힘들었다. 불편한 소고기를 먹는 것보다 마음 편한 돼지고기를 먹는 것을 선택했기에 후회는 없었지만 혼자서 가족의 생존을 책임져야 하는 부담감은 맞벌이 가정과 비교 할 바가 아니었다. 매일 어깨 위에 벽돌 몇 장을 얹고 다니는 기분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시기가 있었는데 10년 전 회사를 이직할 때였다. 이직 기간 중에 6개월간 무직이었던 때가 있었다.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견디었지만 참 힘든 시기였다. 안전장치가 없는 삶이 불안하고 초조하고 무서웠다. 앞으로 우리 가족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때 처음 그런 생각을 했었다.


"사람이 이래서 자살을 생각하는구나. 약해서가 아니구나......."


그래서 17년간 행복했지만 한 편으론 17년간 내내 불안했다.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고 극도의 스트레스 상태로 긴장하며 살았던 날도 많았다. 한 번 꿇기가 힘들지 한 번 꿇으면 계속 꿇을 수 있었다. 그래서 여러 번 꿇었다. 자존심? 자존감? 비굴함? 그런 배부른 소리 따위는 이미 갖다 버린 지 오래였다.






맞벌이는 경제적으로는 안정이 되겠지만 맞벌이에 대한 빛과 그림자 역시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돈 때문에 문제가 해결이 되기도 하지만 돈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문제들이 터지기도 한다. 돼지고기를 먹을 수밖에 없는 속상함보다 더 큰 것을 잃을 수도 있다. 늘 느끼지만 다 좋은 건 없다. 내가 원하는 삶을 선택하하고 후회가 없으면 되는 것이다.


편의점 스타벅스 먹어도 내가 행복하면 된다. 그 선택 역시 내가 하는 것이고 행복의 기준도 내가 정하는 것이다. 나의 아이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행복을 따라 하지 말고, 행복을 SNS에서 찾으려고 하지 말고 책이나 자연에서 찾았으면 한다. 그리고 더더 행복해지려는 욕심과 강박에서 벗어나라고. 그 정도면 행복한 것이라고 말해 주고 싶다.


결혼생활 20년쯤 되다 보니 생각이 조금씩 변하기도 한다. 가끔은 퇴근 후 아내가 없는 삶도 매우 만족한다. 나도, 아내도, 아이들도 각자의 시간이 필요하다. 사랑이 식거나 관심이 부족해서 그런 것은 아니고 변하는 환경에 따라 적응할 뿐이다. 그때는 그때의 상황이 있고 지금은 지금의 상황이 있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일이고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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