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 무해無害하고 쓸쓸한
민재 미첼 MJ Mitchell
무해無害하고 쓸쓸한
민재 미첼
새로 이사 온 도시에서는 아무도 우산을 쓰지 않았다 비가 오면 우산 대신 비옷을 입었다 우산은 비가 오는 줄도 모르고 구석에서 우두커니 비 오는 날만 기다렸다 배신을 배워본 적 없는 순한 믿음으로 길고 긴 가뭄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해파리가 되어 헤엄 치는 꿈을 꾸기도 했다 얇은 날개를 접었다 펼치며 빗속을 떠다니는 꿈을 꾸는 동안 행복했다 기다림이 길어지자 이곳이 사막이라고 믿었다 언젠가는 사막에도 비가 오는 날이 있을까 해파리처럼 날개를 펴고 빗속을 헤엄치고 싶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지나도 우산은 그 자리에 있었다 슬픔도 원망도 없이 비가 오기를 기다리는 삶은 고요하고 쓸쓸했다 우산대신 비옷을 입고 바쁘게 사는 사람들의 삶도 쓸쓸하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이 조금 위로가 됐다 무해하고 쓸쓸한 삶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