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재 미첼 MJ Mitchell Feb 09. 2023

시詩-어제는 정월 대보름
     -눈 오는 밤

민재 미첼 MJ Mitchell

어제는 정월 대보름


민재 미첼


어제는 정월 대보름 달맞이 가려는데 야속하게 구름이 가득했지 달은 이미 휘영청 떴을 텐데 마음을 졸여도 구름은 점점 짙어졌어 하는 수 없이 대보름이 지난 다음날 만난 뒤통수가 살짝 찌그러진 달은 여전히 꽃처럼 화사하고 예뻐 보였지 달이 밝아서 주위의 별들은 잠시 불을 꺼두었는지 달만 혼자 환했어 대보름이 지난 달에게 비는 소원이 효험이 있을까 의심이 들면서도 두 손이 저절로 모아지고 찌그러진 달도 달은 달이지 저렇게 환하고 밝은데 꽃잎 한 장 떨어졌다고 꽃이 꽃이 아닐 수는 없는 것처럼 이지러지고 기운 달에도 토끼가 살겠지 어린 시절 잠 못 이루고 뒤척이다가 베개에 묻은 귀에 콩콩 토끼의 방아 찧는 소리가 들리면 달에는 정말 토끼가 사는 거라고 철석같이 믿곤 했는데 토끼의 안부가 궁금하다가도 차면 기울고 또 차면 기우는 달이 피고 지고 피고 지는 꽃과 같다고 생각했어 토끼는 꽃밭에서 더욱 행복할 테지 달을 보듯 꽃을 보는 나와 꽃을 보듯 달을 보는 나는 이제 달과 꽃을 구분하지 않기로 했어 밤하늘에 꽃이 한송이 활짝 피었지 그 꽃은 달을 닮았네 아니 달은 꽃을 닮았네.



눈 오는 밤


민재 미첼


눈폭풍이 들려주는 전설 속에서 커다란 설인이 걸어 나왔다 바람소리 같은 그의 발소리는 스산하고 조용하며 요란했다 쓸쓸히 걷는 설인의 발자국 위로 눈이 쌓이고 바람은 와르르 눈을 몰고 다녔다 전설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도 설인의 발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마을을 헤매는 그의 외로운 행진은 밤새 계속되었다 눈폭풍은 설인의 절규일지도 모른다고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밤새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었다 외로운 설인이 잠시 마을을 다녀가는 중이었다 사람들은 설인의 절규를 모른척하며 서로의 외로움을 눈 속에 묻었다 눈이 눈 위에 쌓이고 또 쌓였다.

이전 04화 시詩 - 무해無害하고 쓸쓸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