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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를 넘으며 - 29화

문경새재 (1)

by 조성현

문경새재를 넘으며 / 문경새재


5일 차(4월 10일)

문경새재 도립공원 입구~문경새재~충북 연풍면 괴산리~지릅재~충주 수안보면 미륵리(중원미륵리도요지) 25km / 누적 108km


아침에 출발하여 문경새재 제1 관문인 주휼관과 제2 관문인 조곡관을 지나 제3 관문인 조령관까지 8km를 오르느라 숨이 턱에 찼다. 우리나라 최고의 걷기 좋은 길이라 걸음걸이는 유유자적 그 자체다.


새재는 조령(鳥嶺)의 순우리말로 ‘새들도 쉬어 넘는 힘든 고개(동국여지승람)’라 하여, 험준한 고개였지만, 지금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누구나 편하게 오를 수 있는 길이다. 물론 제2 관문부터 제3 관문까지는 오르막 경사가 아래보다 다소 급하지만, 등산로와 달리 길 폭이 넓고 편하다.


신·구 관찰사가 관인을 인수인계하던 교귀정을 지나서 조금 오르자 오른쪽으로 ‘문경새재 과거길(옛길)’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여 잠시 들어섰다. 우마차는 물론 마소가 다니기에도 비좁다. 지금의 넓은 새재길은 무엇이고, 이 길은 무엇인가.

새재길은 한양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방사형 주요 도로 중 하나인 영남대로에 속한다. 1970년대까지 자동차가 다녔고, 세 개의 관문에는 우마차가 지날 정도로 성문의 폭이 넓다. 새재길이 주요 도로였기에 조선 시대에도 오솔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금처럼 넓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선은 도로를 정비하지 않았다. 외적의 침입이 잦아 한양 방어 차원에서 그랬다는 설이 있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조선의 대부상은 수운(水運)이나 우마차로 다량의 물품을 운반하였다. 그러나 상당수 길은 우마차가 다니기 어려웠다. 보부상이 전국을 누빈 게 열악한 도로 사정 때문이라 추측된다.


청나라 건륭황제 70세 생일 사절단에 여행 삼아 따라나선 연암 박지원은 중국의 다양한 수레를 보며 조선에서 수레 사용을 소홀히 하는 현실을 개탄했다. 조선 사람들은 “고을이 험준하여 수레를 사용할 수 없다”라는 핑계를 대었으나, 중국인들은 촉 땅으로 들어가는 험준한 검각에도 그 옛날부터 수레가 다닐 정도로 넓은 길을 뚫었다. 연암은 일갈한다. “수레는 물품의 교류뿐만 아니라 문화의 장벽도 허문다. 조선에서 수레가 다니지 않는 것은 선비와 벼슬아치들의 죄다”라고. 조선의 지도층은 중국에서조차 잊혀가던 주자학을 몸과 머리에 품고서, 실사구시 이용후생을 외면함으로써 수레조차 만들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다.


임진왜란 때 왜군은 이 고개를 넘어 한양까지 단숨에 쳐들어갔다. 백여 년이 지나 숙종 때 군사 요충지인 문경새재에 제1 관문 주흘관과 제3 관문 조령관을 설치하였다. 그러면 뭐 하나. 200년도 안 되어 1910년 경술국치로 왜인들에게 나라를 빼앗기지 않았나. 무능한 왕과 십상시 같은 집권층, 탐관오리들이 민초들의 고혈을 짜내며 제 잇속만 챙겨 나라가 허약해진 결과다. 그렇다고 조선의 국권 상실이 나라가 썩었기 때문이라며 일본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친일파 후손이나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의 주장은 일본 우익과 궤를 같이하는 매국적 망언에 불과하다. 일본에 자주권을 빼앗긴 1905년부터 민중들을 중심으로 의병투쟁이 불같이 일어났고 독립운동도 끝이 없었다. 조선은 지배층이 썩은 것이다.


20160410_093124.jpg 제1관문 주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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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10_094746.jpg 조령원터 출입문


20160410_094752.jpg 조선시대에 출장 중의 관리들에게 숙식을 제공했던 시설 - 지금은 터만 남아있다
20160410_095659.jpg 신·구 관찰사가 관인을 인수인계하던 교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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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10_100617.jpg 산불됴심 - 조선 후기에 세워진 순수 한글 표지석
20160410_101210.jpg 제2관문 조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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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10_110340.jpg 제3관문 조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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