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2차 여정에서 첫걸음을 떼고 문경까지 들어오며 드넓은 들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상주는 김제평야처럼 지평선이 보일 정도는 아니어도 들녘이 너른 편이어서 흰쌀은 예로부터 하얀 곶감과 흰 누에와 함께 상주 3백(白)으로 불렸다.
예전에 내 형님이 경기도 여주에서 농사지을 때 비탈에 파묻힌 논이 여러 개 있었다. 그중 하나가 논바닥에서 물이 솟아 나오는 뻘논이었다. 이앙기로 모를 심을 때였다. 엔진을 단 이앙기가 논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나는 이앙기에 밧줄을 걸고 앞에서 끌고 다녔다. 무릎까지 빠지는 논에서 한 발 한 발 떼며 나는 중얼거렸다. “나는 소다.” 농기계가 도입되기 전 사람 손으로 모든 농사는 지을 땐 뻘논을 선호했다. 가뭄에도 물이 찰랑대어 쌀 품질이 좋았기 때문이다. 일손이 부족하고 기계가 등장하며 뻘논은 농사짓기 어려워 기피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쌀값은 수십 년 동안 거의 오르지 않았다. 값이 오르지 않은 건 쌀밖에 없다. 이러니 누가 논농사 지으려 하겠나.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이 20%가 안 된다. 밥 대신 빵이나 국수 섭취가 많이 늘어난 것도 이유다. 나도 식량 자급률 떨어뜨리는 데 기여했다. 국수를 무척 좋아하여 뭐든 늘 곱빼기로 먹었다. 이런 내가 누구를 탓하랴.
<오늘의 이모저모>
오늘은 도 경계를 넘었다. 경상북도 문경을 벗어나 충청북도 괴산 땅을 잠시 밟았고, 이내 충주 수안보면을 지났다. 앞으로 이틀간 충북을 지나다 수요일에는 강원도로 들어간다.
문경새재 제3 관문을 지나면 완만한 경사의 하산길이다. 여기부터는 충청북도 괴산 땅이다. 자동차 도로와 마을 길을 지나 수안보면 안보리 삼거리에서 오른쪽 월악산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오늘은 문경새재를 넘고 나서 더 이상 재를 넘지 않겠거니 했으나, 나의 이런 기대는 오후에 무너졌다. 해발 540m의 지릅재가 기다리고 있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 오르고 올라도 정상이 보이지 않았다. 오기가 나서 “그래 하늘 끝까지 올라가라”라고 소리를 질렀다. 얼굴은 벌게지고 숨이 차 헉헉 대면서도 미련스럽게 쉬지 않았다. 월악산국립공원에 들어온 것이다. 약 6km 정도의 짧지 않은 오르막길이었고, 오전에 문경새재를 넘었기에 더욱 힘이 들었다.
앞으로 강원도 지나며 이런 길을 자주 만날 것이다. 오늘은 재 두 개 넘으며 예행연습을 단단히 한 셈이다. 도착지에는 산자락을 끼고 있는 농가뿐이어서 버스 타고 수안보까지 나와 숙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