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빛

by 석현준


어느 날 늦은 밤,
"만약 내가 미치도록 날뛰다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다면 너는 어떨 것 같아?"
수도 없이 들었던 너의 말이었다.
이젠 아무 느낌도 들지 않을 정도로 흔한 일상 대화였다.
정말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기 위해서 내게 물어본 걸까? 나는 너의 큰 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오늘도 마음에도 없는 대답을 했다.

그래도 다음날은 밝아왔다.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네가 침대에서 보이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몸을 움직였다. 온 집안을 찾아보아도 네가 없자 내 얼굴은 조금씩 혈색을 잃어가고 있었지.
아침 내내 찾아도 나오지 않는 네 모습에 입술은 바짝바짝 말라갔고 음식이 입에 들어가질 않았다. 나는 그런 네가 없는 첫 번째 날을 허비했다.

새벽해가 뜬다. 언제나처럼 떠오른다. 망망대해에 떠있는 나는 해가 저물고 나서야 나에게 비춰주던 밝은 빛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내 옆에서 함께 있던 작은 점 같던 빛이 내게 다가왔을 때 널 밀어내지 않았더라면 저기 저 넓은 바다를 건너느라 힘 빠진 널 사랑했더라면 온 얼굴이 땀에 절어서 헐떡이는 숨을 고르며 붉은 토마토가 된 것 마냥 날 바라보던 너를 알았더라면 너의 진심 어린 눈빛 속에 네 마음을 볼 수 있었더라면. 진심으로 널 사랑했을 텐데 온 마음을 다한 사랑을 해보았을 텐데. 이젠 한탄만 나온다.

온통 사라진 뒤에야 찾아오는 것은 절망감뿐은 아니었다. 좌절 후회가 쓰나미처럼 물밀려 들어왔다. 불빛이 없는 컴컴한 바다로 변한 뒤에야 널 기억하는구나. 잊을 수 없는 네 이름만이 애꿎은 바다에 울려 퍼졌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이 연거푸 소리쳐 부르는 네 이름만 고요한 바다를 가르고 날아가는구나. 작은 잔속에 담긴 투명한 액체가 이리도 쓰게 다가왔다. 온 창자를 후벼 파며 날 힘들게 했지.

죽도록 아파도 네 생각뿐이다. 내 속을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세상에서 나를 이해하려는 네 작은 몸짓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이젠 알듯한 네 미소가 나를 물들여갔구나. 천천히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나를 물들이는 너의 색이 이제야 곱게 내 온몸을 휘감는 색이 평생 나를 따라다니며 널 기억하는구나.

넌 내 꿈을 모두 잡아먹고 사라진 것일까 아니면 내가 너의 꿈을 꾹 막고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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