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유부자 Sep 11. 2022

은퇴한 남편의 화려한 외출

일요일 점심은 외식으로

몇 년간 취준생인 딸과 남편과 제가 함께 살았습니다.  지금은 딸이 취직을 해서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습니다. 딸이 취직하기 전에 '남편의 화려한 외출'을 적어보겠습니다.


딸이 일주일에 한 번씩 일요일 점심에 외식하러 갑니다. 신세대인 딸이 외식을 하러 가면 우리 부부는 해방감을 느낍니다. 우리가 먹고 싶은 대로 음식을 마음대로 먹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고기반찬이 없어도, 김치만 놓고 먹어도 마음이 편안합니다. MZ 세대인 딸은 우리 부부 입맛과 달라요. 제가 열심히 반찬을 준비해도 딸 취향에 맞지 않으면 "저는 다른 것으로 먹을게요." 서운하지는 않아요. 각자 먹는 음식은 취향이잖아요. 


남편도 딸의 반찬에 신경을 씁니다.  딸을 만족시킬 수 있는 가장 적중률이 높은 반찬은 고기입니다. 고기 만족도는 항상 높아요. 남편은 고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는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단백질이 필요하다고 해서 고기를 먹을 기회가 있으면 사양하지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도 남편과 함께 일요일에 점심을 먹으러 나갔습니다.  그날 메뉴는 추어탕입니다. 그리고 식사 후에 우리 부부는 식당 주변을 산책하면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과 내가 외식을 1주일에 한번 하면 대략 5만 원이고, 한 달이 4주이면 20만 원이면 매달 일요일 점심이 즐거울 수 있구나!


그래서 앞으로 일요일 점심은 외식하기로 했어요. 그때부터 일요일 점심 외식을 하면서 퇴직한 남편의 화려한 외출이 시작되었습니다. 남편은 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할 때라 송별회도 못하고 은퇴를 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은 코로나19 백신을 한 번도 접종하지 않아서 사람들과 만나 식사하는 것도 즐겨하지 않았어요. 


저는 이때는 직장생활을 하는 시기였습니다. 아침 7시 30분에 출근해서 저녁에는 6시 전후해서 집에 옵니다. 사람이 돈을 버는 일은 스트레스를 동반합니다. 하루 종일 제가 직장에서 일을 하고 퇴근하다 보면 맛있는 저녁을 차리는 일보다 대강대강 저녁 식사를 때우는 일이 많지요. 


제가 직장에서 점심시간에 맛있는 반찬과 다양한 식사 메뉴를 먹을 때 가끔씩 남편에게 미안했어요. 내가 만들어주는 음식이 남편이 섭취하는 영양소 대부분을 차지하거든요. 남편은 오로지 집과 농사짓는 밭에만 왔다갔다하거든요. 제가 점심 먹을 때만 남편이 영양실조에 걸리는 것이 아닐까? 딸은 먹고 싶은 음식을 사 먹기도 하고, 만들어 먹기도 해요. 


화려한 외출로 남편과 저는 한 번은 추어탕, 또 한 번은 두부집에 가서 두부돈가스와 두부정식을 먹었어요. 두부 식당 메뉴는 양이 너무 많아서 집에 1인분은 싸 와서 저녁까지 먹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홍어를 먹으러 갔더니 일요일은 장사를 하지 않아서 토요일 저녁에 가서 홍어를 먹기로 했어요.


드디어 토요일 저녁에 홍어를 먹으러 갔어요. 홍어를 파는 식당은 넓지 않았어요. 그래도 홍어 마니아들이 와서 자리를 꽉 매우고 있었어요. 조그만 식당에 늦게 도착했으면 빈자리를 기다릴 수도 있었네요. 마음씨 좋은 주인 여사장님께서 인천에서 온 홍어라고 하시면서 삼합, 홍어전, 애 등을 주셨어요. 물론 남편은 홍어에 곁들여서 막걸리 한잔을 마셨지요. 저는 운전기사로 막걸리는 마시지 않고 안전하게 그날 남편의 화려한 외출을 마무리했어요. 


우리가 살면서 소소한 기쁨을 누리는데 20만 원을 투자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남편은 딸이 4년째 공부하고 있었어요. 저에게 매일 식사 당번을 하라고 하기도 미안하니까 식사 준비할 때 남편 마음이 편안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저도 일요일 점심은 식사 당번에서 해방되고, 남편도 눈치에서 해방되네요. 


저는 평상시에 출근하기 때문에 휴일이라도 집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쉬는 것을 좋아해요. 그러나 남편의 화려한 외출 덕분에 외식을 하느라고 밖에 나와서 산책도 하네요. 저는 직장 생활하면서 이런저런 맛있는 것을 먹는데, 남편은 항상 집에서 하는 음식만 먹기 때문에 남편에게 음식 선택권을 줍니다. 


일요일 점심에는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러 가는 기쁨이 있어요. 그리고 부부가 외출하면서 소소하게 나누는 이야기들이 우리들 삶의 활력소가 되네요. 은퇴 후에 빈번한 외식은 건강과 노후자금에 약간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은퇴한 남편의 일요일 점심의 화려한 외출은 긍정적인 노후 생활의 하나의 이벤트가 아닐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